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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지원 20년, 북한의 변화를 이끌었다
1995년 수해 구호부터 시작…식량 사정 나아졌지만 취약계층 여전
대북지원 국제회의서 나온 사업 20년의 성과와 한계
2015-11-08 09:49:03 2015-11-08 09:49:03
“현재의 북한은 대북지원을 시작했던 1995년의 북한이 아니다. 북한의 현재 모습은 ‘5M’으로 정의할 수 있다. Market(시장)과 Money(돈)가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에 큰 역할을 하고 있고, Mobile phone(휴대전화)이 일반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되었으며, Motorcar(자동차)가 증가했고, 평양에 Middle class(중산층)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M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다. Mindset(의식)이다. 주민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 특히 평양의 젊은 세대는 생각하는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대북지원 사업에 몸담아 온 카타리나 젤버거 전 스위스국제개발청 북한사무소장이 정리한 최근 북한의 변화상이다. 젤버거 전 소장은 경기도와 제주도,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등의 주최로 3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15 대북지원 국제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크건 작건 그간의 많은 원조 프로젝트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고, 그 대부분은 효과가 있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대북지원이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데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북지원은 북한에 물품을 직접 지원하거나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개발원조를 제공하는 등 북한을 돕는 각종 활동을 뜻한다. 1995년 8월 대홍수 피해를 입은 북한이 9월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며 시작되어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이번 국제회의는 20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더 나은 대북지원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대북지원을 주도하는 국내·외 비정부기구(NGO), 지자체의 남북협력사업 관계자, 관련 전문가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젤버거 전 소장은 1995년 대북사업 시작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소련 붕괴의 여파로 북한이 이미 심각한 경제위기에 들어서던 차에 대홍수라는 자연재해가 사회·경제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북한의 주력 수출무대이자 기술 및 필수 원자재 조달선인 동유럽 시장을 잃은 시점이기도 하다. 중국은 대북 석유수출에 대해 시장가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인이 합쳐지자 북한 계획경제의 기본인 식량공급시스템이 급격히 붕괴됐다.”
 
그렇게 시작된 지원사업에 의해 북한에 가장 많이 들어간 것은 역시 식량이다. 젤버거는 1995~2012년 사이 북한으로 지원된 식량은 1250만톤이라고 집계하며 최근 상황을 전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식량상황도 크게 개선됐다. 여기엔 여러 요인이 있다. 장기간에 걸친 국제원조가 큰 도움을 주었다.(…) 식량으로 말하자면 현재 북한은 아시아권의 다른 국가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발육부진과 급성영향실조의 경우 오히려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등 중소득국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미얀마, 네팔 등의 국가가 더 열악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식량지원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젤버거는 “북한은 공적개발원조(ODA)를 거의 받지 못하는 국가”라면서 “어린이와 임산부·수유부는 영향강화식품을 꾸준히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를 고려할 때 이처럼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해서는 제대로 목표를 설정해 식량을 원조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대북지원 역사의 산 증인인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식량 위주의 일회성 지원이 중심이던 1990년대 중후반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민간단체들이 독자적으로 북측과 접촉하고 정부의 지원 기금도 나오던 시기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개발협력 개념이 명확해지고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던 2005년 무렵 등으로 대북지원의 시기를 구분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대북 인도적 지원에 제한을 가하고 2010년 5·24 조치가 내려지면서 한국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은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이번 회의 참가자들은 5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대북지원이 계속해서 축소되어왔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한다”며 “북한의 경제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북한 주민의 고통을 덜어 주는데 있어 대북지원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북한을 둘러싼 정치적 입장과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국제사회가 단순히 대북지원을 계속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 인도적 지원과 장기적 개발협력 사업을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는 5·24 조치를 유지시키고는 있지만 대북지원에 있어서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남북 민간교류가 기지개를 켜면서 대북지원도 점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은 5일 “최근 남북 간 민간 교류가 역사와 문화, 체육을 비롯해 삼림, 병충해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이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당국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6일 한 특강에서 대북지원이 일회성 지원에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1995~2012년 사이 북한으로 지원된 식량은 1250만톤 정도라고 국제기구는 집계하고 있다. 2009년 이후 대규모 원조를 계속 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사진은 지난 10월 8일 평양 근교에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는 장면이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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