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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이원집정부제가 정답은 아니다
2016-07-05 06:00:00 2016-07-05 11:46:35
20대 국회의 막이 오르자마자 개헌론이 뜨겁게 불붙고 있다. 여론도 개헌론에 힘을 실어 주고 있는 분위기다. 〈CBS>가 지난달 1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69.8%가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장애 요인이기 때문에 권력구조 개편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이원집정부제가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원집정부제 지지자들은 이 제도가 대통령제의 폐단인 권력집중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희망을 건다.
 
그러나 과연 이원집정부제로 한국 대통령제의 폐단을 치료할 수 있을까. 이원집정부제란 행정부 내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국가수반)과 의회를 대표하는 총리(행정수반)가 공존하는 체제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반(半)대통령제라 불렀다. 반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과 총리, 양자 간의 관계에서 위계성이나 힘의 우열이 존재한다면 권력분산 효과는 제한되고, 오히려 어느 한 쪽으로 권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그 예를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는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행정수반의 권한은 대통령과 총리가 공유한다. 대통령은 대외 안보 관련 정책을 책임지며, 총리는 주로 경제·사회 등 국내 정치를 책임진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부 수반인 총리를 임명하며, 총리를 통해 국내정책에 대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정치 무대를 설정한다면, 총리는 그 무대를 주도하는 행위자인 셈이다.
 
단 총선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이 패배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국회 다수당이 야당인 경우 야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어 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가 형성되며, 총리가 강한 권력 행사를 하게 되어 권력 집중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국정운영에 있어 대통령과 총리 간의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2007년 대통령에 취임한 니콜라 사르코지는 제왕적 권한을 행사했다. 그는 민영방송 <TF1>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모든 분야에서 행동할 것을 천명하면서 자신이 총리, 다수당의 대표, 정부의 대변인, 재경부 장관 역할까지 독점하려 나섰다. 이같이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은 총리와 장관들의 역할을 극도로 약화시켰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두고 ‘과잉 대통령’(hyper président) 또는 ‘전능한 사람’(omnipotent)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조롱했다. 이원집정부제 하에서도 대통령의 초월적 권한은 결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동거정부의 경우 대통령은 강한 권력에도 불구하고 주도성을 총리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한 좌파연합의 수장 리오넬 조스팽과 동거정부를 구성했다. 초기 동거정부에서 둘은 밀월관계를 유지했으나 점차 국내·국제정치에서 적지 않은 대립을 빚게 되어 우파 지도자들의 빈축을 샀다. 특히 프랑스 정치책임자들은 동거정부가 갈등을 피하기 위해 개혁과제를 뒤로 미뤄 정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동거정부의 폐단이 커지자 프랑스는 그 출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지난 2000년 9월 반세기 동안 유지해 왔던 7년의 대통령 임기를 하원의원 임기와 동일한 5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을 단행했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프랑스 이원집정부제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분권형 대통령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문제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여당 내 민주주의와 한국 민주주의의 미성숙에서 기인하는 면이 크다. 제도를 탓할 것이 아니라 철학적 소양과 민주적 마인드를 가진 리더의 부재로 보는 것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찌르는 포인트일 것이다. 제도의 개혁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려는 정치인들의 리더십 배양이다.
 
그런 다음 제도개혁을 이뤄야 효과가 있다. 그리고 제도개혁을 할 때는 보다 철저한 연구와 검토가 이뤄져야 하고, 그 제도가 우리 토양에 적합한지도 고려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도 이원집정부제의 폐단이 만만치 않아 수정을 해나가는 판국에 신중한 검토 없이 우리가 해당 제도를 채택한다면 또 한번의 시행착오는 명약관화하다. 이원집정부제가 과연 해답인지 열린 사고로 재고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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