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을 쓴 소설가 박태원은 한국전쟁 중 월북했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맏딸 설영만 아버지를 따라 북으로 갔다. 박설영씨는 평양기계대학 영문과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남쪽에 남은 자녀들 중 큰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을 얻은 후 1990년 평양을 방문해 큰누나 설영씨를 만났다. 아버지 박태원이 세상을 뜬 지 4년 후의 일이었다.
박태원의 아들·딸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06년 이산가족 상봉에서였다. 55년 만의 짧은 재회였다. 당시 공동취재단의 일원이었던 나는 이들의 만남을 취재하는 임무를 맡았다. 유명 소설가의 집안이라 밀착 취재기 필요했다. 박태원 둘째딸의 아들, 즉 박태원의 외손자가 영화감독 봉준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사가 꽤 커졌다.
그후로 박태원의 차남 재영씨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구보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이 상연될 때나 ‘박태원 삼국지’ 출판기념회가 열릴 때 등 기회가 있으면 나를 초대했다. 가족사의 중요한 장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기록한 언론인에 대한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평양의 누나를 만나 설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나를 여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로서도 이산가족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만남을 취재했던 경험이다.
상봉 후 몇년 동안 박재영 선생은 언젠가 다시 누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게 안 되면 화상상봉으로라도 볼 수 있지 않겠냐고 활기차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가 점차 악화되면서 선생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며칠 전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팔십 누님이 살아 계신지 알지도 못해.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
언제든 부모형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자유. 이산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이처럼 매우 기본적인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조차 해내지 못하는 정부라면 존재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려 한다면 뜯어말리는 대화에 나서서 상봉에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령 북한이 발사를 감행하더라도 상봉행사만큼은 성사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목적을 분명히 하다 보면 다른 일들은 자연히 풀린다. 이산가족 만남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남북관계를 유지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통일대박’도 그때에나 가능하다.
황준호 통일외교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