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답이다!)경제전문가 62% "위기일수록 투자하라"
(집중기획)②학계·연구소등 경제전문가 설문조사
2012-06-26 17:50:57 2012-06-27 12:06:17
[뉴스토마토 김기성·황민규·양지윤기자] 우왕좌왕이다.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이자 대한민국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실물경제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는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1997년 IMF, 2008년 금융위기에 비견될 정도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현 상황을 '대공황'에 빗댔다.
 
국내외 주요기관들은 저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끌어내리느라 여념이 없다. 급기야 3% 턱걸이에 그칠 것이란 비관적 전망마저 제기됐다. 올초 4% 내외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날개없는 추락'이다.
 
심리는 또 다른 악재로 작용했다. 시장은 지수 하나에, 당국자 한마디에 출렁이는 롤러코스터장이 됐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 상황' 그 이상의 심리적 악화"라고 지적했다.
 
경제활동 주체인 기업들은 사실상 손을 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6일 국내 주요기업의 유럽 현지법인과 지사 90개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내놨다. 응답 기업의 절반이 넘는 67.8%가 현 위기 대응방향으로 "사태 추이를 관망하면서 현 경영활동을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권 실장은 "위기상황이 오느냐 마느냐는 우리 손을 떠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외적 악재를 돌파할 마땅한 출구가 없는 관계로 사전 대비와 사후 대응에 주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뚜렷한 대책은 없었다.
 
과연 그럴까. <뉴스토마토>는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학계, 민간연구소, 시민사회 등 각계 경제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질문은 단 하나였다. 현 상황에서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해답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론은 역시 '투자'였다. 답변에 응한 24명의 경제전문가들 중 62.5%에 해당하는 15명이 "투자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유동성을 확보해 대응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대답은 25%(6명)에 그쳤다. 3명은 기타 의견을 제시했다.
 
◇자료=뉴스토마토
 
김덕현 세종대 융합경영학과 교수는 "불황일수록 적극적인 신성장 동력 사업 발굴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그는 "기업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성장(growth)과 유지(survival)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면서 "기업 활동이 외부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 속에서 기회를 포착함은 물론, 위협요인을 최소화하는 것은 경영진의 주요책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기존사업 외에 신수종 사업에 대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체계적으로 설계함으로써 장단기 목표와 성과의 균형을 확보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안재현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장은 "쌓아놓은 현금성 자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면서 "R&D(연구개발)와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미래성장 동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 위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장기적인 불황이 예상된다"며 "불황의 시기에는 인적 자본 축적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질적 성장과 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또한 "단순히 투자를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며 "신성장 동력 사업 모색에 주력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녹색산업으로의 전환기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강 교수는 먼저 "국내외 불황으로 기존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위축됐다"고 지적한 뒤 "전통적 산업은 미래에 상당한 정도의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대신 그는 미래 수요를 반영한 투자를 주문했다.
 
강 교수는 "기존 성과로 상당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은 전환기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투자, 즉 녹색산업 및 관련 R&D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이것만이 지금 처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규정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부장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15대 재벌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76.4% 급증했다"며 "중요한 것은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경기 불황과는 관련 없이 한국경제에 대한 투자가 늘 부족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재벌들의 의견을 수용해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을 단행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한 장막을 걷어줬지만 정작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권 부장은 이어 "투자와 고용은 재벌뿐만 아니라 기업 본연의 책무"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라고 강조했다. "위기일수록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하고 중소기업과의 상생 또한 방기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반면 유동성 확보를 통해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은 불황이라기보다 '불확실성의 시기'"라며 "이런 때는 예비적 동기에 의한 현금 보유를 늘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는 무리하게 투자 위험을 감수하라고 기업을 윽박지르기보다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문제는 현재 불확실성의 상당 부분은 국외에서 연유하는 것이어서 국가나 기업이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 재정 지출을 통해 내수와 소비 진작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대학원장도 "국가 전체로는 불황일수록 적극적 투자를 이끌어내는 게 답이지만 개별기업 입장에선 유동성 확보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윽박질러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으로선 위기의 폭과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리스크 관리가 제일 우선돼야 한다는 점에서 투자를 줄이고 현금성 자산을 충분히 확보해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냐, 유동성 확보냐. 해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현재 흐름은 분명 투자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10대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사상 최대인 340조원을 돌파했지만, 채워진 곳간은 여전히 잠겨 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과거 한나라당 대표 시절 "금고문을 열라"며 수차례 애원했지만 기업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청와대까지 발끈하며 "이젠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서로의 의지가 부족한 탓에 생색내기에만 그쳤다.
 
앞선 전경련의 실태 조사는 움츠려 든 기업들의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위기에 대한 대응방향으로 67.8%가 "사태 추이를 관망하겠다"고 답한 반면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 투자 활성화 등 공격적 경영정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은 5.7%에 그쳤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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