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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66년만의 만남…양안관계 제3막 오르나
분단 후 첫 정상급 회동…대선 판세 영향이 관건
2015-11-05 15:50:38 2015-11-05 15:50:38
중국과 대만의 정상이 분단 66년만에 한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오는 7일 싱가포르에서 회동을 갖기로 합의한 것이다. 앞서 공산당과 국민당의 영수 회담이 성사된 적은 있었지만 행정부의 수장격인 국가주석과 총통 신분으로 만나는 것은 1949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과 대만이 오랜 냉전기를 깨고 대화를 재개한 지 23년만의 성과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국과 대만 내부에서는 물론 전세계가 높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양안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면 대만을 통해 중국을 견제했던 미국을 비롯해 주변국들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 1월 예정된 대만 대선에서 중국과의 밀월에 부정적인 민진당이 10여 년만에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이 높아 양안관계의 앞날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은 오는 7일 싱가포르에서 회담을 갖는다. 중국과 대만 정상의 만남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66년만이다.
 
지난 4일 대만중앙통신(CNA)은 천이신 대만 총통실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오는 7일 마잉주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양안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뒤이어 중국 정부도 국무원 산하 대만사무판공실 명의로 "양안 우관 부처 협의를 거쳐 양안 지도자가 7일 싱가포르에서 만난다"고 사실을 확인했다. 장즈쥔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은 "이번 회동은 양안 관계의 평화로운 발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라며 "양안 지도자가 직접 교류의 첫 발을 내딛으며 상호 신뢰 증진과 공동의 정치적 기초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의 만남은 시진핑 주석이 토니 탄 싱가포르 대통령의 초청으로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하는 기간 중 마잉주 총통이 싱가포르로 향하며 성사될 전망이다. 구체적인 협정이나 공동성명 발표는 없지만 회동에 이어 만찬까지 함께하며 양안관계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기대된다.
 
◇양안 지도자의 사실상 정상회담…정례화 여부 촉각
 
마잉주 총통은 2008년 취임 후 줄곧 양안관계 개선에 주력해 왔기 때문에 중국 지도자와의 만남은 시기 상의 문제로 여겨졌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체제 성립 후 항일전쟁에서의 국민당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의 대만판공실과 대만의 대륙위원회는 지난해 '연락소통매커니즘'을 구축해 양안의 중요 현안에 대해 긴밀한 소통을 이어왔다.
 
 
중국 내부에서는 이번 회담이 양안관계의 새 지평을 여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대만이 화해의 발판을 마련한 '92컨센서스'가 양안 교류의 1.0 버전, 2005년 렌잔 전 국민당 주석의 중국 본토 방문이 2.0 버전이라면 이번 회담은 3.0 버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총통의 만남이 민간교류 확대, 상호 자본 유입 허용,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 등 지난 7년간의 양안관계 개선의 '화룡점정'이라는 얘기다. "양안 지도자의 만남이 직접 교류 소통의 출발점"이란 장즈쥔 주임의 말에서는 이 같은 대화 형식이 정례화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다. 이는 중국과 대만을 개별 국가로 보는 것에 반대하고 '일국양제'를 감수하더라도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92컨센서스'에서 인정한 내용이다. 중국과 대만이 UN 동시 가입을 거부하고 동시에 한 나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다만 각자의 해석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란 명칭은 사용할 수 있다. 이번 회동을 지칭할 때 중국이나 대만이라는 명칭 대신 '양안'이라고만 표기하고, 두 정상이 서로를 부를 때 공식 직함이 아닌 성인 남성에 대한 존칭인 '선생'을 사용하는 것 등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회담이 중국 본토나 홍콩, 마카오, 대만이 아닌 제3국 싱가포르에서 이뤄지는 것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 결과다. 싱가포르는 지난 1993년 왕다오한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 회장과 구전푸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 이사장이 분단 후 첫 민간 대화를 이뤘던 상징적인 장소인 동시에 중국과 대만의 평화적 관계는 유지하되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상호 존중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대만 선거 영향력이 향후 관계 변수
 
그러나 두 정상이 싱가포르를 향하는 모양새를 두고는 회담이 왜 하필 지금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시진핑의 싱가포르 국빈 방문을 마잉주 총통이 굳이 찾아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번 만남의 최대 배경으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만 대선을 겨냥한 시진핑과 마잉주의 정치적 도박이 꼽히는 이유다. 내년 1월16일 예정된 대만 대선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의 여론 조사 결과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의 지지율이 40%대로 17~18%에 불과한 국민당 홍슈주 후보를 크게 앞섰다. 국민당이 주리룬 당 주석으로 후보를 교체했지만 판세를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이번 회동을 계기로 민진당이 애써 피해왔던 이슈인 '양안관계'를 쟁점으로 부상시켜 정권 재창출에 기여하려 한다. 특히 양안관계 개선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강조코자 한다. 대만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양안관계의 후퇴는 경제에도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만의 대(對) 중국 수출은 전체의 39.7%로 미국(11.1%), 유럽(9.2%), 일본(6.3%)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중국으로의 수입도 전체의 20%로 가장 많다. 대만과 중국과의 교역 규모는 1983억달러로 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이유로 중국 역시 마잉주와 국민당을 지원해 양안관계를 이어가기를 희망한다. 민진당이 정권을 잡았던 천수이벤 총통 시절, 대만의 독립 추구 움직임에 관계가 냉각됐던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유사시 군사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반국가분열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니용제 상하이대만연구소 상무부소장은 "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하는 양안 지도자의 만남은 누가 양안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민진당이 주장하는 현상 유지는 92컨센서스와 하나의 중국 원칙에 근거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며 "부동층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회동이 되레 역풍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민진당이 "임기 말년의 마 총통은 개인적인 정치 유산을 위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해서는 안된다"며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두 정상의 만남이 대만 내 반중 정서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WSJ는 지난해 대만의 학생운동 단체가 대 중국 서비스 시장 개방에 반대하며 23일간 대만 입법원 점거 시위를 벌였던 '해바라기 운동'을 거론하며 역효과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린중빈 전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 부주임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국민이 회동에서의 마 총통의 역할이 빈약하다고 판단할 경우 해바라기 운동보다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 경우 국민당의 쇠퇴가 가속화되고 추가적인 분열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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