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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계약금 없어도 'OK'…도 넘은 '묻지마 청약'
정당계약 전 불법전매 권유…수도권 신도시나 지방도 만연
주택시장 침체 시 피해는 고스란히 최종 수요자 몫
2016-06-07 16:38:36 2016-06-07 16:41:22
[뉴스토마토 김용현기자]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의 청약시장 불법거래가 점입가경이다. 전매제한 기간이 있지만 불법으로 분양권을 매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 등 열기가 뜨거운 단지들은 당첨 이후 정당계약 전에 매도자와 매수자를 연결해 주겠다며 위험한 거래를 부추기는 업자가 늘고 있다. 이에 일부 1순위 자격을 갖춘 청약자들은 계약금 없이 '묻지마 청약'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일 찾은 송파구 문정동 '래미안 루체하임' 견본주택. 전날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강남권 재건축 단지 분양을 시작한 현장에는 상담을 받기 위한 예비청약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분양업체는 불법거래를 막기 위해 부동산 업자들의 출입과  '떴다방' 업자들의 견본주택 주변 영업을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견본주택을 둘러보고 나온 뒤 채 10m도 벗어나기 전에 업자들의 명함 공세가 이어졌다.
 
"당첨만 되면 바로 수천만원의 웃돈을 얹어주겠다. 좋은 층이 걸리면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며 명함을 건네는 업자들이 즐비했다.
 
이 단지의 전매제한 기간은 6개월로, 당첨 이후 바로 행하는 거래는 불법이다.
 
또 다른 업자는 계약금이 모자라 청약을 망설인다고 하자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는 "계약금 없어도 우선 청약을 넣어라. 저층 등 일부는 안되겠지만 59㎡나 71㎡ 등의 층이나 향이 좋은 물건에 당첨되면 계약 전에 살 사람을 연결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을 빠져 나와 건네받은 명함에 적힌 중개업소로 전화를 걸자 해당 업체 관계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을 설명했다.
 
아파트 분양권을 전문적으로 거래한다는 A중개업소 관계자는 "장담은 못하지만 매수자가 있으면 팔 수 있다. 동·호수만 좋으면 계약 전에도 얼마든지 팔 수 있다"면서 "재당첨 제한이 폐지돼서 당첨이 되도 이곳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지 않은 민영주택이기 때문에 바로 다른 단지 청약을 넣을 수 있고, 1년이면 1순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좋은 층에 당첨되면 계약금 납부 전에 계약금은 물론, 웃돈까지 한번에 건네줄 수 있다"며 청약을 권유했다.
 
재당첨제한제도는 분양 아파트에 당첨된 자에게 일정기간 새 아파트 당첨에 제한을 두는 제도다. 민영주택의 경우 투기과열지구를 제외한 지역은 재당첨제한이 폐지됐다. 하지만 현재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은 한 곳도 없어 재당첨제한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 등에 당첨될 경우 일정기간(1~5년) 다른 분양주택에 청약할 수 없다. 강남의 경우 민영주택이기 때문에 당첨 후 계약을 하지 않아도 1년이 지나면 1순위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지난 3일 견본주택 문을 연 '래미안 루체하임' 견본주택 모습. 사진/더피알
 
 
◇수도권 신도시도 정당계약 전 불법거래 만연…부산 등 지방에선 '야시장' 열리기도
 
강남 재건축 단지 뿐 아니라 수도권 인기 신도시에서도 정당계약 전 분양권 불법 거래는 이미 흔한 일이 됐다.
 
지난 1일 청약을 접수한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힐스테이트 진건'은 평균 1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전 주택형이 1순위에서 마감됐다. 이는 그동안 다산신도시 내에서 분양한 단지 가운데 최고 경쟁률 기록이다.
 
이처럼 수요자들이 청약접수에 몰리자 오는 9일 정당계약을 앞두고 청약자들에게 불법전매 권유가 판을 치고 있다.
 
이 단지 전용 84㎡에 청약을 접수한 이모(36·남)씨는 "동·호수 지정 전(정당계약 전) 3000만원의 웃돈을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66㎡는 인기가 높아 벌써 4000만원이나 가격이 올랐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계약 전 분양가보다 3000~4000만원이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면서 계약 이후 당첨 층이나 향에 따라 웃돈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에서 만난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66㎡는 찾는 사람이 많다. 로열층에 당첨에 될 경우 5000만원 넘게 올려 받게 해주겠다"며 분양권 거래를 부추겼다.
 
수도권과 달리 분양권 전매에 제한 기간이 없어 계약과 동시에 바로 합법적인 전매가 가능한 부산 등 지방시장은 분양권 거래가 더 활발하다.
 
매도자와 매수자를 확보하기 위해 당첨자 발표일에는 이른바 '야시장'이 열리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분양업체 한 관계자는 "청약일 이전에는 불특정 다수에게 분양권 거래 홍보에 나서지만 당첨자 발표 이후에는 당첨자를 대상으로 대기 매수자를 연결시켜주기 위해 견본주택 인근에서 야간에 거래시장이 열리기도 한다"며 "특별공급 불법전매도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산신도시 '힐스테이트 진건' 견본주택 앞 모습. 청약시장 과열에 시세차익을 노리고 불법전매를 부추기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사진/김용현 기자
 
 
◇불법 만연 속 과열된 청약시장 "피해자는 결국 최종 수요자"
 
각종 불법거래가 성행하고, 청약시장 이상과열이 지속되면서 분양권 '손바뀜'에 따른 최종 수요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분양권 매수에 나설 경우 자칫 매수가격보다 시세가 낮아져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전세난에 따른 실수요자의 청약도 있지만 현재의 청약시장에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수요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며 "공급이 집중된 지역의 경우 입주시점 가격 하락에 따른 시세하락 시 실수요자 뿐 아니라 투자수요도 피해를 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기자 blind2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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