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도 웜홀이 있기를
우리가 사는 세상
2015-03-31 10:45:00 2015-03-31 13:25:01
하루의 끝, 막차
 
때는 3월 3일, 하루를 한 시간여 남겨둔 시간. 그 즈음에 들이닥쳤던 한파에 대비해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 내선순환 막차를 타기 위해서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아파트 단지 바로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평소 타던 버스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아차, 버스 막차 시간은 이미 끊겼지’. 생각해보니 이 시간대에 그 버스를 타본 기억은 기껏해야 한 두 번이었다. 혹여나 지하철 막차를 놓칠까 자정에야 운행이 끝나는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부랴부랴 뛰었다.
 
시작부터 조마조마했다. 2호선 막차를 놓칠까, 개봉역에서 창동행 1호선 열차를 기다리는 10분에 몸도 떨었고 마음도 떨었다. 마침내 신도림역에 도착해서 내선순환 열차를 탔다. 인터넷 검색을 근거로 ‘다음 열차가 하나 더 있나 보네’하고 안심했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딱 막차였음을 알고 섬뜩했었던 기억이다.
 
악명(?) 높은 신도림역답게, 늦은 시간에도 사람은 많았다. 특히 젊은이들도 많았다. 아마 개강 첫 주인 만큼 술을 진탕 먹었거나, 혹은 이제 막 달리러(?) 가는 대학생들인 듯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사진=바람아시아
◇20대로 추정되는 승객들은 대부분 홍대, 신촌, 건대 역에서 많이 하차했다.(사진=바람아시아)
  
건대입구역을 지나자 객차 내 평균연령은 한층 높아졌다. 객차 내 빈자리도 듬성듬성 많아지고 있었다. 그제야 젊음의 열기와 왁자지껄함에 그 모습이 가려져 있던 중년층의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중 반은 고단해 보이는 낯빛으로 잠들어 있었고, 나머지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중장년층 승객이 많았다.(사진=바람아시아)
 
그 탓에 내 타깃은 얼마 없는 표본 중에서도 반 토막이 났지만, 나는 같은 줄의 끝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던 한 중년 남성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거는 데 성공했다. 패딩 재킷을 입고 있던, 친숙한 옆집 아저씨 같은 50세의 이씨는 성수동에서 수제화를 만들어 파는 자영업자였다.
 
“스마트폰이요?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야 되는데 간혹 잠들다가 신림역까지 가곤 하거든요. 안 자려고 억지로 하는 거죠 하하.”
 
당시엔 웃으며 얘기했지만 곱씹을수록 삶의 고단함이 은연중 묻어나는 말이었다.
 
“최근에 작은 애가 대학원 졸업해서 박사 학위를 땄어요. 그 아이는 대학부터 해도 10년을 공부한 거죠. 아빠가 힘든 직업을 갖고 있는 걸 잘 알고 스스로 열심히 한 덕분이죠. 지금까지 잘 따라와 주고 남들에게 피해 안 주며 큰 것만으로도 보람 있어요.”
 
조심스레 그의 일에 대해 물었다.
 
“수입이야 옛날보다 많이 줄었죠. 특히 최근 들어서는 백화점이나 큰 메이커들이 골목 상권까지 많이 침해해요. 사실 제품의 질로 따지면 우리는 제품의 가격이 생산단가를 원리원칙대로 반영한다면, 메이커 제품들은 가격에 비해 실질적인 생산단가는 적고 중간 과정에서 마진을 많이 남겨 먹거든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백화점 쪽으로만 발길을 돌리니 억울할 때도 있긴 하죠. 하지만 최근엔 구청이나 정부 차원에서 성수동 지역에 ‘수제화 골목’을 만들려고 지원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조금 기대하고 있어요.”
 
늘어놓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습관적으로 늘어놓는 푸념은 아니란 건 느낄 수 있었다.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보이는 그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그것들이 오랜 시간 몸에 배어 나타나는 인상 혹은 기운이 그의 성실함을 말해주었으니까.
 
“평소에도 막차를 많이 타죠. 일주일에 3~4일 이상 타니까요. 출근요? 늦어도 8시에는 하는 편이에요. 미리 준비해야 될 것도 있고, 첫차 타고 일찍 활동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 사람들이 열려있는 제 가게를 보고 언제 손님으로 올지 모르잖아요.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일찍 가는 거죠.”
 
