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헝가리는 포린트화(貨) 가치가 급락하는 가운데 여전히 국가 채무불이행(default) 위험을 안은 채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에 이어 곧바로 불어닥친 전 세계 실물경제 침체는 헝가리 경제의 급격한 위축을 가져왔고 올 국내총생산(GDP)이 작년보다 3~3.5%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더욱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유럽연합(EU)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에 구원 요청을 거듭해서 보내고 있으며 내달 1일 열리는 긴급 EU 정상회의에서도 "회원국의 위기를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끝없이 추락하는 포린트화 가치와 주가
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 신청으로 '점화'된 작년 9월 금융위기 직전까지 대(對) 유로화 포린트화 환율은 230~240포린트의 박스권에서 형성됐다.
그러나 금융위기 직후 폭락했다가 IMF 구제금융 결정에 다소 회복하는 듯했던 포린트화 가치는 올 들어 수직으로 추락, 2월 말 현재 사상 최저 수준인 300~305포린트의 박스권으로 떨어졌다.
5개월 전만 하더라도 1유로를 환전하려면 230~240포린트를 내면 됐지만, 지금은 25% 이상 오른 300~305포린트를 내야 1유로를 손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주가 하락세도 심상치 않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서둘러 주식을 처분해 달러화 또는 유로화로 바꾸어 '탈출'하는 바람에 부다페스트증시의 BUX 주가지수는 금융위기 직전 17,000선에서 20일에는 10,000선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탈진한 상태다.
금융위기 직전과 비교해서는 40% 이상 빠졌고 30,000선까지 치솟았던 2007년 7월 정점에 비해서는 3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실물경제 위축으로 '설상가상'
금융위기는 일시적 시스템 장애로 치부하더라도 실물경제의 위축은 생존의 문제이자 중장기 성장, 고용, 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데 헝가리의 현 상황이 바로 이를 우려케 한다.
최근 헝가리 중앙통계청(KSH)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헝가리 GDP는 작년 4분기에 직전분기 대비 1%, 전년 동기대비 2% 감소했으며 2008년 연간 성장률도 0.3%에 그쳤다.
정부는 또 올해 GDP 성장률이 -3%에서 최악의 경우 -3.5%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헝가리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는 양상이다.
부다페스트 코리아비즈니스센터(옛 코트라 무역관)의 김종춘 센터장은 "외국계 기업의 생산기지를 비롯해 많은 기업이 감산에 들어가는 등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라고 말해 급격히 냉각된 실물경제 '체감온도'를 전했다.
◇대중의 둔감함이 '시한폭탄'..서유럽 투자자들 전전긍긍
정부와 재계는 현재 헝가리 경제가 채무불이행 선언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대중은 현 경제상황에 아직은 둔감하다는 게 현지의 분위기다.
김종춘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은 "현지의 경제인들은 일반인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한다"라면서도 "하지만 머잖아 대중도 불황을 절실하게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년 10월 이래 2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희생돼 여전히 정규직 급여생활자들은 고용이라는 측면에서 불황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침체가 장기화하고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정규직 급여생활자가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받을 수는 없기 때문에 머잖아 대중이 느끼는 경기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경제위기가 소요와 반정부 시위 같은 정치, 사회 혼란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매우 커 둔감한 대중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불러오는 잠재적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특히 헝가리는 유럽의 '신흥시장' 가운데 하나로 외국인 투자가 봇물을 이뤘고 특히 많은 외국계 은행이 자회사 형태로 헝가리 금융시스템을 장악했는데 경제위기에 이어 정치, 사회 위기까지 온다면 투자위험도는 훨씬 커지게 된다.
이에 따라 대(對) 헝가리 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유럽 기업들은 전전긍긍하는 실정이다.
◇세제 개편 등 노력에 한계..EU 등에 구원 요청
헝가리 정부는 세제 개편을 통해 경기활성화를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법인세율을 20%에서 19%로 낮추고 법인세와 개인사업자의 소득세에 부과되는 4%의 연대세(Solidarity Tax)를 잠정 폐지하는 한편, 근로소득세도 개편해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근로자층을 두텁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세수가 줄어 재정적자가 심화할 수밖에 없는데 헝가리 정부는 2000억포린트 가량의 정부 경상지출을 절감하고 부가가치세(VAT) 세율 인상으로 보전한다는 입장이다.
VAT 세율을 20%에서 23%로 인상하는 안은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론도 만만찮은데 EU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경기부양 효과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IMF 구제금융을 받은 헝가리로서는 어차피 자체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EU 안에서 독일, 오스트리아 등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회원국과 EBRD, 유럽투자은행(EIB) 등에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EU 입장에서는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회원국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파국'에 이르면 정치, 사회 혼란으로 이어지고 이는 EU 확대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경제위기의 향후 전개방향은 내달 1일 긴급 EU 정상회의에서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뤼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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