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박창욱 기자] 지난 7월 초 155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3개월 새 1300원대로 급락하면서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환율 하락으로 인해 달러로 벌어들인 수출 대금의 원화 환산액이 줄어드는 데다, 고환율 시기 원재료를 비싸게 매입한 상황에서 완제품 출하 시점 저환율로 제품 가격이 떨어져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3분기 실적 발표 시즌에 돌입한 산업계 곳곳에서는 환율 직격탄에 따른 저조한 성적표가 나오며 저환율 파장이 본격화하는 모습입니다.
2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와 코스닥,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 한국은행과 산업계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1330원대 수준을 기록 중입니다. 지난 7월 초 1550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최근 1320원대 연저점을 잇달아 경신하는 등 급감해 1300원대 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는 2024년 10월2일 이후 2년 만에 최저치 수준입니다.
이 같은 원화의 강세로 수입물가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반도체·전자, 자동차 등 수출 중심의 국내 산업계는 ‘수익성 악화’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산할 경우 매출과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환율 때 비싸게 매입한 원재료로 만든 완제품을 저환율 시기에 저가에 판매하게 되는 ‘역래깅’ 효과도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장에서는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 환율이 1250원대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실제로 산업계 전반에서는 급락한 환율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환헤지 전략에 따라 환율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급락한 환율 여파를 전부 방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입니다. 환헤지 전략은 미래의 환율을 미리 고정함으로써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줄이는 것을 뜻합니다.
삼성·하닉, 환율 손실 10조↑
반도체산업의 경우 인공지능(AI) 메모리발 대호황에 따른 호실적으로 저환율 여파가 일부 상쇄됐지만,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날 3분기 107조원에 달하는 역대급 영업이익을 발표한 삼성전자는 달러, 유로 등 주요 환율의 하락에 따라 부품 사업을 중심으로 전사 영업익에 전 분기 대비 10조원 수준의 부정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실적 발표 후 이어진 컨퍼런스콜에서 “최근 주요 통화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환율 변화가 경영 실적과 재무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고비용의 파생상품 거래보다는 수입·지출 통화를 맞추고 통화별 자산과 부채 규모를 일치시키는 ‘자연적 환헤지’(내추럴 환헤지) 방식으로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외화 노출은 달러 조기 매각 등을 통해 기간을 줄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환율 변동에 따른 경영 실적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사옥. (사진=연합뉴스)
전날 영업이익 83조원이라는 경이로운 실적을 발표한 SK하이닉스 역시 환율 하락에 따른 외환 관련 손실액이 11조6300억원에 달했습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계약 과정에서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을 완화하는 장치가 있어 원화 강세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지만, 달러로 거래되는 특성상 환율이 높을수록 원화 환산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며 “이번 분기에도 높은 환율이 유지됐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자동차와 전자 등 업종은 저환율 추세가 수익성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날 3분기 실적을 발표한 현대차는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한 2조672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공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관세가 15%로 낮아진 데다, 평균 환율이 지난해보다 높았던 상황을 감안하면, 실적 개선 폭이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파업과 부품사 화재 등 주요 차종의 출하 지연으로 생산과 판매에 차질을 빚은 영향이 컸지만, 저환율 추세 역시 실적 개선 흐름에 암초로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현대차의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5% 하락할 시 법인세비용 차감 전 순이익이 955억원가량 감소합니다. 증권가에서는 환율이 10원 움직일 때마다 현대차의 연간 영업이익이 2000억~3000억원 수준으로 변동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저환율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경우 현대차의 4분기 실적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전자부품, 저환율에 수익 ‘직격탄’
전자·부품 등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국내 산업계 대부분이 원재료를 수입한 뒤 이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제조업이 주력인 까닭입니다. 이에 3개월 전 고환율 당시 비싼 재료를 사들여 제품을 양산·판매하는 시점에 저환율이 적용되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등 3분기 수익성 악화가 뚜렷해졌습니다.
대표적인 곳은 LG이노텍입니다. LG이노텍은 올해 3분기 전 사업 부문의 고른 성장에 따라 처음으로 매출 6조원을 돌파하는 등 외형성장을 일궈냈지만, 환율 여파로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LG이노텍은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9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3.4% 감소한 수준입니다. 전 분기와 비교해도 61.4% 급감했습니다. 영업이익률도 1.5%로 1%대로 떨어졌습니다. LG이노텍은 원재료를 고환율로 매입한 시점(올해 상반기)과 제품 양산 출하 시점(3분기) 사이 환율이 급락하면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형우 SK증권 연구원은 “부진의 대부분은 환율 영향”이라며 “당초 환율 가정 대비 원화가 강세로 전환되면서 약 2000억원의 이익 차이가 발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부품업체들은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와 부품을 미리 매입하는 경우가 많아 구매 시점과 제품 출하 시점의 환율 차이에 영향을 받는다”면서 “신제품 출시 일정과 생산량에 맞춰 부품을 조달해야 하는 특성상 모든 물량을 장기 공급계약으로 확보하기 어려워 환율 변동성이 커질수록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했습니다.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LG디스플레이도 환율 영향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2% 감소한 250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 분기와 비교해서는 영업손익이 1077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지만 환율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김성현 LG디스플레이 최고재무책임자는 “3분기에도 환율 및 부품 가격 변동 등 대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업 경쟁력 강화와 운영 효율화에 집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선업계도 저환율이 수익성에 일부 영향을 미쳤습니다.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일제히 늘어났지만, 시장 전망치에는 밑돌았습니다. 조업일수 감소에 더해 환율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든 영향입니다.
전문가들은 환율의 급격한 변동성이 기업 경영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환율 수준보다 안정성이 중요한 상황”이라며 “환율이 급격하게 변하면 경영 판단이 어려워지고 투자나 사업 결정을 미루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환헤지를 통해 변동 위험에 지속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덕훈·박창욱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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