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제도는 기업지배에 대한 독점 수단으로 19세기말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지주사는 자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으면서 그 회사의 경영을 지휘·감독하는 형태로 피라미드형 지배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지주회사를 금지해왔다. 제도가 다시 허용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으로 복잡하게 얽힌 출자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전후해 경제민주화의 흐르을 타고 재벌의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방편으로도 주목 받았다. 지분 구조의 흐름이 단순해져 투명성과 함께 경영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근거로 작용했다. 동시에 대주주의 지배력을 기반으로 총수일가가 전횡을 일삼는 등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가 될 수도 있어 양날의 검으로도 인식된다. 대기업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지주사 전환이 최근에는 중소·중견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가 단순해 순환출자 해소 목적보다는 '경영권 승계'와 이를 통한 '지배력 강화'에 집중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상속 수단으로 쓰이는 지주회사 제도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중소·중견기업이 지배구조를 새롭게 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로 문턱이 낮아진 데다, 조세 특례 등 혜택이 더해지면서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이 확대되는 움직임이다. 표면적으로는 경영 효율화와 투명성 확보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가업 승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과 지주사 제도를 수단으로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비난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대기업 지주사 전환 정체…중소 지주사는 봇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지주회사 현황'에 따르면 2015년 9월말 기준 국내 지주회사 수는 총 140개로, 전년 대비 8개사가 늘었다. 지주회사 수는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 20개에 불과하던 지주사가 2011년 100개를 넘어서며 10년 사이 5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최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의 지주사 전환 움직임은 정체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9월말 기준 대기업집단 소속 지주회사는 30개로, 전년보다 1개 줄어들며 2012년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다. 4년째 제자리다.
반면 중소 지주사는 늘고 있다. 대기업집단의 지주사 전환이 정체를 보인 최근 4년 동안 자산 총액 1000억원 이상 5000억원 미만인 중소형 지주회사는 46개가 늘어, 지난 9월말 기준 전체의 63.6%(89개)를 차지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소형 지주회사와 달리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이 계속 정체되고 있다"면서 "금융사를 보유하거나 순환출자가 형성되어 있는 대기업집단이 부진하다"고 말했다.
올 들어서도 이 같은 움직임은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우리산업홀딩스와 골프존유원홀딩스는 공정위로부터 지주회사 기준을 충족했다는 심사결과 통지서를 받았다. 지주사 전환을 완료한 부방은 이달 말 감사보고서가 나온 이후 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외에도 오스템임플란트, 심텍, 메가스터디 등이 지주사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배구조 투명성'보다는 '경영권 승계'에 초점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줄줄이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의 문제점을 목도했다. 이는 국가경제를 붕괴시키는 동시에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이를 해결코자 1999년 지주회사 제도를 부활시켰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순환출자를 해소해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사업 포트폴리오가 단순한 중소·중견기업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와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경영권 승계'를 첫 손에 꼽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법 취지는 복잡한 순환출자를 하지 말고 투명하게 소유구조를 가져가라는 것인데, 이 틀에 따르면서 2·3세 경영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많다"며 "요즘 같은 분위기와 세제 특례 등을 고려했을 때 승계를 위한 최적의 타이밍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경영권 승계가 임박한 기업들 사이에서 최근 지주사 전환이 활발히 일고 있다.
부방그룹은 지난해 초 지주사 전환 계획의 일환으로 핵심 계열사인 리홈쿠첸을 지주회사 부방과 사업회사 쿠첸으로 인적 분할했다. 이동건 회장의 장남 이대희 대표로의 지분 승계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이대희 쿠첸 대표는 공개매수에서 쿠첸 지분을 주고, 부방 주식을 받는 형식으로 부방 지배력을 높였다. 그 결과 부방 지분율이 18.32%에서 30.37%로 끌어올려졌다. 반면 부친인 이동건 회장의 부방 지분은 단 한 주도 없다.
골프존 역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2세의 지분율이 1.5배 가량 확대됐다. 골프존은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지난해 3월 골프존을 지주회사 '골프존유원홀딩스'와 사업회사 '골프존'으로 분할했다. 이 과정에서 창업주 김영찬 회장의 외아들인 김원일 전 대표로의 경영권에 힘이 실렸다. 김원일 전 대표는 지난 2013년 12월말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현재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지주사 체제 전환을 통해 지분율을 높인 것은 향후 경영 복귀를 위한 수순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현재 김원일 전 대표가 보유한 골프존유원홀딩스 지분율은 51.15%, 아버지 김영찬 회장은 10.65%다.
우리산업홀딩스의 경우 2세가 최대주주로 올라서진 않았지만 지주사 체제 전환으로 회장 일가의 지분율을 높여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입지를 다졌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창업주인 김명준 회장의 지분율은 24.78%에서 49.68%로, 아들 김정우 우리산업 대표는 14.44%에서 28.95%로 각각 두 배가량 증가했다.
최근 지주사 전환을 마친 이들 3곳 모두 창업주의 나이가 70대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경영권 승계가 임박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중소·중견기업에서 여러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신사업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주사 체제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중소기업은 지속성, 생존의 문제가 크기 때문에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승계 목적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세특례연장·원샷법' 중소지주사 전환 날개 달아
지주사 전환을 위한 환경도 좋다. 지난해 말 일몰 예정이었던 지주회사 설립 과세 특례가 3년 연장되면서 기업들도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일몰 시한이 연장된 지주회사 설립 과세 특례는 주식 현물출자를 통해 지주회사 설립을 할 때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미뤄주는 제도로, 지난해 12월31일을 기점으로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여기에 오는 29일 일명 원샷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예정대로 통과되면 지주사 전환에 날개를 달게 된다. 원샷법은 지주회사 규제, 소규모 합병 요건 등 기업의 사업 재편과 관련한 규제 및 절차를 한번에 해결하기 위해 발의됐다. 지주회사 유예기간은 사업재편 기간에 맞춰 3년으로 연장하고,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의무 지분보유율은 100%에서 50%로 완화하는 게 골자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지주회사가 증손회사에 대한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나, 원샷법을 통해 사업 재편 기업으로 승인된 경우에는 50%만 보유하더라도 자회사들의 손자회사 공동출자가 허용된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30대그룹 가운데 지주사로 전환할 기업들은 상당부분 전환을 했기 때문에 중소·중견기업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원샷법이 통과되면 지주회사 제한 조건들이 완화되는 데다, 정권이 바뀔 경우 있을 제도적 변화에 대한 리스크를 우려해 올해와 내년 서둘러 전환하는 기업들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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