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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비자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할 겁니다"
하종선 변호사 "'폭스바겐 게이트'는 사기 사건
"세계 1위라는 자신감·기술적 우월감이 원인"
2015-10-07 06:00:00 2015-10-07 06:00:00
이른바‘폭스바겐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수십 건의 소송전이 시작됐다. 압박에 못 버틴 폭스바겐은 문제가 된 전 차량을 리콜하겠다고 결정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30일 소송이 시작됐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브랜드 경유 차량 소유자 2명이 폭스바겐그룹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국내 딜러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61·사법시험 11기)가 대리를 맡았다. 아시아권 첫 소송이다. 폭스바겐코리아도 소 제기 하루만에 국내 판매 차량 12만대를 리콜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소송전은 더 확대될 기세다. 하 변호사에 따르면 소 제기 사실이 알려진 뒤 3일만에 국내 소비자 300여명이 소송참가 절차를 문의해왔다. 폭스바겐이 잘못을 인정한 만큼 승패는 어느 정도 가늠되고 있다. 문제는 배상액이다. 기업의 불법행위 소송에서 피해자인 소비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소송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인정될 배상액 규모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 언론에서도 직접 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의 전망을 살피고 있다.
 
하 변호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자동차 사고 전문가이다. 현대자동차에서 10년간 법무실장으로 일하면서 외국 기업과 법정에서 맞붙을 정도로 자동차 사건에 대해 특히 해박하다. 변호사 초년병시절 미국 LA에서 5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한국 기업을 도왔을 만큼 국제소송에도 능하다. 오히려 폭스바겐쪽에서 국내 소송전의 방어를 맡기기에 적임자다. 그런 그가 소비자 측 대리에 나선 이유를 하 변호사를 만나 직접 들어봤다.
 
하종선 변호사(법무법인 바른).사진/최기철 기자
◇이번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소비자를 속여 자동차를 판매한 사기 사건이다. 형사적으로는 최대 징역 7년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법행위다. 폭스바겐은 대기환경보존법에 의한 사전인증시험 때에만 배출허용기준을 준수하고, 정상운행시에는 배출허용기준을 지키지 않도록 설계된 차단장치를 의도적으로 장착했다. 그리고는 '클린디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차량 배출가스가 적어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휘발류 차량에 비해 연비가 2배 좋고 시내 주행시 가속 성능이 훨씬 낫다고 광고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같은 종류의 휘발유 차량 보다 훨씬 고가에 차량을 구입했다. 운전자의 운행습관이나 주행 환경 등 자동차 외적 변수가 작용하는 연비과장 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의 위법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2.0 TDI엔진은 폭스바겐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다. 이 엔진 안에 필요한 코드들이 2000만개가 넘는다. 비행기보다 더 정교하다. 여기서 오류나 조작을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폭스바겐 엔지니어들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글로벌기업의 '세계 1위'라는 의식과 자신감, 기술적 우위에 대한 오만감이 겹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
 
◇아시아권 첫 소송이다. 어떻게 소송을 맡게 됐나.
 
지인을 통해 연락이 닿아서 왔다. 지난 추석연휴 기간 중에 소장을 만들어서 소송을 냈다. 소송을 빨리 내게 된 것은 우리나라 환경부가 이런 사태를 제대로 처리해줬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도 소송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또 폭스바겐이나 유럽자동차회사들이 한국소비자의 애호를 받는 반면 과연 우리 소비자들에 대해서도 정당한 대우를 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소송을 맡았다. 나름 보람이 있는 것은 소송제기 보도 이후 바로 폭스바겐코리아가 12만대에 대한 문제점을 인정하고 리콜하겠다는 계획서를 관계당국에 냈다는 것이다. 1차적인 성과가 있었다.
 
◇기업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왜 소비자 사건을 맡았나.
 
현대자동차에서 10년간 법무실장을 한 경험이 있다. 그 인연도 있지만 자동차나 항공기 사고와 관련한 제조물책임법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괌 KAL기 추락사고, 대우자동차 급발진 사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에서도 피해자들을 대리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피해자들이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자동차 관련 사고는 매우 전문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기계장치가 항공기 보다 더 복잡하다. 이런 경우에는 피해자 구제가 매우 어렵다.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그렇다. 자동차 사고를 오랫동안 다뤄오고 제조물책임법을 연구한 법률가로서 당연히 피해 소비자 쪽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에서 제조물책임소송 등이 걸린다면 당연히 한국 기업을 위해서 나설 것이다.
 
