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거듭된 ‘중국 역할론’에 한중관계 위태
박 대통령, 중국의 대북 압박 참여 수차례 촉구…중국 반발 가능성
‘북한 뺀 5자회담’ 제안, 한중갈등 도화선 될 수도
2016-01-24 13:11:03 2016-01-24 13:13:49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꺼내든 5자회담 카드가 정세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직 제재와 압박뿐이며 거기에 중국도 동참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이 거듭 확인되면서 특히 한중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제에서 중국이 한국이 원하는 만큼 협력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그간 잠복해온 한·중의 갈등이 표면화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22일 통일부·외교부·국방부 신년 업무보고에서 5자회담을 거론했을 때만 해도 그리 큰 파장이 예상되지는 않았다.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 5개국이 모여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자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고, 한편으로 중·러가 거부할 게 뻔해 5자회담이 실제 이뤄질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직접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하며 5자회담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긴 했지만, 큰 의미가 있는 제안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서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한 현 시점을 "5자회담을 가동하기 위한 좋은 시점으로 보고 있다"고 밝힘에 따라 정부가 5자회담 성사를 위해 실제로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윤 장관은 "한·미·중 협의도 적극 가동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한·미·중 협의도 5자회담과 비슷한 구상으로 이명박 정부 초기에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중국의 거부로 성사되지는 못했는데, 윤 장관이 이날 다시 그 구상을 언급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윤 장관의 제안에 대해 중국은 즉각 거부의 뜻을 표명했다.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 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이 5자회담을 추진하자고 제안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화·담판은 여전히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라며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6자회담 틀 내 5자 공조 강화를 통해 최대한 대북 압박을 강화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즉각적인 5자회담 거부에 따른 논란을 진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의 구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 또한 분명히 밝혔다. 정 대변인은 “정부는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 한·미·일, 한·미·중 등 다양한 소다자 협력 및 5자회담을 시도해 북한을 제외한 5자 간 비핵화 공조를 보다 공고히 해 나가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아무리 5자회담을 밀어붙인다 해도 중·러가 호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압도적인 전망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에 동참하겠다고 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이 필요함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중·러가 5자회담처럼 북한을 압박하는 새로운 액션에 동의할 리는 만무하다.
 
특히 중국의 경우 한중관계의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한국의 추가적인 압박 시도에 분명한 반대의 뜻을 밝힐 가능성이 있다. 그간 중국은 한·미·일 3국이 자신들을 포위하는 움직임을 구체화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특별한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한국의 최대 교역파트너는 중국이며 한·일 과거사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 한국을 일종의 ‘포섭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이 주도해 한·미·일 3각 안보협력과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진하는 데에서 나아가 5자회담까지 제안하는 상황이라면 중국도 그간의 침묵을 깰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중국은 이미 관영 언론을 통해 한국이 ‘중국 역할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22일에도 중국 역할론을 또 제기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의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수차례 밝혀왔는데, 이번에야말로 북한이 핵 개발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란과 같이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효과 있는 조치를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5자회담 제안은 외교 전략상으로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계동 연세대 교수는 “5자회담은 우리가 선언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해당 4개국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북한도 그 회담의 결론에 따르겠다는 의지 표명이 있어야 한다”며 “정말 이러한 회담을 하고 싶으면 관련국들에 은밀하게 의사를 물어보고 성사 가능성이 있으면 그때 발표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거치지도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5자회담을 위해 나설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평가다. 주한 미국대사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제안 하루만인 23일 한국 언론에 보낸 성명을 통해 “미국은 박 대통령의 5자회담 요청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 본부가 아닌 주한 미국대사관의 대변인이 언론에 보낸 짤막한 성명에서 견해를 밝힌 것을 두고 적극적인 지지가 확인됐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리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홈페이지 등에서 그같은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 성명의 무게감을 짐작케 한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외교부와 국방부, 통일부 등 3개 부처로부터 '튼튼한 외교안보, 착실한 통일준비'를 주제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6자회담만이 아니라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시도하는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접근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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