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고유가 시대는 이제 현실이 됐다. 고삐 풀린 유가는 이번 주부터 140달러 대신 150달러라는 새로운 고지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3차 오일쇼크에 대한 위기감마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고유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수급 문제를 두고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해 당분간 유가 널뛰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달 열린 사우디 제다 회담에서부터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석유회의(WPC)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각종 고유가 대책 마련 국제 회동에서는 산유국과 소비국간, OPEC내 회원국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특히 OPEC 내 회원국 사이에서도 석유 증산에 대한 이견 차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반대입장의 두 선봉에는 서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이란이 있다.
◇ 사우디 제다 회담서 불거진 OPEC 회원국 간 갈등
석유 증산 여부에 대한 OPEC 내 갈등의 불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당겼다. 사우디 제다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석유 증산 가능성을 은근히 시사해왔던 사우디아라비아는 결국 지난 달 22일 열린 회담에서 하루 원유 생산량을 7월부터 20만 배럴 늘리고 또 내년 연말까지 원유생산능력을 1250만 배럴까지 확충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앞서 회담 전날 리비아 국영 석유회사의 쇼크리 가넴 사장은 “시장에는 지금 충분히 많은 원유가 공급되고 있으며 더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사우디의 결정에 대응해 생산량을 줄일 수도 있다"는 다소 위협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은 바 있다.
OPEC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이란은 제다 회담에서 세계 1위 석유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을 결정하자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OPEC 회원국들과의 협의 없이 내린 독단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란의 모하마드 알리 카타비 OPEC대표는 “모든 증산 결정은 OPEC 각료 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만일 사우디가 증산을 강행한다면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또한 “산유국들의 석유 공급은 충분한 상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란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와 리비아, 알제리 등도 증산에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알제리의 석유장관인 차킵 켈릴 OPEC 의장도 이번 제다 회담에서 증산이 불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투기세력 등에 의해 시장 수요가 부풀려진 것일 뿐이지 실제 수요는 공급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을 결정한 후 석유 증산 반대 목소리가 점차 커지던 중 석유생산량 세계 3위인 UAE, 4위인 쿠웨이트가 연이어 증산 가능성을 시사하며 증산을 둘러싼 대립구도는 강화되고 있다. 쿠웨이트의 무하마드 알 오레임 석유상이 먼저 지난 달 24일 내년 중반까지 하루 30만 배럴을 증산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다음날 UAE의 모하메트 알 함리 석유장관도 "필요하다면 시장 수요에 맞춰 산유량을 늘릴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결국 OPEC내 회원국은 증산과 동결, 두 파로 갈렸다. 제다 회담을 통해 친서방국가인 사우디, 쿠웨이트, UAE 등은 수급문제가 고유가의 원인인지 미심쩍어하면서도 미국 등 주요 서방국의 요구대로 증산 움직임을 보인 반면 이란, 베네수엘라, 리비아, 알제리 등 반미 성향의 국가들은 최근의 고유가가 공급과 수요 불균형이 아닌 시장 왜곡에 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우디 제다 회담은 ‘국제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규제를 강화하고, 에너지 프로젝트를 확대해야 한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리고 폐막해 고유가 대책에 대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OPEC내 갈등이 표면화되는 도화선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 세계석유회의(WPC)..계속 되는 OPEC 회원국 사이의 이견 차
제다 회담 이후에도 OPEC 회원국 간 갈등의 폭은 커지고 있다. 지난 달 29일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석유회의(WPC)에서 이번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카타르가 증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 최근 OPEC 회원국 일부의 증산 발표와 반대편에 섰다.
카타르의 압둘라 빈 하마드 알-아티야 석유 장관은 공급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증산 움직임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알-아티야 석유 장관은 "석유 공급이 부족해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서 "시장에는 석유가 쌓여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타르가 OPEC의 증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알-아티야 석유 장관은 "현재 카타르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90만배럴이며 이는 적절한 수준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제19차 WPC에서는 전 세계 60개국 이상 각국 석유장관과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로얄 더치 셸, 엑손모빌, 가즈프롬 등의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석유·가스 산업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WPC에서는 최근 유가상승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는 투기 세력에 대한 논의는 빼고 수급균형 및 산유산업 진흥책 등에 오롯이 초점을 맞춰 진행될 예정이다.
세계 석유가스 생산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회원국들이 참석하는 이번 회의에서 OPEC 내 갈등이 더욱 심화된다면 국제 유가의 변동성 또한 확대 될 것으로 보여 회의 결과의 귀추가 또 다시 주목되는 상황이다.
◇ 이라크, 유전 개발 문호 개방..실제 생산량 증대효과는 미지수
현재 이라크를 제외한 OPEC회원국의 올해 일일 석유생산량은 373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지난 해보다 160만 배럴 가량 증가한 수치지만 생산량에 비해 수요량 증가세가 훨씬 거세 산유국의 추가 증산을 요구하는 석유소비국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추가 증산에 지구촌의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지난 달 30일 이라크가 36년 만에 처음으로 유전 개발의 문호를 전 세계에 개방하기로 해 관심을 모았다. 후세인 사리스타니 석유장관은 “활발한 외국인 투자 유치로 하루 원유 생산량을 현재 250만배럴에서 2013년까지 450만배럴로 늘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라크의 원유 생산량은 아직 세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지만 보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뒤이은 세계 3위일 정도로 개발 여력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 정부의 유전 개방 방침은 그 동안 공급 부족에 시달려온 국제 원유시장과 석유 수입국들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이 이라크 전쟁을 석유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여전히 걸림돌이다. 정부는 기술을 제공하는 해외 업체들에게 별도로 유전 생산권을 부여하지는 않을 방침인데다 개별 사업마다 이라크 국영석유회사가 최소 25% 지분을 소유할 예정이라 이라크의 유전 개방이 실제적으로 OPEC의 세계 원유 공급량 증가에 어느 정도 기여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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