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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스토리)혁신이 어렵다고? 그럼 따라해!
'카피캣'도 훌륭한 전략, 불온시 말아야
단, 맹목적 카피 아닌 적절한 변주 있어야
2015-10-06 14:19:14 2015-10-06 14:19:14
미국의 발명가이자 글로벌 종합가전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의 창업자 토머스 에디슨은 2000번의 실패 끝에 전구 발명에 성공했다. 중도 포기를 생각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실패가 아닌 2000번의 단계를 거쳤을 뿐"이라 답하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을 실천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오늘날에는 에디슨같은 성공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실패를 기다려줄 시간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조언보다 "성공한 기업에서 베낄만한 것을 찾아라"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를 두고 혹자는 '카피캣'이라고 비난하지만 모방 전략은 이미 이론적으로도 성공의 한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맹목적인 복제가 아닌 나름의 변주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잘 나가는 제품을 그대로 따라하는 미투(me-too) 제품을 뜻하는 카피캣. 어원은 분명치 않지만 지난 2012년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장에서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가 삼성전자, 구글, 모토로라를 카피캣이라고 지칭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카피캣은 중국의 샤오미다. 태생부터 '짝퉁 아이폰'이라 불렸던 샤오미는 신제품을 발표하는 CEO의 모습부터 플래그십 매장 디자인, 제품 라인업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휴고 바라 샤오미 부사장이 직접 나서 "더 이상은 애플의 카피캣이 아니다"라고 항변하고 스마트 체중계, 정수기 등 애플에게는 없는 기발한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혁신자보다는 모방자에 가깝다.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샤오미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카피캣, 비난받아야 할 대상인가
 
그런데 카피캣이라는 꼬리표가 나쁘기만 한 것일까. 카피캣을 기반으로 한 성공은 자랑스럽지 않은 것일까. 경영학 서적에서도, 대학에서도, 초기 사업가를 양성하는 기업가정신 프로그램에서도 모두 혁신을 강조한다. 혁신 펀드는 존재하지만 모방 펀드는 이름 조차 생소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혁신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모방은 불온한 것으로 여긴다. 벤처 정신이 발달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인식이 더 강하다.
 
하지만 모방은 실질적인 비즈니스의 일부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모방이란 바나나를 팔던 상인이 망고의 판매 수익이 더 높다는 것을 깨닫고 망고를 팔기 시작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애플의 아이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카이드라이브, 구글의 클라우드스토리지 등 기업마다 비슷한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점도 모방을 죄악시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혁신이 존중받았던 이유는 잠재 수익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고 HBR은 덧붙였다.
 
더 나아가 '카피캣'의 저자 오데드 센카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글로벌 경영학과 교수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좋은 비즈니스라 칭송하는 것은 마치 종교와도 같다"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가 비합리적일 정도로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으로 혁신의 아이콘이 된 애플도 모방자였던 과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이미 시장에 나와있던 MP3플레이어, 터치스크린 스마트폰, 태블릿PC를 보기 좋게 재창조했을 뿐이란 설명이다. 완벽하게 무에서 유를 창출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카피캣으로 꿈꾸는 최고의 인터넷 플랫폼
 
카피캣 전략의 최대 장점은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성공을 통해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 혹은 서비스가 무엇인지 알 수 있어 불필요한 기회비용을 덜어낼 수 있다. 개척자가 얻을 수 있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포기하는 대신 적절한 가공을 통해 '최고'의 자리는 노려볼 수 있는 것이다. 대기업들 조차 새로운 것을 창초하기 앞서 합법적으로 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이미 존재하는지를 탐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중국처럼 새로운 영역에 대한 정부의 규제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카피캣이 혁신보다 더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로켓인터넷은 카피캣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 대표적인 곳이다. 2007년 독일 베를린에서 출발한 로켓인터넷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 시장에서 이미 증명된 인터넷 사업 모델을 발굴해 비슷한 콘셉의 기업을 만들어 미개척 시장에 론칭하는 것이 주된 비즈니스 방식이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플랫폼이 되는 것"이라는 미션에도 이들의 전략이 녹아있다. 로켓인터넷이 지원을 한 인도의 자봉, 라틴아메리카의 다피티, 아프리카의 주미아 등은 자포스나 아마존을 표방한 카피캣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전세계 110여 개국에서 80여개 기업을 지원했다. 연간 10개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로켓인터넷 주요 사업내용(자료=로켓인터넷 홈페이지)
 
