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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쇼스타코비치 vs. 러시아 본토 쇼스타코비치'
2014-11-17 18:29:17 2014-11-17 18:29:24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이번 주 두 명의 명 지휘자가 그들의 분신과도 같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나란히 서울에 온다. 마리스 얀손스(71)가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11월 18, 19일)과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82)의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11월 22일)이 그 주인공들이다.
 
두 단체는 각각 유럽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문 방송교향악단으로, 바쁜 투어 스케쥴을 소화하는 와중에 공교롭게도 2년 만에 서울에서 마주친다. 2년 전 가을에도 두 단체는 한 달 간격으로 나란히 내한해 명연을 펼친 적이 있지만, 올해는 불과 3일 간격인데다 두 단체 모두 같은 장소(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해 더욱 눈길을 끈다.
 
우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단체 모두 20세기 최고의 교향곡이라 칭송받는 쇼스타코비치 5번 교향곡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내세웠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내한 공연 둘째 날인 19일,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은 22일에 연주할 예정이다. 두 교향악단이 의도치 않게 펼치는 정면승부가 클래식 매니아들의 큰 관심을 끌 것으로 전망된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사진제공=아르떼TV)
 
◇현존하는 최고의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
 
두 지휘자는 모두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권위자로 꼽힌다. 1943년 구 소련 일원인 라트비아 출생으로 세계 최고의 지휘자로 꼽히는 얀손스는 '지휘의 제왕' 므라빈스키를 사사해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지휘, 쇼스타코비치 등 러시아 음악을 주된 레퍼토리로 삼은 바 있다. 이후 서방세계로 진출해 여러 명문교향악단과 함께 EMI에서 쇼스타코비치 15곡 교향곡 전집을 완성하였다.
 
1932년생인 페도세예프는 직접 쇼스타코비치와 교류하며 같이 작업했던 그야말로 '러시아 음악사의 산 증인'으로, 진정한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 5번 교향곡에 얽힌 유명한 일화도 있다. 1991년 소련 해체 과정에서 발발한 군부 쿠데타로 모스크바 시내에는 탱크가 지나다니고 국영 방송국이 포위됐을 당시, 방송국에는 교향악단의 녹음이 잡혀 있었다. 국가 비상사태였던 만큼 단원들이 동요했지만 페도세예프는 포위된 방송국 안에서 단원들을 설득해 녹음을 마쳤다. 그 곡이 바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이며 훗날 JVC에서 음반으로 출시되며 명반의 반열에 오른다.
 
두 지휘자 모두 구 소련 출신에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으로 데뷔했다는 것,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라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둘 다 위대하고 따뜻한 지도자로서 단원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점이다. 또 페도세예프의 경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경험도 있다.
 
◇세련미 vs. 전통적 색채
 
다만, 쇼스타코비치가 5번 혁명 교향곡을 통해 그리고자 했던 이상향을 실제 음악으로 표현해내는 데 있어서는 두 단체와 지휘자의 색깔이 전혀 다르다. 얀손스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정교함과 디테일, 완벽한 밸런스를 위주로 하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구사한다면, 페도세예프는 질박하고 투박하며 화장기 없는 원초적 중후함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페도세예프 음악의 경우 러시아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한 그의 인생과 음악 철학이 녹아 있다. 그 이면에는 페도세예프가 2차 세계대전과 스탈린의 공포정치, 냉전시대, 소련 해체의 혼란 등을 모두 경험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떠나지 않은 유일한 러시아 예술인이라는 배경이 있다. 특히 뚝심으로 40년간 단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온 저력으로 끈끈하고 탄탄한 조직력을 유지해 왔다. 음악 애호가들이 세련미를 추구하는 현대 클래식 계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유일하게 공산 시절 구 소련의 사운드를 유지하는 조합으로 페도세예프와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을 한 손에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놓치기 아쉬운 기회
 
두 공연의 격돌은 음악 애호가 입장에서는 3일 간격으로 동일한 무대와 음향 조건 하에 러시아와 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실연을 비교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지휘자의 나이와 건강을 감안할 때, 두 지휘자 모두 추후 내한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두 공연 모두 놓치기 아쉽다.
 
세련되고 화려한 독일식 쇼스타코비치냐, 장중하고 질박한 러시아 본토 스타일이냐. 음악 애호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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