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류석기자]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혁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 됐다. 현실에 안주하는 결정을 내리거나, 시대에 역행하는 순간의 판단 미스는 전세계적으로 시장점유율 과반을 넘게 차지했던 대기업일지라도 언제든 몰락의 길로 빠져들게 만든다. 애플의 계속되는 혁신에 뒤쳐진 모토로라와 노키아가 그랬다. 이 때문에 많은 대기업들이 혁신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내부적으로 해결이 안되면,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인수해 혁신 역량을 수혈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업 내부에서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최근 LG경제연구원에서는 '집단 창의와 협업, 우리는 왜 픽사(Pixar)처럼 안될까'라는 보고서를 통해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의 구성원들 간의 신뢰에 기반한 집단 창의와 협업을 우리 기업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픽사는 집단 창의와 협업을 통해 인재들의 시너지가 발휘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평가는 픽사의 집단 창의와 협업의 핵심 매커니즘이자 전통인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 덕분에 가능했다.
브레인트러스트는 픽사를 대표하는 핵심 멤버들과 영화 감독, 제작팀이 한 자리에 모여 제작 중인 영화의 이슈나 어려움을 공유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다. 이러한 브레인트러스트는 픽사에서 영화 제작 시 꼭 거쳐야하는 과정을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지원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는 우리가 몰랐던 획기적인 제도는 아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우리와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내포돼 있다"고 설명했다.
◇픽사 직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픽사
보고서에서는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의 차별화 요소로 '문제 해결 중심의 생산적 회의'라는 점을 들었다. 보고서는 기존 우리 기업들에서 진행되는 회의는 사업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롭게 토론하기 보다는 보고를 위한 회의가 많다 보니 회의를 위한 문서 작성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브레인트러스트는 단순히 진척 상황을 체크하기 보다는 어려움을 공유하고 동료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덧붙여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또 브레인트러스트는 회의라는 형식에 치중하지 않는다. 의견과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상호 교환되고 결합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브레인트러스트는 포지션 파워가 작동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한다. 기업의 피라미드형 위계 문화 속에서 상급자의 발언에 따라 결론이 정해지는 오류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픽사 또한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시행착오를 수 차례 거쳤다. 이에 픽사는 브레인트러스트를 순전히 동료로서 조언을 주기 위한 자리로 명확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오류가 개선됐다.
픽사의 의견 충돌을 감수할 수 있는 상호 신뢰 문화도 브레인트러스트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데 한 몫 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비평받을 때 불쾌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초기에 픽사에서도 브레인트러스트 과정에서 이러한 일이 잦았다. 이에 픽사는 피드백을 해주는 집단과 자신이 경쟁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임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브레인트러스트는 구성원들 누구나 신뢰를 기반으로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할 수 있는 집단 창의력의 원천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구성원 각각의 리더십도 남달랐다. 픽사 리더십의 특징은 한마디로 혁신의 장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특징이 있다. 픽사의 회의를 보면 픽사의 리더들은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의지를 계속 북돋우고 지속적으로 아이디어 교류와 창조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박지원 연구원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조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절충하거나 취합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리더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지적 자극을 이끌어내는 고도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픽사는 물론 복잡한 협업을 거치지만 책임 관계도 분명히 한다. 통상 집단 창의나 협업 과정에서는 책임이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 픽사는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고 규정지었다. 또 기본적으로 픽사 내부에는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공포스러운 존재로 보기보다는 학습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박지원 연구원은 "픽사의 브레인트러스트 제도는 그 누구도 모방 가능하지만 픽사만의 신뢰 문화와 창조적 마찰의 장을 열어주는 리더십은 쉽게 따라가기 어렵다"며 "제대로 된 집단 창의와 협업으로 실현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은 제도 모방이 아니라 집단 창의와 협업의 본질부터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석 기자 seokitno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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