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40달러 시대)③고유가의 진짜 주범은 투기세력?
美 의회, 투기세력 규제 나서
2008-07-03 08:54:00 2011-06-15 18:56:52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국제유가가 고공비행을 거듭하면서 수급 측면뿐 아니라 투기세력의 실제 존재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의 고유가 책임공방이 세계석유회의(WPC)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유가 폭등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태다.
 
최근 들어 원유 시장에 투입되는 금융투자자금의 규모를 상세히 조사한 발표가 나오고 있는한편 미국 정치권에서는 투기 세력을 고유가의 주범으로 확신하며 투기 세력 규제 움직임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투기세력을 투자세력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투기 세력 규제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 고유가 원인 연구 중
 
“원유의 시장 수요가 높다면 공급이 이에 발 맞춰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재고 또한 늘어야 하는데 원유 시장의 현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미국의 스콧 어윈 교수는 투기세력이 수급상황과 지정학적 불안을 넘어서면서까지 유가 폭등을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 일리노이대학의 스콧 어윈 교수와 드와이트 샌더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의 로버트 머린 교수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주간 보고서를 통해 트레이더들의 매매현황을 조사했다. 투기세력이 상품시장에서 유가급등을 이끌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상품시장에서 리스크 헤지를 목적으로 거래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투기세력은 선물시장에서 종종 반대 포지션을 취함으로써 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학자들은 투기세력이 시장에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장의 유동성은 떨어지고 가격 변동성이 오히려 커질 것으로 분석했다
.

어윈 교수는 투기세력이 과도해져 투기세력끼리 거래가 발생한다면 거품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윈 교수팀이 조사·분석한 자료는 투기수준이 과거와 비교해서 크게 커진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즉 투기세력의 매수 포지션만큼 반대 매도 포지션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

어윈 교수팀은 투기세력이 시장가격 이상으로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면, 즉 유가에 거품이 있다면 원유재고가 증가해야 하지만 그 동안 원유재고는 계속 감소추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 교수도 최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비슷한 의견을 낸 바 있다. 투기세력을 고유가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는 주장이다.
 
한편 길레르모 카보 콜럼비아대학 교수는 개도국의 과도한 유동성에 선진7개국(G7)의 낮은 금리가 겹쳐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과잉유동성이 넘쳐났고 국제유가를 수급상황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또 원유재고가 증가하지 않는 것이 곧 가격에 거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카보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상품에 대한 수요가 완전히 비탄력적인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투기세력의 원유를 쌓아두려는 모든 종류의 시도는 상품가격을 곧장 끌어올리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에 크루그먼 교수는 수요가 완전히 비탄력적이라는 가정 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학자들의 의견에 상충되는 면은 있지만 과도한 투기세력의 개입으로 시장 적정가격 이상으로 가격이 폭등한 데 대해서는 학자들 모두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투기 세력이 어느 정도까지 원유 투기에 나서고 있는 지에 대해 시장투자자들에게 보다 자세한 수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유시장에 유입되는 유동성 규모는 얼마?
 
투기세력의 유동성이 유가의 이상 급등세를 이끌고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과연 원유시장에 투입된 자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세계 각국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원유파생상품으로 유입된 투자자금은 2002년에 비해 20배나 증가했다. 주요 IB 및 연구기관들은 지난 해 골드만삭스 원유상품지수 등에 투자된 인덱스펀드 규모가 1700억∼26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2년 원유관련 인덱스펀드 규모는 130억달러에 불과했다.

원유파생상품의 투자자금 규모를 추정하는 기준이 되는 원유선물시장의 리스크 헤지 매수포지션 규모도 2002년 이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2002
년 초 15만계약 수준이던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원유선물(옵션 포함) 헤지 매수포지션은 2003년 말 26만계약, 2004년 말 34만계약, 2005년 말 53만계약, 2006년 말 66만계약, 지난해 말 90만계약을 기록하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계약 건수가 122만 수준까지 뛰어올라 연초에 비해 28%나 늘어났다.
 
단순 리스크 헤지 거래자들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전체 매수포지션에서 비상업 매수포지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초 20%였던 것에서 최근에는 40%대로 증가했다. 단기차익을목적으로하는투기거래와포트폴리오투자등을포함하는비상업적거래는일반적으로투기거래로인식된다.

물론 투기세력을 투자세력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세계에 걸쳐 현재 원유선물시장 규모가 약 5000억달러에 이르고 장외시장 규모는 15000억∼3조달러에 달하는 가운데 에너지 관련 헤지펀드 수가 2004 180개에서 최근 630여개로 늘어난 데다 특히 이중 원유만 전문으로 거래하는 헤지펀드만 2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원유 시장의 투기자금 유입을 마냥 부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투기자금이 유가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지는 다소 불분명하지만 이들이 투자를 확대함에 따라 시장 변동성 및 가격 상승폭이 더 커졌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미국 의회, 투기 세력 규제 움직임
 
투기세력을 포함한 이러한 과잉유동성이 유가의 이상 급등세를 이끌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미국 의회를 비롯, 세계 각국은 금융투자자금에 대한 일정 수준의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원유파생상품에 단기 성향의 투기자금뿐만 아니라 연기금 등 장기 성향의 금융투자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실제 최근 미 의회는 특정 IB를 지목하며 이들에 의한 유가 조작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미국 하원은 뉴욕상품거래소(NYMEX)의 원유 선물 가운데 70%가 투기세력에 의한 거래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현재 금융투자자들의 원유파생시장 투자를 규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미 하원 에너지 상무위원회의 딩겔의장이 제안한 에너지부의 원유시장 정보 수집력을 강화하는 법안에는 유가 및 석유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이 공동 조사기관을 설립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
 
또한 지난 23일 열린 청문회에서 민주당 하원 지도부는 선물 투자에 대한 필요 준비금을 높여 투기 여력을 감소시키고 포지션 한계를 강화하는 한편 규제가 허술한 역외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일련의 방안을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CFTC
도 지난해 말부터 에너지 선물시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FTC는 최근 금융투자자들에게 정기적인 거래내역 제출을 요구하는 한편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의회 움직임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일단 이들에 대한 규제조치가 강화되면 유가는 하락세로 반전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는 미 의회가 금융투자자들의 포지션 한도를 축소하고 감독을 강화하는 등 규제를 시행하게 되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80100달러 수준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비즈니스 위크는 단기간 내에 유가가 25% 급락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규제조치가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CFTC의 규제 손길이 닿지 않는 런던과 두바이에서도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이 거래되고 있어 이들 국가의 전폭적인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규제조치가 강화되면 유동성이 규제가 덜한 시장으로 빠져나가 오히려 시장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

또한 민주당과 달리 미 공화당은 규제조치 강화가 잘못된 접근방식이라며 오히려 원유와 천연가스 등의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실제 규제조치가 시행될지 여부도 아직 미지수다.

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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