올리버 잠베어 로켓인터넷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카피캣이라고 불리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는 "훌륭한 아이디어와 행동 계획이 있더라도 지식과 자본이 없으면 무의미하다"며 "지식과 자본이 있는 로켓인터넷은 아이디어만 차용하면 된다"고 언급했다. 로켓인터넷이 투자자보다는 설계자에 가깝다고 설명한 그는 "쾌속정과 같은 신생 기업을 항공모함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맹목적 복제보단 적절한 변주를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카피캣의 성공이 맹목적인 복제의 결과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켓인터넷의 모방 전략에도 원칙은 존재했다. 제일의 불문률은 합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복제를 한다는 것이다.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올리버 잠베어는 형제인 마크, 알렉산더와 함께 1999년 온라인 경매사이트 '알란도'를 설립했다. 창업 몇 달 만에 5000만 달러를 받고 이베이에 매각을 성공한 잠베어 형제는 페이스북을 모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터디VZ'를 만든다. 페이스북과는 푸른색과 붉은색의 색깔 차이만 뒀을 뿐 레이아웃, 그래픽 등 여러 부분에서의 디자인을 차용했다. 결국 페이스북이 독일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각각 소송을 제기했는데, 독일에서는 잠베어가, 캘리포니아에서는 페이스북이 이겼다.
 
독일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로켓인터넷은 성공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해 미개척 시장에 론칭하는 '카피캣'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진은 지난해 증시 상장 당시 피터 킴펠 최고재무책임자(CFO), 올리버 잠베어 최고경영자(CEO), 알렉산더 쿠드리히 그룹 매니징디렉터(왼쪽부터)의 모습. (사진=로켓인터넷)
 
두번째는 특정 지역이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하고 최대한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다. 로켓인터넷의 모니터링팀은 끊임없이 전세계에서 등장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찾는다. 눈에 띄는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하면 짧게는 3시간 길게는 이틀 안에 복제 여부를 결정한다. 주로 러시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등 선도 기업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 곳을 진출 대상으로 삼는다. 이어 4~6주 내에 새로운 기업의 홈페이지를 구축한다. 로켓인터넷이 새 서비스를 론칭하는데는 100일이면 충분하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관계자가 "로켓인터넷의 의사결정 속도는 매우 놀랍다"고 평했을 정도다.
 
세번째는 모방을 위한 표준화 작업 위에 현지 시장 적응을 위한 차별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성공이 증명된 서비스라도 소비자의 습성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로켓인터넷은 이커머스, 마켓플레이스, 금융기술, 여행 등 네 개 분야에만 집중을 한다. 소매판매나 중개시장 형성 등 인터넷 플랫폼의 강점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에 주력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IT, SEM, SEO, BI, CRM 분야의 전문가가 시장을 면밀히 살핀다. 또한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라틴아메리카, 중동 등지에 지역 인터넷 그룹(RIG)을 만들어 현지의 관습과 고객 수요에 맞는 솔루션 개발에 힘을 쓴다. 현지의 공급 체인을 어떻게 구축할 지, 물류 네트워크는 어떻게 만들지 등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하는 것이다. 자체 물류창고를 사용하며 배송을 책임지고 자체 브랜드(PL)를 제공해 인프라 기업들을 만들어 낸 것이 그 성과다.
 
이 같은 점들은 로켓인터넷의 기업공개(IPO) 대박에도 기여했다. 지난해 10월 독일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며 16억유로(약 2조원)의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2007년 20억유로를 모으며 시장에 입성한 엔진제조업체 토그넘 이후 최대 규모다. 로켓인터넷은 글로벌 모바일 이용자의 74%를 고객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전세계 중산층 규모가 확대되는 가운데, 신흥국의 디지털 네이티브 성장과 소비 패턴의 비약적 발전 등 우호적인 환경이 장미빛 미래를 열어줄 것으로 로켓인터넷은 기대하고 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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