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서면 제청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임명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양측의 갈등도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다만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를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전례가 없는 만큼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 불편한 동거를 이어온 이재명정부와 조 대법원장의 충돌이 헌정사 초유의 사태로 번질지 주목됩니다.
청와대, '손봉기 끼워넣기'에 반발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 대법원장은 즉각 대법원장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며 "사퇴만이 무너진 사법 정의와 국민 앞에 속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촉구했습니다.
이어 "역대 대한민국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품격이 존재했다"며 "지금의 조 대법원장은 그 품격을 스스로 내던진 채, 말 그대로 '희대의 대법원장'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여권은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신임 대법관 후보를 제청한 점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은 지난 3월3일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으로 한 자리가 공석입니다. 오는 9월7일 이흥구 대법관도 퇴임이 예정돼 두 명의 후임을 임명해야 합니다.
노 전 대법관 후임 인선 절차는 지난 1월부터 시작됐지만 지지부진합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21일 조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로 △김민기 수원고법 판사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윤성식 서울지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했습니다.
7개월의 공백을 뚫고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했습니다. 헌법 104조 2항에 따르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제청 전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합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역대 정부에서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전 조율 후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대면해 제청하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제는 조 대법원장이 관행을 따르지 않고 후보자 임명을 서면 제청했다는 점입니다. 청와대도 즉각 반발했습니다. 지난 20일 공지를 통해 "(손 후보자에 대한 제청은)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사태, 협의를 건너뛴 유례없는 일방 통보"라며 "다른 관례들과 법률을 충분히 먼저 검토해야 하는 사안으로 본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 제청했다. (사진=뉴시스)
야권 "재제청 땐 사법부 독립 무너져"
청와대와 조 대법원장은 사전 논의 여부를 놓고 진실 공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대법관 후보를 놓고 청와대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노 처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두 후보에 대한 임명 제청을 구두로만 통보하고 서면 제청했다고 항변합니다.
헌정사 초유의 '대법관 재제청' 가능성도 흘러나옵니다. 청와대는 손 부장판사에 대한 임명 제청 반려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부장판사의 경우 이 대법관 후임으로 청와대와 대법원이 이미 의견을 모은 바 있지만 손 부장판사는 '끼워 넣기식'으로 통보받았다는 게 청와대 입장입니다.
재제청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이 변수입니다. 87년 헌법 체계가 성립된 이후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를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사례는 없습니다. 아울러 대면 제청이나 사전 조율이 강제성 있는 절차가 아닌 만큼 제청을 반려할 명분도 충분치 않습니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뉴스토마토>에 "(대법관 임명 제청 관련해) 후속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불편한 동거를 이어오던 이재명정부와 조 대법원장의 갈등이 이번 서면 제출 사태로 극한에 치달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조 대법원장은 대선 직전인 지난해 5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관한 재판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강력한 대권 후보의 피선거권이 제한될 뻔한 상황에 놓이자 민주당은 이를 '반이재명 정치투쟁'으로 규정하고 조 대법원장 사퇴를 꾸준히 주장했습니다.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법사위를 주도하며 대법원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해엔 이례적으로 대법원 현장 감사를 실시하고 조 대법원장을 국회 증언대에 세우며 야권으로부터 삼권분립 붕괴라는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 조 대법원장 탄핵소추안에 의원 104명이 서명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은 이번 대법관 임명 서면 제청을 고리로 다시 조 대법원장 탄핵안 발의를 추진할 방침입니다.
야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건드리며 조 대법원장에게 힘을 싣고 있습니다. 자신이 연루된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사법부 수장 임명에 관여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요구대로 대법원이 대법관을 제청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은 무너지는 것"이라며 "지금 사법부가 독재자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결국 민주주의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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