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스포츠그룹, 스포츠산업의 SM·YG 꿈꾼다
여러 경험의 '저니맨' 최익성 대표 "한국은 아직 스포츠산업 기회가 있다"
"스포츠는 변수 많아 육성시스템 있는 매니지먼트·기획 꼭 필요"
입력 : 2015-08-16 15:44:51 수정 : 2015-08-16 15:44:51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는 겉보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흥행산업'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두 산업 모두 관객이 꾸준하게 찾아와야 유지된다. 다만 한국에서 이 둘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한류 바람이 일면서 산업적 성공의 선례가 된 엔터테인먼트와 달리, 스포츠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프로야구 최고 '저니맨(Journey Man, 해마다 소속팀을 바꾸는 선수)'이었던 최익성 저니맨스포츠그룹 대표는 이같은 국내 스포츠 비즈니스 상황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바꿔말하면 스포츠의 비즈니스 영역에 아직도 미개척 분야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준비된' 최 대표가 자신있게 스포츠 비즈니스 분야에 새 시추선을 띄운 이유기도 하다.
 
최 대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중학교 2학년 야구를 시작했지만 노력 끝에 프로선수가 돼 20홈런(22개)-20도루(33개) 클럽에 드는 인간승리를 거뒀다. 또 삼성에서 데뷔한 후 한화(1999년)·LG(2000년)·KIA(2001년)·현대(2002-2003년)·삼성(2004년)·SK(2005년) 등 국내 프로야구 역대 최다인 6개팀을 거쳤다.
 
선수생활 이후 그는 폭넓은 경험을 해왔다. 청바지 판매, 강연 활동, 연예게 진출, 후진 양성, 출판사 창업 등 선수생활이 끝난 후에도 그의 인생은 저니맨이었다. 최근 최 대표는 한 건물을 통째로 스포츠 관련 시설인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로 확장개관하며 주목받았다. 준비 없이는 못한다고 생각했고 큰 꿈이라 오래도록 기다리며 준비했다는 최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익성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저니맨스포츠그룹) 대표. (사진=이준혁 기자)
 
◇"'여행'을 떠나는 삶이 있고, '진짜 여행'을 떠나는 삶이 있다"
 
-옥상을 빼고도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빌딩 전체를 쓴다.
▲전체를 쓰지 않으면 선수 관리의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한다.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관리가 철저해야 하고 한 곳에 여러가지 시설이 갖춰져야 용이하다. 다행히 좋은 빌딩을 5년간 장기로 빌려 다양한 공사를 마쳤다.
 
-현재 여기서 함께 일하는 직원과 배우는 수강생 등은 얼마나 되나.
▲직원은 프런트 형식의 관리직 3명, 코치 3명, 트레이너 2명, 1층 카페 직원 4명 등이 있다. 확장 개관한지 얼마 안돼 수강생은 20~25명 정도 규모다.
 
-혼자 이같은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을 듯 싶다.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다만 투자의 형태로써 참여하는 타인은 없다. 혼자서 이끌고 가고 있다.
 
-BI(Brand Identity)에 'RJ'라는 알파벳 표식이 있다.
▲RJ는 '진짜 여행'을 의미하는 'Real Jouneyman'이다. '여행'을 떠나는 삶이 있고 '진짜 여행'을 떠나는 삶이 있다. 한 단계 더 높은, 프로에 비해 더 높은, 진짜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그동안 했다. BI에 RJ를 택했던 이유다.
 
-건물을 둘러보니 "타협은 없다"라는 문구가 계단에 보인다.
▲재활훈련·체력단련 등을 하는 2층의 문구다. 재활할 때 타협하면 안 된다. 마음이 타협점을 찾으면 의지가 꺾인다. '무조건'이란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 마음에 약한 모습이 자리잡으면 고칠 수 없다. 더불어 이 문장은 (내) 삶의 모토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트레이너 출신의 어은실 박사도 함께 일을 돕고 있다고 들었다.
▲LG 선수 때 알게 됐고, 재활 쪽으로 겪어본 사람 중 지식·공부·경험 최고의 분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체력·재활이다. 선수들은 몸이 최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최고의 분과 함께 해보고 싶었고 교류 형태로 돕고 있다.
 
-1층에 카페도 있다.
▲내가 자신있게 권할 음식을 만든다. 아침 7시부터 야구 중계가 끝날 때까지 운영한다. 직접 배양해 수강생에게 먹이는 것을 카페에서 판매한다.
 
◇건물 한 동을 통째로 사용하는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옥상부터 지하에 이르기까지 야구선수 육성을 위한 시설로 채워졌다. 서울 밖에서 온 선수를 위한 숙소도 마련됐다. (사진=이준혁 기자)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의 미래 목표는 '야구전문 대안학교'
 
-장기적으로는 대안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들었다.
▲장기적인 목표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다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시작이 반이다.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들을 2~3년 가르치며 대안학교 필요성을 체감했다.  음악 분야로는 국악 전문 학교가 있다. 스포츠에서는 골프에 전문 학교가 있다. 그런데 야구는 아직 없다. 이제 야구도 전문 학교가 필요하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과정을 배워가야 한다. 그래야 가서도 생존 확률이 있다. 최근 대형 신인이 안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안학교는 어느 과정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특히 고등학교 과정 교육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 초·중학교 시절에는 클럽 형식이고 고등학교 시절 선수 육성과정을 밟는 미국 시스템을 하고 싶다.
 
