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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사지로 내몰리는 '하청 노동자'
노동자 510명 설문조사…정부 통계와는 '딴판'
하청 노동자, 죽어서도 '차별'…개선책은 전무
2015-05-26 10:00:00 2015-05-26 18:17:15
철강·조선·건설·기계 등 중후장대 산업은 산재 보험 처리가 2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80%는 산재 보상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가 원청보다 차별받는다고 생각했다. 취재팀이 노동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한 결과다.
 
◇산재 줄었다는 정부…현장과는 '딴판'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산재 발생 현황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연간 산업 재해자 수는 9만909명이고, 이중 사망자는 1850명이었다. 전체 노동자 수(1706만2308명) 대비 산재율은 0.53%다. 덧붙여 정부는 2014년 12월 기준 재해자와 사망자가 전년보다 각각 1.0%, 4.1% 줄었다며 해마다 감소세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정부 통계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정부의 통계는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부로 접수돼 보험 처리가 인정된 산재만 집계된다. 기업이 노동자의 산재를 공상처리하거나 개인비용으로 부담할 경우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정부는 법으로 규정된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청에서 발생한 산재 사상자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부는 하청 노동자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의지가 없다"며 "원청에서 만연한 산재 은폐도 정부의 부실한 통계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정부 통계에 잡힌 10만여명은 그나마 운이 좋다는 말까지 나온다. 산재로 인정돼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하청 노동자 대부분은 보상은커녕 하소연도 못 한 채 외면당하기 일쑤다.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 현황.(자료/현대중공업 하청지회)
 
◇노동자 510명 설문조사…안전관리 '낙제점'
 
취재팀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1일 노동절 집회 차 서울광장과 여의도공원에 집결한 민주노총·한국노총 산하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또 산재 사고가 많이 발생해 양대 노총으로부터 죽음의 공장이라는 오명과 질타를 받고 있는 현대중공업·현대제철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총 510명에게 산재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문항은 ▲작업장 위험도 개선상태 ▲재해율 추이 ▲재해 발생 형태와 시점, 원인 ▲원·하청 업무 위험도 ▲산재 보상과 원·하청 차별 등이며, 일부 문항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와 기업들이 그간 산재 예방을 위해 노력했고 실제 작업장의 환경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고 홍보한 내용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우선 작업장의 위험도가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좋아졌다'(많이 좋아졌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19.6%(100명)에 불과했다. '보통'은 46.1%(235명)이었으며, '나빠졌다'(나빠졌다, 많이 나빠졌다)는 대답은 34.3%(175명)로 '좋아졌다'는 응답의 2배 수준이었다.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산업현장 위험도 개선상태(왼쪽)와 산업재해율 추이(오른쪽). 자료/뉴스토마토
 
재해율 추이에 대해서도 '개선 중'이라고 답한 비중은 20.6%에 그쳤다. 47.2%는 '정체됐다', 32.2%는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정부 통계와 실제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재해율 증감은 정반대였다.
 
산재 발생 형태(중복응답)로는 ‘부딪침·끼임’이 53.8%로 가장 많았고, ‘추락’(51.1%)과 ‘깔림·넘어짐’(43.0%)이 뒤를 이었다. 최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공장에서 발생한 질소가스 질식 사망 사고처럼 ‘유해물질 접촉’(21.3%)과 ‘산소 결핍’(8.1%)도 비중이 컸다.
 
산재 발생원인(중복응답)에는 ‘관리자의 작업 강요’(27.8%), ‘위험물 방치’(23.5%), ‘작업수행 절차 미준수’(23.5%)의 비율이 높았다. 산재 발생 시점(중복응답)은 ‘작업 중’(69.5%), ‘잔업’(23.7%), ‘휴식시간’(4.7%), ‘작업 전’(3.1%) 순이었다. 원청의 부실한 안전관리와 무리한 작업 요구로 하청 노동자의 산재가 줄지 않는 악순환이 드러났다.
 
◇위험의 외주화..죽어서도 차별은 이어진다
 
위험의 외주화로 표현되는 유해·위험업무의 하도급과 불안정한 고용관계는 산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우선 원·하청 노동자는 업무에서 체감하는 위험도부터 달랐다. 원·하청별로 업무 위험도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차이 없다'는 답변은 16.5%, '원청이 더 위험하다'는 응답은 7.3%였지만, '하청이 더 위험하다'는 대답은 76.3%나 됐다.
 
