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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중-러 신밀월시대, 경제난관 돌파가 최우선 과제
시진핑-푸틴, 양국 전승기념식 참석해 연대 과시
인프라·에너지 협력, 경기둔화 여파에 좌초 위기
2015-09-10 16:19:12 2015-09-10 16:19:12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거행된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은 중국의 글로벌 파워를 과시하며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쩌민, 후진타오 등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해외 귀빈들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줄곧 시진핑 주석의 옆 자리를 지킨 이가 있었는데,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가 굳건해지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다. 중국행을 앞둔 푸틴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는 역대 최상"이라고 자신할 법하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관계가 얼마나 무르익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휘청이는 경제에 발목잡혀 미국과 일본의 동맹에 맞설 힘을 기르기도 전에 와해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뒤따른다. 
 
◇이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거행된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서 푸틴 대통령은 줄곧 시진핑 주석 옆자리를 지켰다. (사진=뉴시스/AP)
 
텐안먼 성루에 오른 시진핑과 푸틴의 모습은 4개월 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2차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의 재현이다. 서방 국가의 외면 속에 그들만의 잔치로 치러질 뻔한 행사에 시진핑 주석이 100여 명의 의장대를 이끌고 직접 나타난 덕에 러시아의 체면이 살았다. 지난 2012년 시진핑이 중국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 이어진 외교적 밀월관계의 산물이다. 이들은 지난해 다섯 차례의 회동을 가진데 이어 올해에도 7월의 브릭스(BRICS) 정상회담까지 포함해 세 번이나 만났다. 이를 두고 중국의 환구시보는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보다 긴밀해지고 있다"며 "두 나라가 같은 역사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러, 전략적 이해관계에 '신밀월' 형성
 
푸틴 대통령의 말처럼 중국과 러시아는 전례없는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 시기에도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세부 노선 차이로 전쟁의 위기까지 치달았던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만 하다. 두 나라의 관계가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이후다. 1992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이 중국을 국빈 방문해 '건설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것이 시작이다. 이어 199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관계를 격상시켰고, 1998년에는 리펑 당시 중국 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동등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의 공동 코뮈니케를 도출했다. 2001년 체결한 선린우호협력조약을 통해서는 국경 분쟁 문제도 해소시키며 경제적·군사적·전략적 연대를 공고히했다.
 
'신 밀월관계'로까지 불리는 최근의 협력 강화는 중국 경제의 빠른 성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두 나라의 무역 규모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00억달러를 겨우 넘어섰지만 지난해 기준 950억달러까지 확대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세계적인 경제 한파가 몰아쳤던 2009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높은 수준의 성장세를 보였다. 2010년부터는 러시아의 주요 무역상대국 명단에 중국이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서로의 존재가 필요하도록 국제 정세가 형성된 것은 협력의 촉매제가 됐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봉쇄정책을,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를 이겨낼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대가로 수입제한 조치와 금융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얻은 러시아는 중국과의 인프라·에너지 부문 협력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고, 중국은 우주항공·군사 영역에서의 협력 강화로 미·일 동맹에 대항할 파트너를 얻었다. 정부 차원에서 시작된 공조는 민간 분야로 차츰 확대돼 '국가의 해', '언어의 해', '관광의 해', '청년교류의 해' 등의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일대일로-EEU 연계 약속
 
지난 5월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얻은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서로 연계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의 패권 경쟁으로 비춰졌던 두 가지 경제 구상의 통합적 발전을 약속하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중국과 러시아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 곤란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부담을 덜어줄 수 있게 됐다.
 
네 달 후 다시 만난 두 정상은 외교, 인프라, 교육, 과학기술, 경제, 에너지, 투자, 금융, 무역, 전력, 교통 등의 분야에서 약 30여 개에 이르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포함해 두 나라가 현재 논의 중인 프로젝트 협력만 해도 6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 기업간의 협력도 이어졌는데, 중국의 국영 석유기업인 시노펙은 러시아의 천연가스가공 및 석유화학 제품 기업인 시부르와 전략적 투자 협정을 체결했다. 루스코예 석유가스전과 유루브체노-토콤스코예 석유가스전 개발 허가증을 보유한 기업의 지분 49%를 인수해 전략적 투자자의 지위를 획득해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를 위한 국부펀드 중국실크로드펀드는 야말LNG프로젝트의 최대주주인 노바텍과 9.9% 지분 참여에 관한 협정을 맺어 첫 번째 대(對) 러시아 투자를 성사시켰다.
 
여기에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의 장미빛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발언은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그는 중국 방문 전 러시아 국영언론 이타르-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해 불법적인 제한 조치들을 사용하는 것이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는 양국 기업들이 계속해서 상업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 열병식 직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 동방경제포럼에서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중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겠다"며 "양국 국민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중국측 대표로 참석한 왕양 국무원 부총리는 "중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발전 단계에 발을 내딛었다"며 "자원개발, 가공 제조업, 현대 농업, 항구 물류 등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화답했다.
 
◇잘나가던 중국의 혼란, 공조에도 균열
 
이렇게만 보면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바람에 돛 단 듯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틴의 방중 이후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양국의 공조가 "겉만 요란한 빈수레"라며 "푸틴이 얻은 실익은 없었다"는 혹평을 내놨다. 벌여논 사업 계획에 비해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5월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이 수주한 4000억달러 규모의 가스 공급 계약이다. 2019년부터 공급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현재 가스관 건설을 위한 550억달러 가량의 중국측 자금 지급이 지연되고 있으며 공급 가격이 국제 유가와 연동된 탓에 유가 급락으로 인한 재협상을 해야 할 상황이다. 시베리아 서부 지역을 통해 공급하려는 '알타이 파이프라인'도 별다른 진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양국 경제의 동반 부진에서 비롯됐다. 서방 국가의 제재로 루블화 가치 하락, 살인적인 물가상승률 등 경제의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는 국제 유가 급락의 이중고에 허덕이며 두 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중국의 성장 둔화는 더 큰 파급력을 가져왔다. 주요 성장 동력이 수출 감소 등의 여파로 성장률은 정부의 마지노선인 7%를 간신히 지켜냈고, 거침없는 상승 랠리를 펼치며 5000선을 웃돌았던 증시도 3000포인트에 근접한 수준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에 지난해 250%의 급증세를 보였던 중국의 대 러시아 투자는 올 상반기 80억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투자를 약속한 프로젝트의 자금 집행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반기 기준 양국의 무역 규모는 전년 동기의 70% 수준인 311억달러에 그쳤다. 올해의 목표치인 1000억달러 달성은 물론 2012~2013년보다도 못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20년까지 무역규모를 2000억달러로 확대하겠다는 계획 역시 요원해지고 있다.
 
중국 상무부 관계자는 "무역 규모는 줄었지만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는 과도기 일 뿐"이라며 비관론을 경계하고 있지만 경제학자들의 해석은 다르다. 중국이 러시아의 주요 무역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는데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외교전문매체 더 디플로맷은 "러시아 정부의 차이나드림은 연기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급격하게 떨어질 경우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목인 원자재 수요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러시아 연방정부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국 경기 부진에 경제 제재로 인한 투자 불확실성까지 높아져 중국 투자자들이 소극적으로 돌아서게 될 것이란 의견도 이어진다. 이렇게 될 경우 중국을 발판으로 베트남, 인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계획에도 차질이 있는 것은 물론 경제 제재를 가한 서방 국가에 손을 내미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동맹 강화를 원치 않는 서방 국가들의 바람대로 판세가 짜여지는 모양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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