-대안학교는 지금의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필요할텐데.
▲인가된 대안학교가 목표다. 만약 인가된 대안학교가 나오기 힘들다면, 검정고시를 보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커리큘럼에 갖춰 만들려 한다. 야구에 승부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의 교육을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다.
 
-최근 시합은 어떻게 하고 있나.
▲매주 1게임 정도 하고 있다. 다만 상대를 보고 야구하지 말고 자신의 공을 던지고 자신의 스윙을 하라고 말한다. 상대가 고등학생이든 프로든, 내가 원하는 곳에 공을 집어넣어야 하고 공을 날려야 한다. 강한 상대에 주눅들지 말고 약한 상대를 얕봐서도 안 된다. 자신의 야구를 해야 한다. 시합을 하되 그런 식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소년야구리그를 창설하고 직접 관리·교육 중인 것으로 안다.
▲3년전에 서울지방경찰청과 공식적으로 함께 손잡고 리그를 꾸리게 됐다. 8개팀에 소속된 250여명 규모고 4월이면 개막전을 시작으로 리그 형식으로 운영한다. 서울청 산하 경찰서가 후원하는 형태며 팀명도 그런 형태다.
 
-서울청만의 후원으로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사실 서울청을 토대로 시작했지만 각계각층의 도움이 없었다면 리그 운영은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한국청소년육성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힘을 보태고 있다.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전경. (사진=이준혁 기자)
 
◇"선수 시절 '저니맨',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 브랜드로도 사용 중인 '저니맨'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제 웃을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팀을 옮겨다니는 것은 당시 매우 힘든 일이었을텐데.
 
▲선수 때 너무 힘들었다. 지금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치 않지만 선수 시절에는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 이제는 웃으면서 하는 말이 본격적인 첫 풀타임 해 122경기를 뛰면서 142안타 22홈런 33도루 65타점 107득점 성적을 냈지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다음 해 딱히 이름도 없는 신예에게 밀렸다. 기회를 박탈 당해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프로 인생에서 힘든 부분이었다. 
 
-처음 팀을 옮겼을 때의 기분은. 그 때만 해도 '저니맨'이 될 줄은 몰랐을 것 같다.
▲처음에 트레이드 됐을 당시에는 고향 팀이자 데뷔 팀인 삼성에 대해 애착이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10년을 피나게 연습생 생활을 해왔던 점도 있었기에 가혹하게 느껴졌다. 트레이드될 때마다 굉장히 힘들고 눈물도 흘리고 복수의 칼날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고 나니 4팀째부터 포기했다. 그냥 '저니맨'을 운명으로 수용했다.
 
-2005년 SK에서 나와 한국을 떠나 미국에 갔다.
▲한국에 길이 없었다. 너무 늦게 방출됐기 때문이다. SK에서 보류선수 확정 마지막 날인 11월30일 밤 10시 전화 한 통으로써 방출됐다. 힘 한번 못 써보고 잘렸다. 그해 플레이오프 주전을 뛰었고 코칭스탭도 좋게 얘기를 했는데 영문을 몰랐다. 아직도 국내 프로야구에는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는데 사실 방출하려면 일찍 방출해줘야 한다. 그래야 선수도 다른 구단을 알아보며 인생의 길을 찾는다. 아무튼 나는 한국에서 길이 막혔다. 선수에 대한 욕망이 있었기에 구단의 프런트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행 티켓을 끊었다.
 
-미국에서도 쉬운 삶은 아니었을 것 같다.
▲에이전트 없이 혼자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가서는 한국과 다르게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도장깨기도 아니고 계속 곳곳을 찾아다녔다. 6개월을 보냈다.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회의실 벽에 부착된 최익성 대표의 선수 시절 신문 기사 모음. (사진=이준혁 기자)
 
◇출판사, 탤런트, 강연, 교육 등 선수 이후의 삶도 '저니맨'
 
-미국에 간 지 6개월 지나 한국에 왔다.
▲관광비자로 갔기 때문에 6개월마다 한국에 왔다. 결국 세 번을 갔고 내 모든 재산을 야구에 쏟아부은 셈이 됐다.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그 기회는 영원히 안 올 것'이라고 봤다. 그렇게 하길 2년 지나고 결국 내 인생의 선수생활을 접기로 결정하고 돌아왔다.
 
-귀국하니 상황이 어떠했나.
▲공항에 왔을 당시에 무일푼이었다. 노숙자 처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감 하나만 충만했다. 지인 사무실에 퇴근하고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잠을 청했고, 때론 창고에서 잠을 잤다.
 
-한때 탤런트도 했다.
▲책도 냈고 방송 활동도 했고 강연도 했고 이후 여러 사업도 벌였다. 구체적으로 탤런트가 된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던 것은 아니다. 연기는 전문성이 있는 힘든 직업이다. 우연이었다. MBC의 야구 드라마를 도와주다 배우 윤태영의 도움과 권유로 우연한 기회에 섭외돼 시작했다.
  