원·하청별로 나누면 하청 노동자는 '하청이 더 위험하다'(89.3%)는 대답이 압도적이었으며, 원청 노동자도 '하청이 더 위험하다'(33.1%)는 응답이 '원청이 더 위험하다'(16.1%)는 답변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원·하청 모두 하청 노동자가 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본인이나 동료의 산재 보상 방법(중복응답)에 관해 묻자 '산재보험 처리'는 25.1%였지만 '공상처리'는 49.4%나 됐다. '개인비용 부담'(23.0%)과 '치료 없음'(5.5%)도 의미 있는 수치를 보였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집계·발표한 통계와 그 대상이 산재 보험 처리에 국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실제 작업장에서 일어난 산재는 집계된 것의 4배를 넘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산재 보상에서 원·하청 간 차별은 더 두드러졌다. 원청의 경우 '산재보험 처리'는 61.0%였으며, '공상처리'는 30.5%, '개인비용 부담'은 7.6%, '치료 없음'은 0.8%였다. 하지만 하청은 '산재보험 처리'가 14.3%에 불과했다. 반면 '공상처리'는 무려 55.6%나 됐고, '개인비용 부담'도 27.6%에 달했다. '치료 없음'은 원청의 8배(6.9%)였다.
 
산업현장에서 원·하청별 산업재해 보상 방법 차이.(자료/뉴스토마토)
 
아울러 산재 보상에서 원·하청 간 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9.2%가 '차별이 있다'고 대답해 '차별이 없다'(20.8%)를 훨씬 넘어섰다.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지(중복응답) 물어보니 30.3%가 '고용불안 해소'를 첫손에 꼽았다. 이어 '저임금 해소'(28.4%), '장시간 근무형태 해소'(21.4%), '과도한 작업량 해결'(20.9%), '불법 하도급 개선'(20.1%), '산재 사고 책임 규명‘(10.3%) 순이었다. 세계에서 그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불합리한 국내의 원·하청 제도를 고치지 않는 한 고질적인 위험의 외주화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봤다.
 
◇현대중공업·현대제철, 위험도 개선 '0'
 
취재팀은 현대제철과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지회, 건설산업노동조합을 대상으로도 같은 내용의 설문을 실시했다. 철강과 조선, 건설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산재가 잦은 데다, 이중에서도 현대제철과 현대중공업, 대우건설은 양대 노총이 매년 집계한 산재 사망자 수가 최근 3년간 가장 많은 곳으로 집계됐다. 특히 현대제철은 충남 당진사업장에서 죽은 근로자 17명 모두가 하청 노동자였다.
 
현대제철과 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현대제철(충남 당진군)과 현대중공업(울산광역시) 작업장을 현장 방문해 설문했고, 건설노련 측은 노동절에 실시했다. 표본 수는 현대제철 30명, 현대중공업 34명, 건설노련 82명으로 총 146명이다.
 
2012년 이후 최근 3년간 현대제철·현대중공업·대우건설의 산업재해 사망자 추이.(자료/각 기업 하청지회)
 
설문조사 결과 이들 3개 기업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의 상황은 심각했다.
 
우선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장의 위험도가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단 한 명도 '좋아졌다'고 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빠졌다'(나빠졌다, 많이 나빠졌다)는 대답은 73.3%나 됐다. 재해율 추이에는 63.3%가 '정체됐다', 20.0%는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하청별로 업무 위험도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 '하청이 더 위험하다'고 답했다.
 
본인이나 동료의 산재보상 방법(중복응답)에 대해서는 '산재보험 처리'가 54.2%, '공상처리'가 45.8%로 나타났다. 현대제철은 비교적 산재보험 처리 비율이 높았으나, 산재 보상에서 원·하청 간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80.0%가 '차별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은 현대중공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업장의 위험도가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좋아졌다'는 응답은 한 건도 없었고, '나빠졌다'(나빠졌다, 많이 나빠졌다)는 대답이 73.5%로 집계됐다. 재해율 추이에서는 64.7%가 '정체됐다', 20.6%는 '나빠지고 있다'고 답했다. 원·하청별로 업무 위험도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 '하청이 더 위험하다'고 대답했다.
 
산재보상 방법(중복응답)에는 '산재보험 처리'가 14.7%, '공상처리'가 67.7%였다. 또 70.6%는 산재 보상에서 원·하청 간 '차별이 있다'고 응답했다.
 
건설노련도 건설현장의 위험도가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12.7%만 '좋아졌다'고 말했고, 재해율 추이에는 51.3%가 '정체됐다', 18.3%는 '나빠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원·하청별로 업무 위험도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91.3%가 '하청이 더 위험하다'고 답했다.
 
산재 보상 방법(중복응답)은 '산재보험 처리'가 20.0%, '공상처리'가 67.5%였다. 산재 보상에서 원·하청 간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88.7%가 '그렇다'고 답했다.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건설업의 산업재해 처리방법과 원·청별 산재보상 차별 유무. 자료/뉴스토마토
 
김영택·최병호·이순민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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