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의 피지컬 AI)로봇은 다 보고 있다는 착각, 그 착각부터 깨야 한다
제25회/ 최홍규 연구위원(EBS)·미디어학 박사
2026-09-17 13:50:19 2026-09-17 14:49:54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로봇이 탁자 위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그 옆에서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던 사람이 목이 말라 말을 건넨다. "거기 컵 좀 줄래?" 컵은 탁자 반대쪽 끝에 놓여 있다. 로봇은 방금까지 탁자 가운데를 정리하느라 그쪽을 살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당연히 로봇이 컵을 봤을 거라 여기고 대답을 기다린다. 로봇이 머뭇거리자 사람은 답답해하며 다시 설명을 요구한다. 왜 이런 어긋남이 생길까. 카메라가 달려 있으니 당연히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볼 거라 여기지만, 로봇이 보는 범위와 사람이 보는 범위는 전혀 다르다.
 
이 사소한 오해에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AI를 이해하는 방식은 대부분 화면 안에서 이루어졌다. 챗봇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검색이 무엇을 찾아주고 무엇을 놓치는지를 배우는 식이었다. 그러나 로봇은 화면 밖으로 나와 몸을 얻은 AI다. 몸을 가진 AI를 안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을 계산하는지가 아니라, 그 몸이 실제로 무엇을 감지하고 무엇을 놓치는지를 아는 일이다. 필자는 이것을 피지컬 AI 리터러시, 곧 로봇의 몸을 정확히 읽는 능력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눈은 좌우로 180도가 넘는 범위를 감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시각과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정립된 사실이다. 반면 로봇의 눈, 즉 카메라는 사람 눈과 구조 자체가 다르다. 반면 로봇의 눈에 해당하는 카메라는 사람 눈과 구조가 다르다. 로봇이 한 번에 볼 수 있는 범위는 장착된 카메라와 렌즈에 따라 정해지며, 사람의 넓은 주변시를 그대로 닮지 않는다. 사람의 시야와 로봇의 시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이것이 앞서 컵을 받지 못했던 사람이 느낀 답답함의 정체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University of South Florida) AI·사이버보안·컴퓨팅 단과대학 연구팀은 바로 이 차이가 실제로 사람들의 판단을 얼마나 어긋나게 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앞서 소개한 컵 장면은 이 연구팀이 이전 연구에서 이미 확인한 사례였다. 이번에는 그 오해를 직접 실험으로 측정하고, 나아가 바로잡을 방법까지 찾아보기로 했다. 2026년 3월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팀은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 화각 54.4도) 앞에 참가자 마흔한 명을 앉히고 함께 조립 작업을 하도록 했다. 참가자는 로봇이 탁자 위 도구를 볼 수 있다고 판단되면 로봇에게 건네달라고 요청했고, 볼 수 없다고 판단되면 직접 집었다. 여기서 정확도란 참가자가 각 도구를 로봇이 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얼마나 정확히 맞혔는가를 뜻한다. 아무런 안내 장치 없이 판단했을 때 정확도는 66퍼센트에 그쳤다. 참가자 세 명 중 한 명꼴로 로봇의 시야를 사람의 시야처럼 착각한 셈이다.
 
