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면적 구속력' 도입 전부터 무용론
2026-08-06 13:45:42 2026-08-06 14:24:47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조정안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감원에 접수된 금융 분쟁 민원 가운데 분조위에 회부되는 사건이 극소수에 불과한데요. 분조위 조정안의 효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반면 금융사들은 분조위 회부율이 낮더라도 재판권과 방어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며 제도 자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분쟁민원 중 분조위 회부 0.04%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 민원 1만9069건 중 분조위에 회부된 사건은 8건에 그쳤습니다. 전체 분쟁 민원의 0.04% 수준에 불과합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분쟁 민원 대비 분조위 회부 비율도 매년 0.03~0.05% 안팎에 머물렀습니다.
 
분조위는 금융상품 판매와 보험금 지급, 대출, 투자상품 손실 등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분쟁을 심의하고 조정안을 제시하는 기구입니다. 분쟁 민원이 접수됐다고 해서 곧바로 분조위 심의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실무 단계에서 금감원 담당자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금융사에 합의를 권고하거나 금융사 자체 민원 처리 절차로 사건을 넘기는데요. 소비자와 금융사가 금감원의 합의 권고를 받아들이거나 민원을 취하하면 분조위까지 올라가지 않고 사건이 종결됩니다.
 
쟁점이 복잡하거나 다수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표 사건, 금융사의 책임 여부를 두고 당사자 간 이견이 큰 사건 등이 주로 분조위에 회부됩니다. 분조위가 모든 금융 분쟁을 직접 심의하는 구조가 아니라 일부 대표 사건에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셈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편면적 구속력은 분조위에 회부된 사건에만 적용됩니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감원 분조위가 내놓은 조정안을 소비자가 수락하면 금융회사의 수락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부여하는 제도인데요.
 
현행 제도에서는 소비자와 금융회사가 모두 조정안을 받아들여야 조정이 성립합니다. 한쪽이라도 수락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금융사가 분조위 조정안을 반복적으로 거부하면서 소비자가 장기간 소송 부담을 떠안는 문제를 줄이겠다는 게 제도 도입 취지입니다.
 
다만 분쟁 민원 가운데 분조위에 회부되는 사건이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편면적 구속력 적용 대상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편면적 구속력 도입과 함께 분조위 운영 방식 전반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정무위는 법안검토보고서를 통해 편면적 구속력 도입을 담은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분조위 회부 기준을 명확히 하고 소비자가 분조위 심의를 받을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지 않으면 법 개정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하기 전에 일정 금액 이하의 소액 분쟁이나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분쟁에 대해선 분조위 회부를 확대하고, 회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과 결과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사진=뉴시스)
 
"분조위 회부 기준부터 손질해야"
 
금감원은 단순한 회부율만으로 분조위의 역할이나 편면적 구속력의 실효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동일한 유형의 민원을 모두 분조위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대표성이 있는 사건을 선정해 판단한 뒤 이를 토대로 유사 사건의 합의를 유도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쟁 민원이 접수되면 상당수는 사실관계 확인과 합의 권고, 금융회사 자율조정 과정에서 처리된다”며 “유사 민원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를 분조위 안건으로 올리는 만큼 전체 분쟁 민원 대비 회부 건수만으로 제도의 실효성을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사들은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될 경우 회부 건수가 적더라도 개별 사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조정안을 수락했다는 이유만으로 금융회사가 조정 결과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면 재판을 받을 권리와 방어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분조위가 행정기관 내부의 분쟁 조정 기구인 만큼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나 법률적 쟁점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회사에만 구속력을 부여할 경우 조정 제도의 중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가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사유가 있더라도 소비자의 수락만으로 결과가 확정된다면 헌법상 재판청구권과 절차적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는 금융사가 우월한 자금력과 법률 대응 능력을 활용해 조정안을 거부하고 소송으로 끌고 가는 관행을 막기 위해 편면적 구속력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소액 분쟁에서 소비자가 금융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일정 금액 이하 사건에 한해 금융회사에 조정안 수락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편면적 구속력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조정안 효력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조위 회부 기준을 함께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분조위 회부 기준을 공개하고 분쟁 회부를 확대하는 동시에 대표 사건의 판단을 유사 민원에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분쟁 민원 접수부터 자율조정, 분조위 회부, 조정 성립과 불성립에 이르는 단계별 통계를 공개해야 제도가 실제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면서 "편면적 구속력 도입에 앞서 분조위의 역할과 사건 회부 기준부터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투자 원금 전액 배상 등 계약 무효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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