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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이런 인생2막..美은행 5번 털고 변호사되다
숀 홉우드 지음 | 정혜진 옮김 | 미디어트리거 펴냄
2014-11-14 15:20:28 2014-11-14 15:20:28
[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최근 3년간 책을 500권 이상 샀습니다.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읽지 않은 책이 있는가 하면, 같은 걸 또 산 경우도 있습니다. 알고 그런 것은 개정판이 궁금하거나 저자 사인이 있는 중고서적인 경우였고요. 이미 산 줄 모르고 또 산 적도 있습니다. 바보 같군요. 좋게 보면, 최소 두 번은 읽고 싶은 책이었나 싶어요.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나, 가치를 지닌 책과 그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뒷북'이 네 번째로 다루는 <LAW MAN>(미디어트리거 펴냄)은 두 번 읽고 싶은 책입니다. 책은 '되는 일이 없어 자포자기 상태에서 은행을 다섯 번이나 턴 청년 강도가 정신을 차리고 로스쿨로 진학해 변호사가 되려는' 과정을 그렸는데요. 나는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나와보니 별것 아닌 것 같아 자존감이 세차게 흔들릴 때, 분주하게 살고는 있으나 그뿐인 것 같을 때,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읽으면 좋은 '성인용 성장소설' 같습니다. 이런 책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고 어리둥절한 청소년이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책 내용을 조금만 보면 "숀 홉우드라는 23살짜리 미국 청년이 은행을 다섯 번 털고 징역 12년3개월을 선고받은 뒤 교도소에서 4000여 건의 판례평석을 읽으며 재소자들의 법률 업무를 봐주다가 유명 법조인과 함께 성공적 변론을 펼쳐 연방대법원 무죄판결을 이끌어내고 10년 복역 끝에 출소하고는 로스쿨에 입학한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친구와 함께 가명을 사용하며 은행을 터는 장면에선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 떠오르고요. 주인공의 시선에서 포착한 순박하고 억울한 범죄자들의 모습을 읽자니 <7번방의 선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교도소를 다루는 사람과 사회, 교도소 속의 사람을 보자니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 결함의 근원을 짚었다는 윌리엄 골딩의 책 <파리대왕>이 떠오르는 대목도 있고요.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팀 로빈슨)처럼 억울한 사람은 아닙니다. 범죄 사실이 분명한 범죄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농구 유망주로 대학에 입학한 뒤 실력의 한계를 느껴 해군으로, 농부로, 은행강도로 변하는 '자기 파괴'의 과정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재기하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도움을 주는 기준은 돈이 아니라 친구라고 생각하는 모습도요. 이 과정이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미국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과정만 인상적인 게 아닌데요. 이 부분은 책의 단점을 짚은 뒤 이어갈게요.
  
◇로맨(LAW MAN)의 주인공 숀 홉우드. (사진=로맨 홍보 영상)
 
◇왜 주목받지 못했나?
 
시시콜콜한 부분부터 지적하겠습니다. 책 제목부터 볼까요. 출판사는 책 제목을 무려 영어로 지었습니다. 'LAW MAN'.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이 책을 곧바로 찾기 어렵습니다. 접근성이 확 떨어지는 거죠.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책 <21세기 자본>이 이 출판사에서 출간됐다면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라는 제목으로 나왔을까요. 미디어트리거의 마민웅 팀장은 "교보문고 관계자도 '책 제목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기 되게 힘들게 지었다'고 말하더라"고 털어놨습니다. 출판사가 로맨이라고 할지 로우맨이라고 할지 고민했다니…. 책 차례 부분도 chapter1에서 33까지 등 영어로 구성됐습니다. 원본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취지였다고는 하나, 그야말로 "너 되게 낯설다."
 
또 출판사가 한 줄로 요약한 책 소개는 'Law(법)와 Low(낮은)도 구별 못 하던 은행털이 5범이 변호사가 된 인생역전 스토리'인데요.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카피가 아주 색다르게 다가오진 않습니다. '인생역전'도 그렇고요. 글쓴이가 쓴 상고이유서가 유명 변호사에게 '단언컨대 내가 본 최고의 상고이유서'라는 평을 받았다는 소개에서 눈에 띄는 '단언컨대'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책 소개 문구도 눈에 띕니다. 책 표지를 보면 '감옥에서 법과 일생의 반려자,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다'는 문구가 있어요. 기독교가 '별로'라는 얘기가 아니고요. 종교 서적이 아닌데 굳이 이런 문구를 써서 책의 핵심 주제를 흐리고 독자층도 제한한 건 아닐까요.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던 청교도가 미국의 주요 이주민이므로 이런 종교적 색채는 그곳에서는 대중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국내 베스트셀러 가운데 이런 색깔의 책을 찾긴 어렵습니다.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 스님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썼다면 어땠을까요. 저자가 책에 썼듯 "나는 교도소에 들어와 종교에 눈떴다는 진부한 스토리가 싫었다"며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의 사랑을 만나고, 그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었다"는 표현만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홉우드는 종교는 물론 은행 강도, 법, 농구, 일자리, 군대, 교도소, 사랑, 사회, 자아 성찰 등 지나치게 다양한 소재를 저마다 깊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다양하다는 건 장점일 수 있으나, 주제를 흐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번역자인 정혜진 씨도 "책에는 스무 살에서 서른 초반까지 겪을 수 있는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온다"며 "좋게 얘기하면 재미있고, 나쁘게 얘기하면 혼란스럽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책은 판매 수익금 일부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기부하는 좋은 목표도 갖추고 있는데요. 아직 제작비도 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초판은 2000부 찍고 서점 매대에 깐 게 500부라고 합니다. 현재까지 400부 정도 팔린 것으로 출판사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디어트리거는 설립된 지 1년 정도 된 신생 출판사입니다. 에세이도, 번역서도 처음이었습니다. 책이 '미드'로도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출판사는 서둘렀고, 작은 실수들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번역도 3~4주 만에 완성해야 했습니다. 출판사는 미국 CNN이 그의 사례를 소개하고 아마존, 뉴욕타임스에서도 베스트셀러로 꼽혔다는 '좋은 얘기'만 믿었던 것은 아닐까요. 국내 목표 독자와 경쟁 서적을 물어보자 출판사 쪽은 정확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로맨(LAW MAN)의 주인공 숀 홉우드의 가족 사진. (사진=로맨 홍보 영상)
 