연구팀은 이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증강현실 장치 네 가지를 시험했다. 그중 정확도를 가장 크게 끌어올린 장치는 로봇에 붙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물건을 집으려는 탁자 위에 직접 그려 넣은 경계선이었다. 참가자는 로봇의 성능을 따로 배우지 않고도 그 선 안쪽에 물건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됐다. 이 방식을 적용하자 정확도는 95퍼센트까지 올라갔다. 로봇의 눈구멍을 카메라 화각에 맞춰 더 깊게 보이도록 만든 장치도 정확도를 85퍼센트까지 높였다. 정리하면 사람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로봇의 사양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눈앞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표시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실험실에 처음 앉아본 성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로봇의 능력을 실제보다 부풀려 상상하는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면 그 습관이 굳어지기 전에, 아이들에게 로봇의 진짜 능력을 몸으로 겪게 하면 어떨까. 미국 버지니아공과대학교(Virginia Tech) 산업시스템공학과와 인간발달가족학과 공동 연구팀은 바로 이 물음에 답하고자 했다. 연구팀이 알아보려 한 것은 로봇을 반복해서 직접 만지고 경험한 아이들이, 단순히 설명만 들은 아이들보다 로봇의 능력을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되는가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2025년 3월 발표한 논문에서, 초등학생 서른여덟 명을 대상으로 아홉 주 동안 방과 후 로봇 연극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아이들은 인간형 로봇 페퍼와 나오(NAO),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마일로(Milo),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 등 여러 로봇을 직접 만나고 상호작용하며 연극을 준비했다. 페퍼와 나오의 말과 움직임을 프로그래밍하는 활동도 일부 포함됐다. 연구팀은 프로그램 전후로 아이들에게 로봇과 아기, 딱정벌레가 각각 무엇을 느끼고 할 수 있는지 물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아이들은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거나 주변을 인식하는 능력을 이전보다 뚜렷이 낮춰 평가했다. 로봇을 향한 막연한 기대가 걷히고, 실제로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현실적으로 가늠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아이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다. 프로그램 전에는 "내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 "내 명령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식으로 로봇을 도구처럼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로봇이 원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다. 능력을 정확히 알게 된 아이들이 로봇을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조정한 셈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두 연구는 정확히 같은 사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증명한다. 사람은 로봇의 능력을 설명 듣는 것만으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겪어봐야 비로소 안다.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 연구가 보여준 것은 즉각적인 처방이다. 눈앞에 표시 하나만 두어도 착각은 순식간에 줄었다. 버지니아공과대학교 연구가 보여준 것은 오래가는 처방이다. 아홉 주 동안 로봇을 직접 만지고 함께 실패해 본 아이들은 로봇의 한계를 몸에 새겼고, 그 이해는 로봇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꿔놓았다. 하나는 순간의 착각을 막고, 다른 하나는 습관이 된 착각을 고친다. 피지컬 AI 리터러시는 이 두 층위를 모두 갖춰야 완성된다.
 
정리해 보면 이 피지컬 AI 리터러시를 가정과 학교와 시니어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기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로봇을 마주하는 바로 그 자리에 한계를 보여주는 표시를 두는 일이다. 로봇의 성능표를 읽게 하는 대신, 로봇이 볼 수 있는 범위를 바닥 스티커나 안내선으로 표시해 두면 사람은 설명 없이도 즉시 판단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 표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로봇을 직접 만지고 실패를 함께 겪어보는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가정에서는 아이와 함께 로봇 가전이 실제로 어디까지 감지하는지 직접 실험해 보고, 학교에서는 교사가 로봇의 한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활동을 설계해야 한다. 시니어를 위한 교육이라면 로봇의 능력을 과장한 광고 문구보다 실제 작동 범위를 손으로 확인해 보는 체험이 앞서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로봇을 처음 만나는 자리는 대개 전시회 부스나 코딩 교육 현장이다. 그곳에서 로봇은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껏 보여준다. 로봇 교육 광고 문구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를 강조할 뿐, 로봇이 무엇을 못 보고 무엇을 못 잡는지는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다. 로봇의 화려한 능력만 보여주고 그 뒤에 숨은 한계는 가려버리는 이런 교육은, 아이도 어른도 로봇 앞에서 계속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은 로봇이 무엇을 '할 수 없는지'다. 그 한계를 아는 사람만이 로봇을 안전하게 부리고, 정확하게 신뢰하고, 필요할 때 존중할 수 있다. 로봇은 다 보고 있다는 착각. 그 착각을 깨는 순간, 진짜 피지컬 AI 리터러시가 시작된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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