◇우리나라 피해자 구제가 미흡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미국에서는 피해구제가 제대로 되는데 우리나라는 잘 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등 제조물책임 관련 소송을 대리하면서 느낀 것이 민사소송제도나 법원의 관례, 승소비율, 배상액 등을 미국과 비교해봤을 때 우리나라는 기업쪽에 편향 되어 있다는 것이다. 크든 적든 피해를 어떻게 제대로 해주느냐는 커다란 사회적 과제다. 미국은 배심원재판으로 기업에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미국 기업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커가도 있다. 반면 우리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배상을 받지 못해 평생 한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에게 사고의 상처를 100% 안고 가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제품을 팔때는 '고객'이지만 사고가 나면 '돈 뜯어내는 사람'으로 시선이 급격히 변한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라는 관점에서 소송을 떠나 피해를 정당하게 배상해야 한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선순환의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이번 소송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 피해자 구제정책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우선 법원이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사고 입증책임을 완화 내지는 전환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줘야 한다. 또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금액도 현실화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망자에 대한 위자료는 약 8000만원이 가이드라인이다. 미국에 비하면 턱없는 수준이다. 미국은 우리보다 3~10배 수준이다. 손해배상액을 결정할 때 신체장애율 등을 맥브라이드 공식에 의해 기계적으로 산정하는 것은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징벌적배상이라든지, 집단소송, 입증책임 전환의 법규화 등은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징벌적 배상을 반대해오던 유럽국가들도 점차 도입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브랜드 데미지 손해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브랜드 데미지는 분명히 왔다. 중고차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정해진다. 사태 발발 전과 후 시세, 그 하락폭이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외국 소송과 다른 결론이 나오면 어떻게 되나.
 
다른 나라에서 먼저 어떤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나라 법원이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폭스바겐이 리콜 결정으로 위법행위를 인정한 만큼 승소가능성은 높다. 문제는 정당한 배상인데, 이번 사태는 글로벌 사태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이 미국인에게는 2000만원을 주고 한국인은 1000만원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 차량 판매가격에 따라 산정해야 하는데 차량 판매가격은 한국이 더 비싸다. 가격 대비 조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라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중고시장에서 중고차 가격하락폭이 다를 수 있다. 그런 것은 국가별로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고인단 추가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1차 소송 후 1000여건의 문의가 들어왔고, 500여명이 소송 제출 서류를 보내왔다. 6일 이분들 중 38명을 대리해 추가로 소송을 냈다. 계속적으로 원고인단을 구성해 추가 소송을 하면서 집단소송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라서 소송에 참가를 하지 않으면 피해배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자백을 받았다. 우리 정부의 감독책임은 없나.
 
ECU(electronic control unit, 자동차엔진 전자제어장치)안에 숨겨져 있는 코드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감독책임은 없다고 보인다. 다만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대학팀이 테스트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 1년이 넘는다. 환경부 담당자 등이 보고 미리 알 수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발표되는 논문을 다 읽어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만 미국에서는 1년 전부터 문제가 된 것을 우리가 몰랐다는 것은 다소 아쉽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기업 비즈니스딜 전문가로 많이 알려졌다. 
 
소송과 딜 두가지를 병행하고 있다. 대형 M&A를 여러 건 했다. 현대건설 인수, 대한알미늄 매각, 자동차 부품회사들 M&A 등이 있다. 기업을 위한 일도 매우 중요하다. 기업과 소비자가상생할 수 있는, 윈윈할 수 있는 선순환의 생태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말 하면, 우리는 기업과 고객과의 관계가 사고가 발생하면 아주 적대적으로 전환되는 악순환의 생태계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제도개선이라든지 재판실무관행이라든지 이런 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어야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대리 중인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합의가 만족하게 진행되고 있다. 합의 내용이나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미국 현지법에서 공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27명, 중국인 원고도 20명 이상 참가하고 있다.
 
하종선 변호사. 사진/최기철 기자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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