◇이 책의 가치는?..약자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지지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생계형 범죄도 갑자기 늘어나는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사회 부적응자이자 강력 범죄자였던 주인공은 가족과 사회의 지지 등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범죄자가 온전히 재기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범죄자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고, 일부 범죄자들 또한 재범하면서 사회를 실망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는 이런 사례가 우리 사회에도 알려져 '변화의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네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주 말한 '세컨드 찬스'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범죄와 같은 극단적 사례뿐만 아닙니다.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어려운 환경이 청년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현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요.
 
깔끔하게 번역한 걸 보면 누구보다 이 책을 열심히 읽었을 것으로 보이는 번역자 정 씨도 "정도는 다르지만,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터라 공감했다"며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지 않느냐"고 고백합니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여러 일자리를 거쳤다는 그의 프로필에선 알기 어려웠던 얘기였습니다. 
 
책 주인공 홉우드의 얘기를 볼까요. 고교 시절 농구 유망주였으나 대학에 가서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당황하고 학장을 찾아갑니다. 욕을 먹지요. 이를 극복하지 못한 주인공은 목표를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집니다. 가족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홉우드는 "아버지는 돈이 떨어질 때마다 도와주시면서도 군대에 가라고 강권하셨다"며 미국 해군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인근에서 2년 복무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귀국해서는 부도수표를 써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재기를 위해 재입대를 시도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이후 농장에서 주당 80시간 정도 가축의 똥을 푸는 주인공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초등학교 친구와 함께 은행을 터는 등 방황을 심하게 하게 되는 거죠. 주인공의 친구 톰은 "이 대학 저 대학 옮겨 다니며 중퇴도 하고 다양한 일도 해봤지만 결국 자기한테 맞는 옷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둘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를 통해 돈을 쉽게 벌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그만큼 일을 하고 싶었다는 걸까요.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뒤 후회가 남습니다. 주인공은 그 순간을 이렇게 썼습니다. "삼촌이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조종석까지 부르는 일도 없을 것이고 마을 퍼레이드에 끼지도 못할 것이다. 영원히 마을의 멍으로 남는 일만 남았다." 사회 속 개인이 파멸하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이런 두려움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잘 읽힙니다.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개인에게는 가족과 사회의 지지가 중요하다는 주인공의 고뇌도 실제 이야기와 독백을 통해 쉽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홉우드가 은행을 다섯 곳이나 털었어도 가족과 지역 사회는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암에 걸려 면회를 가기 어려울 때 주인공의 친구들은 돈을 모아 교통비를 마련해주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은행을 털어 고향 망신을 시킨 자신을 바라보는 고향 사람의 시선이 너그럽고 관대했다는 주인공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버림받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주인공을 재기의 길로 이끈 건 아닐지.
  
번역자는 특히 "책에 나오는 주인공의 성찰을 보면 그가 감옥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고 짚었습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책에 나오는 한 재소자가 "여기서 다른 사람에게 훔칠 수 있는 것이라곤 존중뿐이야"라고 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더군요. 책에는 '존중(repect)'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타인의 존중을 훔치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존중은 사회에서도 중요하죠.
 
책 제목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법'과 관련한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주인공이 교도소 내 법학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자주 언급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 협상제),  ▲독수독과론(위법하게 수집한 자료는 증거능력이 없다) ▲미란다 원칙 고지 등에 대한 생각을 읽는 것도 재미입니다.
 
글쓴이는 이런 주제를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동료 재소자를 돕고, 유명 변호사와 함께 공동 변론도 하면서 화제를 모읍니다. 주인공이 로스쿨 진학을 결정하는 이유는 사실 조금 맥빠지지만 그래서 오히려 설득됩니다. 연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죠. 아. 미국 교도소 면회실에서는 두 번만 포옹과 키스를 할 수 있다는데요. 법을 나름 공부한 주인공은 연인과 2분 정도 키스를 하며 "입술이 떨어지지 않으면 법적으로 한 번만 한 것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재미 있는 대목도 꽤 보입니다. 은행을 털기 전에 마을 곳곳을 둘러 본 경험을 소개할 때 "구글 어스가 생기기 전 은행을 털려면 이 정도는 해야 했다"고 쓴 부분과 "그의 치아는 구강청결제로 에스프레소를 사용한 것 같았다"와 같은 표현 등은 웃음을 유발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가 "사랑한다 아들아. 집에 오면 농구나 보러 가자"라고 말한 것을 잊지 않고 있고, 아버지는 글쓴이가 출소하기 전에 사망하는 대목은 안타깝습니다.
 
이 책은 범죄자를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지, 그를 보는 사회의 시선과 법은 어떠한지, 개인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더 바람직한지 등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두 번 읽을만한가요? 좌절을 경험하는 많은 분의 인생2막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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