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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사는데 많은 것 필요하나요?”…공유문화 전도사 ‘마켓인유’
폭주족 출신의 서울대생, TV 스타에서 사회적 기업가까지…"즐겁되 이롭자"
"과시적 소비문화의 폐해, 남이 아닌 나를 먼저 찾아야"
2016-06-09 13:28:22 2016-06-09 13:55:52
캠퍼스 내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들어서고, 학교 축제의 주인공이 인기 연예인과 일일주점이 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값비싼 옷으로 치장해야 패션이 되고, 레스토랑을 나선 후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손에 쥐어야 하는 게 현 대학 문화다. 젊음으로 가득 차야 할 대학 교정은 물론 우리사회 전반적으로 과시적인 소비문화가 만연해 있다. 넓은 아파트에 살고, 대형 승용차를 모는 것이 '자존심'인 세상이다. 비뚤어진 자본주의 산물에 당당히 'NO'를 외치고 일어선 이가 있다. 폭주족 출신의 서울대생, TV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김성경 자락당(自樂堂) 대표다. 사회적기업인 공동체형 중고문화마켓 ‘마켓인유’(Market In U)을 이끌고 있는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행복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유경제, 공유문화의 정신을 우리사회에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마켓인유의 ‘U’에는 당신(you), 우리(us), 공동체(union), 세계(universe), 대학(university)과 같은 중의적 의미가 담겨있다.
 
[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즐겁되 이롭자'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 김성경 자락당 대표는 남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김성경 자락당 대표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마켓인유 매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1982년생인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오토바이에 흥미를 가지면서 폭주족이 됐다. 밤낮 할 것 없이 오토바이에 몰두해 부모님을 걱정시켰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누나에게 무시당했다는 이유로 고3 여름이 돼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서울시내 중상위권 대학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는 여기에 만족치 않고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도전한다. 모멸감을 줬던 누나보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겠다는 이유였다. 4수 끝에 서울대생이 됐지만 김 대표는 학점이나 스펙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겼다. 학교 수업보다 강원도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것에 시간을 할애했고, 내국인 카지노 강원랜드에서 돈을 탕진하기도 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3년간의 스리랑카 해외봉사였다. 군 복무 대신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협력 요원으로 현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아가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얼마 갖지 않아도 풍요롭게 사는 방법을 깨달았다.
 
김 대표는 “복무를 마치고 학교에 복학하니 과시적 소비문화가 대학가에도 만연했다”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부터 그런 소비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교내 벼룩시장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성경 자락당 대표가 교내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 사진/자락당
 
2011년 학교 이름을 딴 ‘스누(SNU)마켓’을 통해 교내 중고마켓을 운영하던 김 대표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그해 하반기 방영된 KBS-2TV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 출연이었다. 공개 모집된 일반인 남녀 18명이 신체적, 지적, 사회적 미션 게임을 거쳐 단 한 명의 우승자를 선출한다는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김 대표는 예비군 훈련에 갔다가 우연히 후배들의 추천을 받아 참가하게 됐다.
 
방송이 시작되고 회를 거듭할수록 그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고, 최후의 4인에 남으며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 대표는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여의도 정치권과 연예계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권유하는 일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주위의 높아지는 관심에 은근히 흔들리던 김 대표를 일깨운 것은 부친의 짧은 한 마디였다. “들뜨지 마라.” 김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며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결국 방송출연은 추억으로 남기고 벼룩시장으로 복귀했다. '마켓인유'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공유문화의 확산…“소비가 줄었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 느낀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김 대표는 정식 사업화에 나섰다. ‘스누마켓’에서 ‘마켓인유’로 이름을 변경하고 2013년 서울시 공유기업 지정, 2015년에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며 점차 체계를 갖춰나갔다. 지금은 서울대 언어교육원과 마포구 공덕 ‘늘장’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은평구 불광동 사회혁신파크에 신규 매장 오픈도 준비 중이다. 홈페이지(www.marketinu.com)에서 온라인 판매도 한다.
 
비슷한 범주의 ‘아름다운가게’가 기부 받은 물건들을 판매해 그 수익금을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하는 비영리단체라면, 마켓인유는 고객의 물건을 사고, 팔고, 교환하고, 위탁 판매해 생기는 수수료로 이윤을 얻는 영리단체다. 김 대표는 “아름다운가게가 받는 기부품 중에는 버려도 상관없는 물건들도 상당수 들어온다고 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영리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중고품 재사용 극대화와 공유문화 확산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팔수 있는 물건만 받고 대가도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책정된 판매가격의 35~42%를 현금으로 받거나 가격의 50~60%만큼 매장 내 물건과 교환할 수 있다. 위탁 판매를 맡길 경우 판매 성공시 70%를 가져갈 수 있지만, 2주가 지나도 안 팔리면 회수하거나 재위탁해야 한다. 취급하는 물품은 다양하다. 여성 의류와 액세서리가 주종을 이루고 노트북 등의 전자제품과 그릇세트, 유모차 등 생활용품들도 있다. 중고물품이 전체의 70%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수공예 작가들이 만든 수공예품(20%)과 사회적기업의 제품(10%)들도 판매된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마켓인유 매장 안에 있는 ‘공유존’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매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공유존’이다. 고객의 양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자발적인 물물교환의 장으로, 팔기에는 애매하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이 모여 있다. 방문객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하루 3개까지 가져갈 수 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을 남겨둬야 한다. 당장 물건이 없다면 다음에 와서 놓고 갈 수도 있다.
 
김 대표는 “공유문화 확산으로 소비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며 “매장에 오시는 분들의 재방문율이 80%를 넘는데, 그분들이 실제 자신들의 소비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스스로가 즐거워야 한다”
 
김 대표는 마켓인유가 앞으로 중고시장계의 이케아(IKEA)가 되기를 꿈꾼다. 그는 '리커머스(re-commerce)'로 설명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택배 등으로 사람들이 중고품을 쉽게 내놓고 쉽게 구입하게 하는 것이 1차 목표”라며 “그렇게 시장이 커지면 보상을 다양하게 하려고 한다. 중고품을 팔고, 대신 제철 과일이나 기프트콘을 받는 방식”이라고 부연했다.
 
김 대표는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사회적 주택) 사업도 구상 중이다. 갈 곳이 없는 위기 청소년이나 청년 실업자들이 주요 대상으로,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저렴하게 머물 곳을 마련해 주고 교육을 시켜 건축업 등에 고용한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의 최종목표는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우리 사회에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는 “지속가능이라는 말은 천년만년 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선 유연한 구조여야 한다”며 “사회 어느 한 부분에 모든 것이 편중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함께 즐겁고 함께 힘든 구조를 만들어 보는 것을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독한' 공동체주의 사고다.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 위치한 마켓인유 서울대점의 모습이다. 사진/자락당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 대표는 사회적기업이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 ‘끈기’를 강조했다. 그는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면 끈기가 필요하다”며 “1~2년 몰입해서 하면 망하더라도 큰 것을 얻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힘들어하는 청춘들을 위한 조언도 남겼다. 그는 “많은 후배들이 주위나 사회에 보여지는 것을 의식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선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진정 잘할 수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 먼저다. 내가 있어야 나를 둘러싼 것도 있을 수 있다.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가장 즐거워야 하지 않을까.”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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