“갈수록 평균수명은 느는데 정년퇴직은 빨라지잖아요. 제 주위에도 기업체 다니다 이른 나이에 퇴직하고 막노동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전 제 기술로 계속 제 일을 하고, 놀지 않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는 그 자체로 감사하죠. (웃음)”
 
어느덧 역에 다다라 속도가 느려진 열차의 창밖으로, 서울대입구라는 푯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갑작스러운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목적지에 다다르는지도 모른 채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죄송한데, 처음에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말한 대로, 먼저 말 걸어놓고 끊어서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래도 이야기 들어준답시고 그를 신림역까지 방치(?)하는 일보단 덜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손을 흔들며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내릴 준비하거나, 아니면 졸거나(사진=바람아시아)
 
인터뷰를 마치고 객실을 옮겼다. 이야기를 하는 새에 점점 더 사람은 많이 빠져나갔다. 어느덧 열차도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신도림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에 중년 여성, 역무원 등에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모두 정중히 거절당했다. 객실의 끝에서 끝을 오가다, 종착역 직전인 대림역이 되어서야 딱 봐도 풍채가 좋아 보이고 귀티(?)를 풍기는 한 중년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역시 퇴근길이라는 56세의 김 씨에게 하는 일부터 물었다.
 
“투잡(two-job)으로 대리운전을 뛰고 있어요. 원래는 부인과 같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리운전 한지는 벌써 2년째에요. 자녀는 스물다섯, 스물셋입니다. 큰 애는 졸업했고, 작은 애는 대학을 안 가고 전역 후 바로 취업했어요.”
 
“자식 뒷바라지는 어느 정도 숨을 돌렸겠다”는 나의 말에,
 
“아휴, 아직 멀었죠. 장가도 보내야 하고. (웃음) 대리운전 일은 갈수록 힘들어져요. 경쟁은 치열해지고, 더군다나 최근엔 심야버스까지 나와서 손님들도 많이 빼앗겼죠. 그래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힘들어도 투잡을 뛰는 이유죠.”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신도림역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며 새해 소망을 물었다.
 
“저에겐 최종적인 꿈이랄까, 목표가 있어요. 세계여행을 다니는 겁니다. 일전에 사업하면서 해외를 많이 다녀보기도 했지만, 아내와 함께 마음 편히 방방곡곡 세계여행을 다니는 게 제 꿈이네요. 지금처럼 아니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서 아파트도 더 넓게 늘리고 싶고요.”
 
시간도 없고 실례가 될 것 같아 묻지는 못 했지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와 당찬 포부에서 2년 전까지만 해도 제법 넉넉했을 법한 그의 삶이 그려졌다. 처음 풍겼던 첫인상이 근거 없진 않았나보다.
 
◇막차에서 내린 사람들(사진=바람아시아)
 
그의 꿈을 응원하면서, 신도림역을 나왔다. 역내에는 지하철 운행이 종료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첫차와 막차를 연결하다, 심야버스
 
시곗바늘은 새벽 1시를 넘겼다. 아침 첫차를 성수역에서 탈 계획이었기에, 비어버린 시간 동안 할 것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모두가 잠들고 지하철마저 끊긴 시각, 아직 잠들지 않은 대중교통이 있었다. ‘올빼미버스’라고도 불리는 서울시의 심야버스가 그것이다. 그날 심야버스는 막차와 첫차 사이 나의 빈 시공간을 채워주었다.
 
성수행 심야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신도림역에서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부랴부랴 신도림역 바깥의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아직 운행 중인 몇몇 버스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개봉역으로 향했다. 개봉역에서도 꽤 먼 거리에 심야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할증이 붙은 택시를 타기엔 다음 월급날이 가까워진 내 주머니가 너무도 가벼웠다. 그렇게 개봉역에서 심야버스정류장까지 걷고 또 걸어 N62번을 기다렸다.
 
◇사진=바람아시아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사진=바람아시아)
 
◇새벽 2시경 차 안에서 쪽잠을 청하는 택시기사(사진=바람아시아)
 
드디어 추위 속 기다림 끝에 N62번이 모습을 드러냈다. 승객은 중년 남성 2명 남짓. 어김없이 말을 걸어보았지만 다들 피곤한지 인터뷰를 거절했다. 어느 정도 거절에도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승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탔을 때만 해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사진=바람아시아)
◇점점 늘어나더니...(사진=바람아시아)
◇홍대와 신촌 부근을 지나자 앉을 자리도 없어졌다. 참고로 새벽 3시경이다.(사진=바람아시아)
  
맨 뒷좌석에 앉은 내 옆에도 사람들로 가득 찼고,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까보다 더 늦은 시간임에도 조금 전의 텅 빈 길거리와 대조적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숨어있던 걸까. 번화가나 중심지에는 새벽 3~4시 경에도 버스를 만원으로 채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깨어있었다. 사람도 많고 좁아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다. 시침이 새벽의 한 가운데를 가리키자 나에게도 노곤함이 찾아왔다. 버스가 한창 만원일 무렵에, 뒷좌석에 앉아 기대있던 나는 술 한 모금 없이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겼다. 필름이 다시 재생될 땐 이미 버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종점이에요!”
 
