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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한국 선거 여론조사는 민주주의 오염물인가
2016-04-19 06:00:00 2016-04-21 09:09:36

4·13 총선이 막을 내렸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민심은 박근혜 정부를 준엄하게 심판했고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드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번 선거의 처참한 패배자는 새누리당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새누리당보다 더한 패배자가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한국의 선거 여론조사였다. 공표된 여론조사들은 하나같이 집권여당의 승리를 예고했건만, 개표 결과는 180도 달랐다. 한국 여론조사가 과학이 아닌 엉터리 점쟁이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선거 여론조사가 빗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 총선마다 그랬다. 이제는 오명을 씻을 수 없을 만큼 불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각 당이 이런 여론조사를 공천의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한국 민주주의는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잘못된 여론조사는 민심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오염물이다.

 

여론조사는 과학성과 대표성을 담보로 한다. 이 두가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여론조사는 숫자에 불과하며, 그 결과 또한 정보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과학적 여론조사는 대중들의 생각과 행동을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정치인들이 대중의 요구와 선호를 바탕으로 어떤 전략을 짤지 모색하게 해준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여론조사는 과학성과 대표성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실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정보를 생산하기보다 쓰레기를 양산할 확률이 무척 크다.

 

프랑스는 어떠한가? 프랑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론조사가 빗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선거에서 중요하거나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라 하나의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조사 결과는 기관에 따라 들쭉날쭉하지 않고 거의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는 프랑스 여론조사위원회가 여론조사 방법에서부터 가중치, 언론의 발표까지 엄격히 체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977년 여론조사법을 토대로 독립기관인 여론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1970년대 여론조사가 크게 보급되기 시작하자 프랑스의 학계와 정치계는 여론조사를 민주주의의 정보원으로 보는 찬성파와, 오염물로 보는 반대파로 나뉘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반대파인 프랑스 한림원의 모리스 드리옹은 1972년 <르몽드>에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의 오염물”이라고 맹비난하는 글을 올렸고,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는 논문을 통해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대통령은 여론조사법을 제정해 여론조사의 신뢰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때 엄격한 조사와 함께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물론 한국도 2014년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를 발족해 조사를 심사하는 모양새를 갖추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통해 엉터리 여론조사들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일부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기관들이 위원회의 조건들을 교묘히 충족시키면서 편파적으로 몰아가는 구습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선거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의 오염물이라는 오명을 벗고 정확도와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보다 독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 반짝 한몫을 챙기려는 중소 여론조사업체의 난립을 막을 수 있고, 저질 여론조사가 생산·발표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선거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의 정보원으로 작용하기보다 혼란을 부추기는 방해물로 계속 남게 될 것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여론조사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하는 ‘여론조사 제국’ 대한민국에서 과학적인 데이터의 생산과 사용의 엄격한 관리·감독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숙제다. 만약 이 숙제를 미룬다면 한국 선거문화와 정보문화는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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