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초로 9000포인트를 돌파하며 꿈의 숫자였던 ‘만스피(지수 10000)’를 목전에 두었던 대한민국 증시가 거센 역풍을 맞고 7000선까지 후퇴했다. 최근의 급격한 지수 조정은 글로벌 대외 변수의 악화와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맞물린 결과다. 그러나 7000선으로의 후퇴를 단순한 하락으로만 받아들여선 안 된다. 지수 1만 포인트라는 상징적 이정표를 향해 가기 전, 우리 경제와 금융 체계가 양적 성장을 넘어 ‘글로벌 초일류 선진 시장’으로 진입할 기초체력을 갖추었는지 냉정하게 묻는 시장의 경고다. 준비 없는 급등이 뼈아픈 조정을 동반한 지금이야말로, 시장의 바닥을 탄탄하게 다질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진짜 골든타임이다.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과제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인위적 차단과 해소다. 지수가 하락 가속도를 붙이는 동안 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시장의 하방 지지선마저 무너진 형국이다. 상법 개정 등 입법 과제는 가야 할 길이지만 국회의 시차를 감안하면 법 개정만 바라보며 손을 놓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이제는 정부와 기업이 행동으로 실력을 보여줘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주주 환원에 나서도록 ‘파격적인 법인세 감면’과 ‘상속세 인센티브’ 등 정교한 당근책이 나와야 한다. 기업 역시 하락장에서 이익을 사내유보금으로만 쌓아두는 관행을 깨고, 자사주 매입 후 소각과 배당 확대를 적극 실천해야만 이탈하는 투자 자금을 장기 성장 자금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
급격한 지수 조정기에 글로벌 대형 자본이 한국 증시의 투자 비중을 급격히 줄이지 않도록 방어하는 전략도 시급하다. 특히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이슈는 현시점에서 양날의 검이다. 신흥국 지수 상위권이던 한국이 선진국 지수로 이동할 경우, 모수가 큰 시장 내에서 비중이 미미해져 단기적으로 패시브 자금의 추가 유출을 겪을 수 있다. 7000선 붕괴를 위협하는 외국인 매도세가 바로 그 취약성을 증명한다. 따라서 기계적인 지수 편입에 목을 매기보다, 글로벌 기관들이 하락장 속 자산 배분을 리밸런싱할 때 한국을 '빠뜨릴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시장'으로 여기게 만들 매력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글로벌 대형 자금이 가장 중시하는 ‘위험관리(Hedge)의 자유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넓혀야 한다. 외환시장 24시간 개방의 안정적 정착을 넘어 야간 환전 수수료를 대폭 낮추고, 파생상품 및 채권 시장과의 연계 인프라를 확충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방어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 또한 공매도 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예측 가능하게 운영하되 불법 무차입 공매도만 전산으로 완벽히 차단함으로써, 헤지펀드들이 안심하고 매수 포지션을 유치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 한다. 하락장에서 위험을 분산할 헤지 수단마저 막힌 시장에 글로벌 자본은 절대 장기투자를 하지 않는다.
결국 7000선에서 다시 만스피를 향해 발돋움할 수 있는 힘은 유동성의 거품이 아닌, 대한민국 경제 주체들의 '진짜 실력'과 '제도의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 현재 반도체 등 특정 섹터의 부진이 증시 전체의 폭락으로 이어진 것은 고부가가치 미래 혁신 산업으로의 다변화가 왜 시급한지 보여주는 뼈아픈 증거다. 정부는 증시 구조를 AI, 바이오헬스 등 미래 혁신 산업 중심으로 완전히 전환할 수 있도록 R&D 세제 지원과 과감한 규제 철폐로 정책적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7000선에서의 주춤거림은 좌절이 아니라 에너지를 다시 응축하는 과정이다. 제도적 불확실성을 제거해 글로벌 자본이 안심하고 장기 리밸런싱을 할 수 있는 금융 환경이 뒷받침될 때, 우리 증시는 거품을 걷어내고 든든한 기초체력 위에서 만스피 고지를 향해 다시 전진할 것이다.
고재인 기자 jik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