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유럽 재정위기에서 촉발되고 미국 더블딥 위기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재정위기가 최근 국내 금융시장을 패닉에 빠뜨리고 있다. 금융 패닉은 시장불안에 그치지 않고, 고물가와 가계부채, 재정과 경상수지 악화, 부동산시장 침체, 성장잠재력 약화 등으로 먹구름이 짙어가고 있는 국내 거시경제에도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글로벌 및 국내 경제·금융위기의 실체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보는 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③
미국의 '더블딥'(경제가 침체됐다가 잠시 회복된 후 다시 침체되는 것) 우려는 현재진행형인 유럽 재정위기, 중국의 거품붕괴와 더불어 글로벌 경제가 맞고 있는 위기의 중요한 한 축이다.
미국이 더블딥 상태에 빠질 경우, 유럽과 중국의 문제와는 별개로 세계 경제에 장기간에 걸친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특히 미국은 국내 주요 수출품의 최대 시장이어서 소규모개방경제인 한국 경제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세계 금융시장이 그리스 디폴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 미국에서는 더블딥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헤지펀드의 대부인 조지소로스는 미국이 이미 경기침체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다시 침체에 들어섰고 미국은 이미 침체에 빠졌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정말 더블딥에 빠진 것일까?
고용지표와 소비지표로만 보면 미국 경제는 더블딥 상황이다. 우선 미국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전혀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밤에 나온 미국의 9월 소비자신뢰지수는 2년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유는 30년래 최고 수준인 실업률이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기때문이다.
9월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42만 8000건으로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전월 신규고용이 제로였던 데서 실업자는 예상보다 더 늘었다는 얘기다. 고용상황은 소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고용여건은 어렵고 자산이 늘지 않는데 소비심리가 개선될 리 없다.
그렇다고 미국 경제지표가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8월 ISM비제조업지수는 53.3을 기록해 시장기대를 상회했다. 미국 경제의 80%를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이 개선됐다는 점에서 아직까진 우려만큼 침체로 전환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문제지만 미국 기업의 실적도 금융위기 수준으로 회복하거나 더 개선됐고 가계신용도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 경제가 더블딥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내년에도 경기 둔화가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올해보다 더 악화되거나 새로운 충격이 오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는 유로존 불안이 해소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어서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글로벌 경제는 유럽에서 그리스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 美 경제는 피흘리는데도 손도 못쓰는 정부
문제는 비관과 낙관이 엇갈리는 경제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불안감을 풀어나가야 할 정부가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경제실장은 “고용과 소비, 주택가격 부진 등을 볼 때 아직 민간 자생력이 살아난 게 아니다”며 “정부가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현재 정치부담으로 미국은 그만한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지금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경기침체의 재발 여부가 아니라 침체의 강도"라며 "유로존 상황이 미국 경제에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정책적 실탄은 이미 바닥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이 그리스 디폴트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극심한 신용경색으로 미국 경제에 쇼크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리스 국채를 대량 보유한 유럽 대형은행들은 뱅크런사태에 이어 줄도산 위기에 내몰리게 되며 영향권에 있는 미국 금융기관의 부실 전이도 불가피하다.
그리스의 '질서 있는 디폴트'는 이러한 부실 전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더 늘리는 등 그리스 부도 처리 비용을 미리 마련해놓고, 사전에 채권자간 협의를 거쳐 위험을 통제하겠다는 얘기다.
한은 고위관계자도 “부풀어오른 풍선을 한번에 터뜨리는 게 아니라 조금씩 바람을 빼자는 것으로 충격을 주지 않을 정도로 바람을 빼면서 부채를 줄여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글로벌 경제 美자생력 회복과 유럽에 달려있다
결국, 미국의 더블딥 문제는 자국내 민간 자생력과 유럽 재정위기 해소가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지는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으로 볼 때 더블딥 우려가 해소되기는 어려워보인다.
미국은 당장 경제상황이 단기적인 해법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 오바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 차례 추가부양을 했지만 실물경기를 살리는 데는 실패하고 오히려 인플레이션만 부추겼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는 상황.게다가 미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재정위기를 볼모로 오바마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경제학자 폴그루그먼 교수는 "경제위기는 분명히 끝나지 않았다"며 "당장 정부 지출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위기를 해결하려는 대신 위기를 이용하려고 하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우리는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지금 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럽의 돌아가는 상황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에는 합의했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유로존 국가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당장 그리스 구제금융 6차지원을 놓고서도 독일과 네덜란드는 민간부담을 확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경우 부담이 커지는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은 적극 반대하고 있다.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자 영향권에 놓여있는 미국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유로존 위기가 미국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유럽의 대응이 충분치 않다고 비판했다.
박성욱 연구위원은 “타이밍이 중요한 데 G20회의에서 각국이 공조에 합의하면서 문제를 풀려나가야한다”며 “만약, 그때까지도 해결이 안되면 이후 상황은 예측 불가능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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