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고유가 행진 속 또 하나의 핫 이슈는 향후 원유수요 전망이다.
최근 서방 선진국들의 원유 수요는 점차 줄고 있지만 신흥 개도국의 수요 급등이 심상치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를 비롯한 에너지 관련 기구·기업들은 아시아로 대표되는 이머징 마켓의 향후 에너지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시장수요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으면 차후 원유공급 전망 또한 불투명해져 유가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수요불확실성을 문제 삼는 산유국들
급증하는 원유 수요가 유가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리는 한 요인이 되고 있는 만큼 과연 수요가 얼마나 진작될 것인지, 그리고 공급이 수요를 언제까지 따라갈 수 있을 지에 각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요전망에 관심을 쏟는 것은 비단 고유가에 허덕이는 석유소비국뿐만이 아니다. OPEC 차킵 켈릴 의장은 29일 열린 세계석유회의(WPC)에서 향후 증산 전망과 관련 “원유 매장량이 문제가 아니라 증산을 하면 팔 수 있을 만큼의 미래 수요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하며 원활한 수급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원유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OPEC 증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유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산유국으로 하여금 선뜻 투자에 나서지 못하게 하고 있으므로 증산보다는 ‘수요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 인도 등의 산업이 성장하면서 원유 수요 급증을 부르고 이에 따라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역설적으로 다시 이머징 마켓의 생산성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국가의 생산성이 위축되면 원유에 대한 이머징 마켓의 수요는 다시 줄어들 것이고 수요감소는 다시 유가를 떨어뜨려 결국 산유국의 이익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공급량을 조절해 이윤을 남기는 입장인 산유국들이야말로 원유가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들은 향후 수요 추이에 그 누구 못지 않게 주목하고 있다.
이머징 마켓의 향후 원유수요 전망
“고유가와 경기 둔화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원유 수요는 감소하지만 이머징 마켓의 소비 증가와 산유국들의 공급 제한, 정제시설 부족 등으로 2013년까지 원유공급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 (국제에너지기구 원유시장보고서, 2008.07.01)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국, 인도,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가들의 성장으로 원유 수요는 크게 늘고 있지만 5년 이내에 생산 역량이 개선될 뚜렷한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지난 1일 IEA가 발표한 ‘중기(5년) 원유시장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글로벌 원유 수요는 지난 2006년 4분기 이후 공급을 지속적으로 추월하고 있다.
IEA는 국제 원유 수요량이 올해 하루 8690만배럴에서 2013년에는 하루 9410만배럴로 늘어 5년간 720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시아·중남미·중동 등 개발도상국이 수요 증가분의 9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국제 원유시장의 수급이 향후 5년간 계속 빡빡한 상태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원유 공급량은 올해 하루 9040만배럴에서 5년 후인 2013년에는 하루 9620만배럴로 580만배럴 가까이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IEA는 추정했다. 한마디로 공급 증가가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IEA는 수요 증가분의 대부분이 중국과 인도 등 신흥개발국을 포함한 각국의 운송 연료로 사용될 것으로 내다 봤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례로 IEA는 세계의 자동차 규모의 증가세를 꼽았다. 세계 자동차 규모는 2005년 8억9000만대에서 2013년에는 12억대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원유 수요는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향후 2년간 조정세를 보이다가 다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 공급은 원유개발 프로젝트가 집중되는 향후 2년 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IEA는 수요 대비 공급 초과여력이 2010년 하루 250만배럴로 정점을 이뤘다가 이후 100만배럴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 페트로브라스 일본법인 오스발도 카와카미 대표도 최근 신흥 시장 원유 수요와 관련해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2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진행된 브라질 증시전망 기자간담회에서 카와카미 대표는 “현재 유가 상승의 최대원인은 기존의 대표 석유수출국이었던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가 석유 수입국으로 전환함에 따른 수급의 불균형으로 촉발된 것”이라며 “이들 국가들의 공급과 수요 균형을 이루려면 적어도 2년이 소요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까지 유가 흐름은 인상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은 단순히 수요에 맞춘 원유수입뿐만 아니라 원유비축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수요가 공급을 초월하는 현상이 계속돼 원유가 상승은 쉽게 진정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년에는 중국, 인도 등이 유가 보조금을 축소할 전망이어서 이것이 원유 수요를 다소나마 감소시키며 유가 안정에 소폭이나마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가 잡을 '긍정의 힘' 필요
수요 증가추세가 공급 증가세보다 점점 더 커지면서 현재 원유시장에서는 연말 유가 300달러에 베팅하는 트레이더들이 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3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인상했다는 소식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CB의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유가는 당분간 고공행진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고유가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회장인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의 전망처럼 고유가에 대응해 주요 소비국들이 연료효율성이 높은 자동차 개발에 정부가 보조금을 확대하거나 자동차 연비 개선에 기준을 마련하는 등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원유의 수요와 공급은 곧 균형점을 찾아 나서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여기에 향후 미국 달러 강세 등이 겹쳐지면 유가 진정세 국면은 시장의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각국이 고유가를 정면돌파 하기 위한 방안으로 에너지 구성을 다양화하고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힘써야 함은 물론이다. 오일 쇼크 위기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 메커니즘에 대한 학습이 쌓여가고 있다. 세계 각국이 막연한 불안심리를 키워가기 보다는 자신감을 갖고 실질적인 대안을 강구한다면 철옹성 같은 고유가도 언제까지고 극복 불가능한 장벽으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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