기사의 외침에 나를 비롯한 서너 명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내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편의점에 달려가 두유 하나를 사 들고 버스로 돌아왔다. 63세의 N62번 버스기사 유 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40년간 기사 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후, 다시 심야버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노선에 하루에 기사 4명씩 일을 하고, 주 5일씩 일해요. 힘든 점이야, 낮밤이 바뀌는 것도 물론 있고요. 아무래도 시간상 취객 분들이 많이 타니까, 그런 점은 애로사항이 있죠. 주무시다가 종점까지 가서 ‘왜 종점까지 데려왔냐’는 분이며, 다른 손님들한테 시비 거는 취객도 있고. 아까 보셨듯이 평소에 손님이 많은데, 그 와중에 토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아무래도 낮에 일하는 기사들은 10시간 이상하고, 저희는 4시간 정도만 하니까 심야수당 약간 보태더라도 보수는 당연히 적죠. 하지만 그건 저희가 하는 만큼 받는 거니까 불만을 가져선 안 되죠. 심야버스가 생기고 난 뒤로 제가 하던 일을 계속 하면서 어느 정도 벌이할 수 있는 게 좋습니다.”
 
새해 소망은 그저 가족들 건강만을 바란다는 그의 소박함을 마지막으로, 두유를 건네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가족들은 모두 잠든 새벽녘 내내 운전대를 잡고, 이제 막 막차 운행을 마친 그에게 전하는 작은 고마움이었다.
 
◇운행을 마친 N63버스(사진=바람아시아)
 
두유를 건네자마자 횡단보도를 헐레벌떡 건넜다. N62번의 운행이 종료되어 성수역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잠실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기로 했다. 잠실역까지 가는 버스는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미리 검색해본 예상 소요시간은 40여 분이었으나, 다행히 새벽녘이라 25분 만에 도착했다. 덕분에 5시 40분에 잠실역에 도착한 2호선 내선순환 첫차를 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획했던 버스와 지하철을 모두 탈 수 있었던 게 큰 행운이었다.
 
다시 하루의 시작, 첫차
 
첫차 역시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막차 내 인원에 유흥을 즐기는 젊은 층이 많이 포함된 것에 비해, 첫차에는 대부분 출근하는 중장년층이 자리하고 있었다. 역시 빼곡히 자리한 사람들 탓에 말을 걸기 쉽지 않았다. 또 워낙 이른 시간인지라 조금이라도 잠을 더 청하려는 사람도 많이 보였고, 피곤함에 인터뷰를 거절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진=바람아시아
 
그렇게 첫차를 타고 조용히 흘러가다, 운이 좋게도 옆자리에 앉은 한 중년 여성이 대화에 응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주 6일씩 일해요. 제가 올해 66세인데, 가장 나이 많은 분은 75세인 분도 있어요. 아무래도 서비스업체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손님만큼 청소할 것도 많아요. 그에 비례해서 나오는 쓰레기도 많고, 그런 점이 힘들긴 하죠. 집에서 직장까지 멀다 보니 첫차를 타고 출근해야 해요. 퇴근은 저녁 6시 정도에 하고요."
 
그러나 가장 힘든 점은 따로 있다고 했다.
 
“일 특성상 명절에도 못 쉬어요. 아니, 명절이나 공휴일에 오히려 사람들이 더 몰리고 일도 많이 해야 하죠. 이번 설날에도 새벽 일찍 차례 지내고 바로 일하러 나가선 하루 종일 일했거든요. 명절에도 가족들과 함께 지내지 못한 게 가장 힘들어요.”
 
“그래도 일흔다섯 먹은 분도 열심히 일하는데, 저라고 못할 건 없잖아요. 100세 시대라는데, 힘닿는데 까진 계속 일해야죠. 자식들만 바라보고 살 순 없으니까요.”
 
환승을 한다며 먼저 내린 그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했다. 열차는 신도림역에 가까워졌다. 긴 하루를 끝내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면서도, 첫차에 몸을 맡긴 채 잠이 든 수많은 사람들을 보니 왠지 모를 만감이 교차했다.
 
◇사진=바람아시아
◇첫차 시간의 신도림역(사진=바람아시아)
 
막차와 심야버스, 첫차를 탔다. 누군가는 자식 뒷바라지를, 또 다른 이는 가족의 건강을, 혹은 ‘통 큰’ 세계여행을 소망했다. 어찌 보면 희망은 야누스(Janus)다. 묘하게도 그것은 다른 이로부터 들어오면 고문이 되고, 스스로에게서 나오면 꿈이 된다. 그들을 보며 난, 거짓된 희망고문이 아닌, 그들을 계속 꿈꿀 수 있게 하는 세상을 소망했다. 모 영화에서처럼 그들을 꿈으로 데려다 줄 어떤 ‘웜홀’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있건 없건, 그들은 꿈을 향해 한발 한발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막차를, 심야버스를, 또 첫차를 탈 테니까.
 
 
 
강윤철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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