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의 걸음, 그들의 걸음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4-07 10:13:00 2015-04-07 11:56:12
죽지 않고 굳이 사는 데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저 마다의 무게로 마음에 매달린 이유들이 있어 삶은 묵직하다. 내 가장 무거운 저울추는 엄마 몫이다. 영화 <와일드>는 묻는 것 같다. 갑자기 엄마가 죽는다면 어쩔 텐가.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해봤는데, 나도 별수 없지 싶다. 영화 속 셰릴(리즈 위더스푼)처럼 그저 걷지 않을까. 이야기는 실화이며 실재 인물 셰릴은 4,285km를 걸었다.
  
셰릴의 엄마 바비(로라 던)는 대사 그대로 “늘 아내 아니면 엄마였다. 삶의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다.” 술에 취해 가족을 주먹질하는 남편에게서 도망쳐 혼자 셰릴을 키웠다. 셰릴 말마따나 “남은 거라곤 빚밖에 없는, 아무 것도 없는” 가족인데도 바비는 늘 웃더라. 희망이 없다고 투덜대는 그 딸이 바로 그의 희망이니까. 그런 엄마의 마음이 딸에게 와 닿았지만, 딸의 마음이 엄마에게 가 닿을 기회는 없었다. 그 엄마가 죽은 것이다.
 
아무리 튼튼한 것도, 딛고 설 땅이 없으면 무너진다. 묵직하게 붙들어주던 저울추가 사라진 삶은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걸까. 셰릴은 뭇 남자에게 제 몸을 주고도 더 가벼이 살고 싶단 건지, 제 발목의 혈관에 헤로인을 넣는다. 제 삶을 붙들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붙잡을 수 없다. 떠나는 남편 폴(토머스 새도스키)에게 셰릴이 뭘 할 수 있었겠나. 그제야 삶의 무게를 되찾고 싶어진 건지, 그는 제 몸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배낭을 멘다. 태평양 종주길에 오른 것이다.
 
주인공의 여행길을 소재로 하는 이른바 로드무비가 들어쌨는데 <와일드>는 유난하다. 다른 여행자와 마주침으로써 서사를 여는 여느 로드무비와는 달리 <와일드>의 서사는 셰릴의 발걸음에서 머문다. 드문드문 등장하는 여행객, 사냥꾼, 농부, 기자가 철저하리만치 서사와 무관하게 느껴졌다. 그 누구도 셰릴이 걷는 방향, 속도를 눈곱만치도 못 바꿨다. 단 한 명 빼고.
 
어느 마을 어귀의 갓길에 선 셰릴은 한 꼬마와 마주친다. 꼬마는 셰릴에게 귀여운 노래를 들려준다. 꼬마를 보낸 셰릴은 다시 걷는다. 몇 걸음 못 가서 무릎 털썩 꿇어 서럽게 우는 셰릴의 입에서 새는, “그리워요.”
 
◇그립다며 울먹이는 셰릴, <와일드>의 한장면(캡쳐=바람아시아)
 
<와일드>의 여행이 여느 여행과 다른 점이 여기 있다. 대개 사람은 여행길에서 지난 일(길)을 뒤돌아보거나 지나갈 일(길)을 내다본다. 나는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까지도 셰릴의 걸음이 지난 방종의 반성인 줄로만 알았다. 해서 잃어버린 삶의 무게를 되찾을 때 걸음을 멈추리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셰릴은 단지 엄마를 보고 싶다. 그리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거다.
 
가만 생각해보니, 셰릴이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온다. 자식이 부모를 혹은 부모가 자식을 잃었을 때 남겨진 사람 그 누가 가만히 있을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모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자식이 바다로 잠기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봤고 바닷속 아들과 딸의 숨이 언제 끊긴지조차 알 수 없는 부모가 이 나라에는 많다. 그들은 삶의 가장 무거운 저울추를 잃어버렸다. 어제(4일)와 오늘, 그들이 제 자식의 영정 사진을 들고 거리를 걸었다. 바라건대, 그들의 걸음을 막으려 들거나 그 이유를 따져 묻지 마시라.
 
 
서종민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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