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동유럽-우크라이나
채무 불능 상태 도래..정국 혼란까지
IMF, 2차 구제금융 거부..한국기업도 `유탄' 우려
티모셴코 총리 "IMF와 막판 해결 시도"
2009-02-22 12:54:00 2009-02-22 12:54:00
러시아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가진 우크라이나가 금융위기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말 국제통화기금(IMF)으로 16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 이 중 45억 달러를 받아 금융권에 투입했지만 경제위기는 가중되고 곳곳에서 사회 불안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정부 채권을 발행하고 있지만, 지난해 12월 디폴트를 선언한 에콰도르를 제외하면 달러화 국채 이자율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정쟁(政爭)에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국가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물가.환율 등 지표 최악..IMF, 2차 구제금융 거부
 
지난 13일 국제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우크라이나의 국가 신용등급을 `B+'에서 `B'로 하향 조정했다. 금융부문의 불안이 심화되고 IMF 구제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적다는 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재정 지출 축소 등 신용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IMF가 2차분 구제금융 19억 달러 집행을 거부하자 이제는 앞뒤 잴 것 없이 서방은 물론 외교적으로 껄끄러운 러시아에도 `SOS'를 보내야 할 형편에 처하게 됐다.

현지 화폐인 히브리냐의 대(對) 달러 가치가 작년 9월에 비해 약 43% 떨어지면서 외채 상환 부담이 늘어가고 있다.

경제 통신사 블룸버그에 따르면 앞으로 6개월 사이 히브리냐 가치가 19% 이상 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유럽 최고 수준인 22%로 좀처럼 안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주요 수출품목인 철강, 화학제품 가격 하락과 국제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국고를 보충하기에는 사실상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지난달 산업 생산이 1년 전과 비교해 34.1%나 떨어지면서 역사상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는 정부 발표는 현재 우크라이나 경제 상황을 가늠케 하기에 충분하다.

올해 정부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7%에 달할 것이고 2007년 7.6%에 이르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1%, 그리고 올해는 6%나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뿐이다.

◇허술한 경제시스템.정치불안이 화(禍) 키워
 
시장에서는 이미 디폴트가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당장 국가 부도는 아닐지라도 은행과 기업 파산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사실 우크라이나 경제는 금융위기 도래 전까지만 해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다. 9년간 5% 내외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왔고 2005년 환율 파동이 있었지만, 중앙은행이 안정화 정책을 마련하면서 환율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금융위기가 닥치자 그동안 우크라이나 경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했는가가 여실히 드러났다.

유가 하락과 유동성 위기, 그에 따른 채무 상환 압력으로 기업과 은행의 몰락이 한순간에 이뤄졌다.

우크라이나가 이 지경에 이른 더 큰 원인은 정치 불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오렌지 혁명 이후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의 갈등뿐 아니라 친서방파의 내부 권력 다툼으로 지난 5년간 여섯 번이나 총선을 치르는 등 극심한 정국혼란을 겪어왔다.

경제 개혁이 예정된 시간표대로 갈 리 만무했고 위기를 헤쳐나갈 자생력을 기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난 2007년 총선 이후 연정을 구성한 유셴코 대통령과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는 국유자산 처분, 예산 편성 등 경제운용 문제로 사사건건 대립했고 결국 금융위기가 찾아온 지난해 9월 연정이 붕괴됐다.

지난해 12월 여야 3당이 간신히 연정 구성에 합의 했지만, 대통령과 총리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키예프의 중립적 두뇌집단인 국제전략연구소의 바딤 카리시오프 소장은 최근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둘의 정치적 대립이 경제위기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며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 러시아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국가적 에너지를 허비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러시아와 가스 분쟁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른 것도 그 때문이다.

◇국가신용도 급락..한국기업들도 초긴장
 
지난주 정부 예산 감축을 주장했던 재무장관이 사임하고 IMF가 2차분 구제금융 지원 거부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우크라이나에 국가 부도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중앙은행이 사실상 환율 정책에 손을 놓은 상황에서 현재 우크라이나의 국가 신용도를 믿는 나라는 거의 없다.
수만 명의 노동자가 무급 휴가에 들어갔고 실업자는 늘어만 가고 있다. 대량 인출 사태로 7개 은행이 파산 관리에 들어갔고 한 은행은 러시아 국영은행에 팔렸다.

노동자들의 동요도 심상치 않다. 지난 6일 정부 불신임안이 부결되기 했지만, 대통령 탄핵과 정부 해산,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앙은행 건물 주변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당국의 환율 정책에 항의했고 전국 단위 노동조합 회원들은 수도 키예프 시청 앞에서 높은 세금과 낮은 임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의 몰락이 현지 시장 공략에 매달리던 한국 기업들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상사 주재원은 2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최악의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시장에 대한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할 것 같다"라며 현지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시장 불안과 정치 혼란이 결국 외국 투자자들의 불안을 가중, 해당 국가의 펀드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결책은 있나
 
전문가들은 단기외채 비중이 높고 은행자금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우크라이나가 디폴트 1순위 아니냐는 전망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로서는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하는 상황이다. 긴축 재정을 위한 예산 재편성을 통해 IMF로부터 추가 구제금융을 받지 않는다면 서방의 원조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최소 50억 달러의 긴급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IMF의 구제금융 거부를 이유로 우크라이나 신용등급을 낮추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로서는 예산 수정 불가 방침을 접고 IMF의 뜻을 따르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다.

우크라이나에 5억 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을 고려 중인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도 IMF측이 내건 조건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관리들은 과도한 외화차입이 오히려 국가 파산을 가져온다면서 대출 원조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디폴트를 피하려면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체적 여론이다.

우크라이나는 IMF와 EBRD 등 국제금융기관 외에 오스트리아, 영국, 이스라엘, 캐나다, 한국, 쿠웨이트, 싱가포르, 프랑스, 일본 등에 지원을 요청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위기 상황인 만큼 정파 간 싸움을 멈추고 국민과 해외 투자가들에게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충고다.

티모셴코 총리가 최근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IMF와 협상을 다시 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노력의 일부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토머스 미로우 EBRD 회장은 "위기를 해결하려면 사회 각 부분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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