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그들의 외침'..거리로 몰린 팬택 협력사들
2014-07-17 18:45:39 2014-07-17 18:49:57
[뉴스토마토 정기종·임애신기자] “창조경제 말 뿐입니까. 중소기업 다 죽습니다”
 
냉혹한 시장체제에 대한 불만도 우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절규에 가까웠다.
 
17일 팬택 협력사 협의회는 서울 을지로 SK T타워 앞에서 이동통신사에게 팬택의 회생방안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현장에는 홍진표 협의회장을 비롯한 팬택 협력사 직원 100여명이 함께했다.
 
◇17일 서울 을지로 SKT 타워 앞에서 팬택 협력사 협의회 대표 홍준표 회장이 팬택 회생방안에 적극 동참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읽고있다(사진=뉴스토마토)
 
집회가 시작된 오후 3시 SK T타워 앞 온도는 29도를 가리켰다. 점심 때 한 차례 지나간 비로 인해 습도가 높아 체감온도는 30도를 훌쩍 넘었다. 게다가 집회 현장은 지하도의 뜨거운 바람을 배출하는 환기구 앞이라 지켜보는 이들조차 견디기 쉽지 않았다.
 
집회 현장에 출동한 1개 중대 규모의 경찰병력 80여명도 긴장감 속에서 무더위와 싸우느라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협의회 관계자 100여명의 표정은 침통했지만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담겨있었다. 57분간 진행된 1차 집회동안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에게는 550개 협력업체 8만여명의 종사자와 30만명에 달하는 가족의 생계를 건 분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청년부터 흰 머리가 성성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했다. 이들은 도우, 동남산업, 우리엔텍, 에이엘티, 갤럭시아디바이스 등 자사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대각선으로 멨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지금 뭐하는거예요?"라며 잠시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바로 자리를 떴다. SK텔레콤 관계자들도 이 집회를 지켜봤다.
 
협의회 측은 “1등 기업 SK텔레콤(017670), 모범기업 SK텔레콤에게 간곡히 바란다”며 호소문을 읽기 시작했다. 협의회는 팬택을 살리기 위해 협력사가 먼저 나서 받아야 할 부품대금 10~30%를 받지 않을테니 SK도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지난 2004년 SK가 경영권 분쟁 위기 당시 팬택 이사회 측에서 SK(003600)그룹을 위해 1000억원의 우호지분을 매입한 점을 잊지말아 달고 호소했다. 이어 "오늘의 SK텔레콤이 있기까지 팬택의 역할을 기억해 필요하면 사용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지 말아달라"는 간청도 이어졌다.
 
홍 회장은 “최근의 IT트렌드는 6개월이 지나면 구형모델이 되는데 6~7월 단 한 대의 제품도 납품하지 못했다"며 "이통사의 외면으로 70만~80만대의 ‘베가 아이언2’ 재고가 쌓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주 까지 결정되는 것이 없으면 협력업체 80%가량이 부도위기에 내몰릴 것”이라고 채권단의 출자전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인 이통3사의 협조를 강력히 촉구했다.
 
3시57분 1차 집회를 마친 협의회는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집회는 자리를 옮겨 청와대 인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서도 이어졌다. 협의회 관계자들이 집회 중 피켓을 들고있는 모습(사진=뉴스토마토)
   
오후 5시 2차 집회 시작을 위해 다시 마이크를 잡은 홍 회장은 “팬택의 워크아웃 사태가 정부와 이통3사, 채권단의 수수방관으로 6개월째 표류하게 돼 이 자리에 섰다”며 “정부의 적극적 지원 및 중재와 이통3사의 팬택 회생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 채권단의 적극적인 팬택 워크아웃 진행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집회 현장 앞을 지나는 행인들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뭍어났다.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행인들에게도 협의회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에 반해 무관심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시위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듯 시위 현장 중앙을 가로질렀다.
 
집회에 참가한 팬택 협력업체 직원들도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쇄도하는 언론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다. 부품 공급이 끊겨 무급휴직 중인 70~80%의 동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팬택과 협력사의 상황에 대해 알리고 싶은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날 집회에 참석한 협의회 관계자는 “정말 우리만 잘 살겠다고 모인 게 아니다”라고 운을 뗀 뒤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통신사가 냉정하게 한번 팬택의 현실을 바라본다면 이대로 팬택을 없애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팬택이)필요한 존재라면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협의회가 2차 집회 장소로 청운효자주민센터를 택한 것은 대통령에게 팬택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청와대를 기좀으로 100m까지는 집회가 금지돼 있는 탓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을 찾다보니 주민센터에서 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에서 363미터(m) 떨어진 청운효자주민센터 주변은 휑하기 그지 없었다. 주변에 청운파출소와 종로장애인복지관, 종로소방서 등 큰 건물과 길을 지나다니는 차만 있을 있을 뿐 사람의 왕래는 드물었다.
 
그래서일까. 2차 집회는 20분 동안 허가됐음에도 9분만에 끝났다. 이 짧은 시간 동안 협력사 직원들의 바람대로 그들의 간절한 외침이 대통령에게 전달됐을까. 
 
협의회는 이날 정부에게 올리는 호소문을 청와대 연무관에 접수하기로 했다. 청와대에는 한 명만 출입할 수 있다고 했다. 호소문이 담긴 노란 봉투를 들고 홀로 청와대로 향하는 홍 대표의 뒷 모습은 외로워 보이면서 결의에 차 있었다.
 
다음날인 오는 18일 협의회는 국회의사당을 찾아 세 번째 집회를 할 예정이다. 홍 회장은 "팬택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지금까지 국회에서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번주까지 이통사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1차 협력사 대부분이 줄줄이 도산한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한 날 한 시가 급하고 귀중하다.
 
홍 회장은 말했다. 이번주에 결정이 안나면 팬택이나 이통사업자, 정부, 또 다른 채권단까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끝까지 하겠다고 말이다. 이들의 바람대로 팬택이 회생할 수 있을지, 누군가 나서서 관심을 가져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생계가 달린 문제인 만큼 이들의 외롭고도 처절한 싸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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