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저소득층이 빚을 낸 주된 이유는 '생계'인 반면, 고소득층의 경우 '부동산 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은 생활비 마련이 목적인 대출이 많은 데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악순환에도 빠져 있다. 반대로 고소득층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로 투자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거주 주택이 있는데도 기타 부동산을 마련할 목적으로 빚을 내는 비중이 늘어났다.
21일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등이 발표한 '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우리나라 가계가 담보 및 신용대출을 받은 용도를 보면 거주 주택 마련이 36.9%로 가장 많았고, 사업자금 마련 24.1%, 거주주택 이외 부동산 마련 15.7%, 전·월세 보증금 마련 7.3%, 생활비 마련 6.5%, 부채상환 3.4% 등으로 나타났다.
가구의 소득 수준별 대출 용도를 보면,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의 대출 목적은 거주주택 마련 34.3%, 사업자금 마련 28.4%, 거주주택 외 부동산 마련 21.3% 순이다.
하위 20%의 경우에도 거주주택 마련 24.8%, 사업자금 마련 23.7%, 생활비 마련 18.7% 등으로 나타나 생활비를 제외하면 고소득 층과 유사해 보인다.
또 소득 수준별 가계부채의 양만 놓고 보면 하위 20%는 평균 1278만원, 상위 20%는 1억4283만원을 보유하고 있어 고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빚이 많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득 수준과 빚의 질에 따라 체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특히 소득 하위 20%는 생활비 마련이 목적인 대출이 18.7%에 달하는 등 지난해 18.8% 수준을 유지해 생계형 대출 비중이 높았다.
반면, 소득 상위 20%는 이 비중이 3.8%에 불과하다.
아울러 하위 20%의 부채구조는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부채상환을 이유로 담보·신용대출을 받은 비중은 5.0%로 전체 계층 중 가장 많았다. 소득 상위 20%는 이 비중이 2.6%에 그쳤다.
저소득층은 금융기관에서도 차별받고 있다. 소득 하위 20%의 60.7%만이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대출을 이용한 반면, 상위 20%는 이 비중이 76.2%에 달했다.
이들은 제도권 밖의 대출 비중도 높아 다수가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득 하위 20%의 저축은행·비은행 금융기관·보험회사 외 '기타' 대출 비중은 13.2%에 이른다. 상위 20%는 이 비중이 4.9%에 불과하다.
저소득층은 거주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받는 비중도 24.8%로 전체 계층 중 가장 낮았다. 이에 따라 거주주택이 있는 경우도 하위 20%는 47.2%에 그쳤고, 상위 20%는 75.3%에 달했다.
고소득층은 집이 있는 데도 부동산을 사기 위해 빚을 낸다.
소득 상위 20%는 거주주택 이외 부동산을 마련할 목적으로 대출받은 경우가 21.3%에 달한 반면, 하위 20%는 5.1%였다.
특히 소득 상위 20%는 거주주택 이외 부동산 마련 비중이 전 계층 중 유일하게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지난해 8월 정부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영향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양 계층의 순자산 수준도 크게 벌어져 있다.
금융자산과 실물자산 등 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액은 하위 20%의 경우 1억718만원이었는데, 상위 20%는 6억1852만원이다.
순자산은 부동산과 자동차 등 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것이므로, 이 통계는 저소득층은 빚을 내고 싶어도 못 내는 현실이 반영됐다.
김보경 통계청 과장은 "소득이 낮으면 빌리고 싶어도 못 빌리는 경우가 있다"며 "금융부채의 경우 자산을 담보로 빌리거나 자산을 취득할 목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경우 부채가 많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득 수준별 자산 대비 부채 규모는 하위 20%의 경우 10.7%에 불과하지만, 상위 20%는 18.8%에 이른다.
대출 목적이 유일하게 유사한 대목은 사업자금 마련 목적의 대출 비중이 두 번째로 높다는 점이다. 하위 20%는 23.7%, 상위 20%는 28.4%를 나타냈다. 이는 50대 이상 비중이 70%에 달하는 등 퇴직 후 치킨집 등 자영업 창업에 내몰리는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전체 종사유형 중 자영업자 가구의 부채가 9392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들의 금융부채 보유액도 1억160만원으로 전체 유형 가운데 최고치다.
하지만 하위 20%의 연평균 소득은 827만원인 반면, 상위 20%의 연평균 소득 1억735만원에 달한다. 저축액도 하위 20%는 연평균 1535만원 밖에 저축하지 못하지만, 상위 20%는 1억6579원이나 저축한다.
저소득층은 1인가구 형태가 많은 반면, 고소득층은 4인가구 수준인 경우가 많다. 하위 20% 가구는 평균 가구원 수가 1.7명이었으나, 상위 20%는 3.8명에 달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아 이들의 노후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하위 20% 가구주의 평균 나이는 65.9세였고, 상위 20%는 49.3세다.
김지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작년 8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저금리 기조가 부자들이 부동산 투자를 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든 것이 이번 통계에 반영됐다"며 "반대로 저소득층은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생계형 빚을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donggool@etomato.com
서울 중림시장에서 상인들이 모닥불로 추위를 녹이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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