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화재가 났으면 소화기 점검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구청에서 아무것도 안 해줬어요."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중학교에 마련된 구룡마을 화재 임시대피소에선 주민들의 하소연이 이어졌습니다. 올해 1월에 이어 9개월 만에 또다시 대형 화재가 발생하자 주민들은 그동안 예방 조치가 미흡했다며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이번 화재로 91가구 127명이 집을 잃은 가운데 추위까지 다가오면서 당장 머물 곳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1월에도 불났는데"…반복되는 화재에 예방 대책 의문
이날 대피소에는 이재민 40명가량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고령자인 주민들은 화재로 집을 잃은 뒤 막막함을 호소했습니다. 80대 여성 A씨는 "집이 다 타버렸는데 어떡하느냐"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어 "맨날 불이 나서 대피소에 또 오게 된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구룡마을에선 지난 1월에도 대형 화재가 발생해 180여명의 이재민이 속출했습니다. 이번 화재는 지난 27일 오후 3시49분쯤 발생해 강풍을 타고 번졌으며, 약 13시간 만인 28일 오전 4시39분쯤 완전히 꺼졌습니다. 불과 9개월 만에 또 큰불이 난 겁니다.
서울시 강남구 구룡마을에 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인 28일 인근 학교 강당에 이재민을 위한 임시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구룡마을은 합판과 비닐 등 불에 타기 쉬운 자재로 지은 가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판자촌입니다. 건물 사이 간격이 좁아 불길이 쉽게 번지고 소방차 진입과 소방용수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LPG나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주민도 있습니다. 80대 남성 B씨는 "소방차가 몇 대 와도 불이 붙어버리면 그냥 다 타버린다"며 "불이 났을 땐 소리도 크고 완전히 전쟁통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겨울마다 발생하는 화재에 주민들은 예방 조치가 부족했다며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50대 여성 C씨는 "예전에 6지구에서 불이 났을 때 소화기를 나눠 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1월 화재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화재가 났으면 소화기 점검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70대 여성 D씨도 "계속 불이 나는데 구에서 해준 게 하나도 없다"며 "저번 화재 때도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호텔서 일주일 만에 나왔는데"…추위 앞두고 거처 걱정
불길은 잡혔지만 주민들에겐 당장 머물 곳이 문제입니다. C씨는 "1월 화재 때 호텔로 갔는데 일주일 만에 쫓겨나듯 나왔다"며 "이번에는 절대 호텔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다들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르신들을 호텔로 보내려고 했는데 아무도 안 가셨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머물고 있는 대피소의 운영 기간도 안내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C씨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준 게 없다"며 "언제까지 있을 수 있는지 안내도 전혀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숙소가 마련되더라도 "일터가 여기라서 멀리 못 간다"고 호소했습니다.
대피소 생활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B씨는 "추워지는 날씨도 걱정"이라며 "대피소에선 말도 못하고 라디오도 못 들으니 아무리 잘 갖춰놔도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 타버린 집 이야기만 하면 괴롭다. 눈물이 나서 말하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28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이 전날 발생한 화재로 처참한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 재난심리지원 관계자는 "화재로 집을 잃은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막막함"이라며 "대피소에 오긴 했지만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많이 걱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고령 어르신이 많고 날씨도 추워지다 보니 기존 집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기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주민들의 예방 조치 부족 지적에 대해 강남구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는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해 왔다고 해명했습니다. 강남구 관계자는 매년 전기·가스·소방시설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며 "구 차원에서도 별도로 점검과 순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SH도 "강남구청과 개포1동 주민센터 직원들과 협업해 매주 화재 안전 현장점검을 실시했다"며 "구룡마을 토지관리원을 기존 9명에서 18명으로 늘려 화재 취약 지역 점검을 강화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구룡마을처럼 화재에 취약한 지역은 일반 주거지와 다른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은 "이런 지역은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일반 지역처럼 획일적으로 안전관리를 해서는 안 된다"며 "소방차 진입로가 좁고 소방용수가 부족한 데다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의 밀집도도 높다. 이런 위험 요인에 맞춰 안전점검과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SH는 추가적인 화재 예방 대책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SH는 "화재 취약 지역 점검을 강화하고 이주 완료 세대에 가설 울타리를 설치하는 등 화재 방지를 추진할 예정"이라며 "구룡마을 내 소화수조 구축 등 화재 대응 개선 방안을 강남구·소방당국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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