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홍해 막히자 수에즈로…정유사 원유 조달 ‘첩첩산중’
수에즈 경유 원유 수송 첫 사례
장기화 시 운송비 부담 커질 듯
2026-08-18 14:24:37 2026-08-18 15:03:09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중동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통한 원유 수송이 잇따라 차질을 빚는 가운데, 호르무즈 봉쇄 이후 처음으로 수에즈 운하를 경유해 국내로 원유를 들여오는 사례가 나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사우디 얀부항에서 원유를 실은 유조선들은 홍해를 남하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 왔지만, 이 항로마저 불안정해지면서 최근에는 홍해 북쪽 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오는 우회 항로까지 이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운항 거리와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 정유업계의 원유 조달 부담도 한층 커질 전망입니다.
 
지난 5월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홍해를 통과한 유조선이 전남 여수시 GS칼텍스 원유 부두에 정박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18일 해양수산부 등에 따르면 한국 유조선 1척은 지난 17일 사우디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국내로 운항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수에즈 운하를 경유해 국내로 원유를 들여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난 2월 말 봉쇄 이후 얀부항을 활용한 국내 원유 수송은 이번이 16번째로, 앞선 15척은 모두 홍해를 남하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얀부항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사우디산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우회 거점입니다. 사우디는 걸프 연안 아브카이크에서 홍해 연안 얀부까지 이어지는 동서 횡단 송유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본 수송 능력은 하루 500만배럴 규모입니다. 호르무즈 통항이 막히자 사우디는 이 송유관을 활용해 원유를 얀부로 보내 수출을 이어왔습니다.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의 대체 항로로 활용돼 온 바브엘만데브 해협마저 불안해졌다는 점입니다. 호르무즈 봉쇄 이후 사우디는 원유를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보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 아시아로 수송해 왔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바브엘만데브를 통한 원유·석유액체류 운송량은 지난해 4분기 하루 540만배럴에서 올해 2분기 810만배럴로 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후티 반군 간 군사적 충돌로 긴장이 높아지면서 한국 유조선의 바브엘만데브 통과도 지난달 19일을 끝으로 중단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업계의 원유 조달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정유사들은 미국·아프리카산 원유 비중을 늘리며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에도 중동산 원유 비중은 62.3%에 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사우디산 원유만 전체 도입량의 30.5%인 1억4247만배럴로, 여전히 핵심 공급처입니다. 호르무즈에 이어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수입처 다변화만으로 추가 물류비와 조달 비용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유조선들. (사진=연합뉴스)
 
다만 당장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중동발 공급 차질로 석유제품 가격과 정제마진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늘어난 운송비 부담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상반기 국내 석유제품 수출량은 전년보다 7.5% 감소한 2억2623만배럴이었지만, 수출액은 36.5% 증가한 281억74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도 14조7906억원에 달했습니다.
 
다만 전쟁과 해상 운송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비용 부담은 커질 수 있습니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높은 정제마진으로 단기 충격은 흡수하고 있지만, 우회 항로 장기화로 운송비와 원료 조달비 상승이 누적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정유사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높은 정제마진이 유지되고 있고 원유 도입선도 다변화하고 있어 당장은 버틸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도 “다만 중동산 원유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운항거리 증가에 따른 운임과 보험료 등 물류비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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