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폭탄처럼 터져 병원균 박멸"
미국 스탠퍼드대, 신종 면역세포 최초 발견
플라나리아에서 '자폭' 면역세포 확인, "감염병·암 표적 치료 새 길 열어"
2026-08-06 09:45:37 2026-08-06 09:45:37
서로 다른 두 계통의 플라나리아를 융합하여 만든 키메라 플라나리아(사진=Stanford University, Wang Lab)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자신의 몸을 미세 폭탄처럼 폭발시켜 주변의 세균과 외부 세포를 사멸시킨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새로운 형태의 면역세포가 학계 최초로 발견됐습니다. 이례적으로 빠르고 국소적인 이 세포의 공격 방식은 향후 감염병 및 암 표적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보 왕(Bo Wang) 교수 연구진은 뛰어난 재생 능력으로 잘 알려진 수생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에서 이 같은 신종 면역세포를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셀(Cell)에 게재됐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실험이 쏘아 올린 놀라운 발견"
 
연구진은 당초 '플라나리아가 자신의 조직과 다른 개체의 조직을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생물학계의 오랜 난제를 풀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추 차이(Chew Chai) 박사후연구원은 플라나리아를 세로로 절개한 뒤 다른 개체의 일부와 결합하는 이른바 '프랑켄슈타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플라나리아는 신체를 놀라울 정도로 잘 재생하지만, 결합된 개체들은 이물질로 인식된 다른 개체의 조직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면역 체계가 이식된 장기를 거부하는 반응과 유사했습니다. 하지만 세포 단위에서 벌어지는 반응은 인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차이 연구원은 "마치 화재 경보가 울리자 세포들이 그대로 폭발해 버리는 것과 같은 엄청난 염증 반응이 일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진은 특정 호르몬인 '액티빈(Activin)'이 수치가 높아지자 이 세포들이 극심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며 폭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 신종 세포를 '럽토블라스트(Ruptoblast·폭발세포)'라고 불렀습니다.
 
수 초~수 분 내 초고속 폭발하는 '럽토시스'
 
연구진은 레이저를 이용해 세포를 분석하는 유세포 분석기와 살아있는 세포 현미경을 통해 이들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소수의 세포 무리가 갑자기 파열하며 주변 세포를 죽이는 물질을 방출한 뒤 불과 5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포착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폭발적인 세포 사멸 과정을 '럽토시스(Ruptosis)'로 명명했습니다.
 
럽토시스는 기존에 알려진 세포 사멸 방식과는 그 속도와 파괴력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기존 포유류 세포나 박테리아의 폭발적 세포 사멸은 수 시간에 걸쳐 물질이 천천히 새어 나오는 방식인 반면, 럽토시스는 수 초에서 수 분 내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보 왕 교수는 "세포가 마치 폭탄처럼 터져 주변 세포들을 죽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암세포·병원균만 노리는 '국소 정밀 타격' 가능
 
연구진은 럽토블라스트를 대장균, 인간 신장 세포, 쥐의 혈액 세포에 각각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이 폭발세포가 세 가지 표적을 모두 파괴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피해가 폭발 지점 근처의 세포에만 엄격하게 국한된다는 것입니다. 연쇄 반응을 일으켜 주변으로 번지거나 지속적인 독성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왕 교수는 "이처럼 강력하면서도 좁은 범위에만 작용하는 타격 능력은 향후 박테리아 감염이나 종양(암)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에 응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방어 체계가 인간에게는 없고 플라나리아에만 존재하는 이유는 '재생 능력'의 차이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척추동물은 세포 폭발로 인한 주변 조직의 손상을 쉽게 복구하지 못하지만, 줄기세포가 풍부한 플라나리아는 손상된 조직을 놀라운 효율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왕 교수는 "플라나리아처럼 흔히 연구되지 않는 생물들의 독특한 생물학적 특성이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의학적 난제들을 해결할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본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미국 국립보건원(NIH), 유럽연구원(ERC)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벤 구리온 대학 등 다양한 기관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참여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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