-뭔가 시작하면 올인을 하는 스타일 같다.
▲그 순간 그 순간 필요했던 것들을 부딪히며 세상 나와 했다. 올인이 이렇게 무서운 것일지를 몰랐다. 올인할 때는 몰랐는데 올인은 다음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해야만 한다. 다음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나는 올인을 했다. 그런데 누구나 경험 없이 태어난 존재다. 타협을 하면 힘들다. 쉽지 않지만 올인하면 뭐든지 할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떤 일이 됐든 된다.
 
-'저니맨'이라는 책을 펴냈다.
▲딱히 특별한 계기는 없다. 나는 당당하다. 아버지와의 약속으로 시작한 야구고 약속을 지켰다. '피하지 말고 한번 내보자, 자신의 위치와 달리 성공 스토리를 내는 것이 성공'이라는 생각과 내 인생이 정말 당당하면 세상에 보여보자는 생각에 책을 냈다.
 
◇최익성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저니맨스포츠그룹) 대표. (사진=이준혁 기자)
 
◇"저니맨스포츠그룹, 스포츠산업의 시스템 구축할 것"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운동선수 출신의 최초 성공 사업가'가 되고자 열심히 살고 있다. 대안학교는 교육적·공익적 측면에서 꾸준히 준비할 것이고, 비즈니스 분야에선 현재 운영하는 출판사도 있지만 여러 가지 생각 중이다. 출판사(RJ컴퍼니)에서는 웹툰도 준비 중이고 다른 것도 한다. 토탈 스포츠 비즈니스 회사를 잘 꾸리려 준비하는 중이다.
 
-토털 스포츠 비즈니스 회사면 어떤 형태를 구상 중인가.
▲선수 교육, 매니지먼트, 사업 기획, 이 모두를 감당할 수 있는 회사가 돼야만 한다. 스포츠 시장은 산업화가 되면 큰 수 있는 시장인데 한국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 비해서 시작이 작다. 국내에서는 발굴이 아직 덜 됐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아직 기회가 있다.
 
-기획과 매니지먼트는 어떻게 하려 하나.
▲스포츠는 연예인에 비해 변수가 많다. 그래서 육성시스템이 있는 매니지먼트와 기획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지금 대한민국 환경에서는 특히 필요하다. 프로야구만 봐도 10개 팀이 있고 자유계약선수(FA)가 100억을 받는 시대나, 엄밀히 보면 위로 치고올라오는 선수가 거의 없다. 이렇게 계속 고이기만 하면 망한다. 다수 타종목도 이런 상황이다. '프로 선수로서 갖춰야할 것'을 못 배웠기 때문이다. 저니맨스포츠그룹은 한국의 프로스포츠에 필요한 스포츠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
 
-육성시스템을 중요하게 보는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갖추려고 하는가.
▲자동차를 고칠 수 있는 정비소가 없다면 자동차를 구입하기 어렵다. 스포츠도 마찬가지 산업이다. 팔기만 하고 고치지 못하면 커질 여지가 줄어든다. 체육은 선수 출신이 더욱 잘 안다. 연예게는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 등의 가수 출신이 시스템을 만들어 결국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활성화시켰다. 스포츠도 그런 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 필요하다. 나는 짧지만 위에도 있고, 바닥 경험도 했다. 남들보다 넓게 다녔고 야구 이외에도 여러 일들을 했다. 상하좌우 세상을 넓게 보니 스포츠도 육성 가능 회사가 필요하다 봤다. 이후 시장을 파악했고 앞으로 그간 준비한 것을 펼치려 한다.
 
-'저니맨스포츠그룹의 미래'는 무엇인가.
▲스포츠 선수는 은퇴한 후 무방비 상태로 세상을 맞이한다. 잘못된 길을 택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스포츠의 산업화는 요원하다. 가수는 강타·보아 등 임원으로 큰 좋은 사례가 많다. 성공적 롤 체인지(Roll Change)다. 한국은 아시아 스포츠 비즈니스를 이끌 수 있다. 다양한 형태로 시장을 만들어 사회에 이바지하고, 스포츠계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 선수로 오래 몸담았고 준비 과정도 길었다. 준비 없이는 못 한다고 생각했고 큰 꿈이기에 더 기다렸다.
 
-쉽지 않은 길일 것이다.
▲스포츠산업은 지금이 치고 나가기 좋은 시기다. 운동선수 출신이라고 무시받기 쉽지만 못할 일은 아니다. 나는 준비과정을 오래 거쳤고, 선수로 이 바닥에 오래 몸담았기에 모든 과정을 잘 안다. 준비 없이는 못 한다고 생각했고 큰 꿈이기에 더 기다렸다.
 
-현업 종사자로서 스포츠산업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러 가지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한다. 스포츠펀드가 생겼고 나라에서도 관심을 두나 전문가가 없기에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 스포츠산업은 향후 국가에 미칠 영향도 크다. 시장이 10배 이상 커질 것이다. 많이 관심갖고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준혁 기자 lee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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