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부채가 늘면 어김없이 금융당국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 은행들의 대응은 기민하지만 대책은 늘 한결같다
. 금리를 올린다
. 가산금리를 덕지덕지 붙이는 방식이다
. 돈줄을 쥐고 흔들면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안중에도 없다
.
이자를 올리지 않고 은행이 취할 수 있는 패는 생각보다 많다. 다주택자 대출을 제한해도 되고 만기 축소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조이는 방법도 있다. 비대면 채널을 일시 폐쇄하거나 월별 쿼터제를 도입해도 된다. 통로 자체를 좁히는 비가격적 수단은 이것 말고도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은행은 기어코 금리 인상을 택한다. "상황이 이렇다"며 책임을 금융당국과 시장에 떠넘기지만, 본질적 이유는 이자 장사다. 총량 규제라는 위기를 틈타 예대마진을 폭리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수요를 억제한다는 핑계로 앉아서 떼돈을 번다. 리스크 없이 수익은 커진다.
당국은 상반기에도 가계부채 규제를 바짝 조였다. 그럼에도 현재 예상으로는 4대 금융의 상반기 순익이 또다시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의 상반기 순익 전망치는 10조8949억원이다. 1년 새 순익이 5695억원(5.5%)가량 늘어난다고 한다. 예대마진을 앞세운 결과다.
고통은 오롯이 차주의 몫이다. 당장 잔금을 치러야 하는 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평생의 피땀이 은행의 배당금과 임직원 성과급 잔치로 증발한다.
세계 어느 시장도 공급자가 규제를 핑계로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걸 용인하지 않는다. 국가기간산업인 반도체나 자동차도 불황의 파고를 온몸으로 맞는다. 수요가 줄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가격을 낮춘다. 유독 은행만 규제 속에서 더 배를 불린다.
당국의 대출 총량 규제는 거시경제 안정화라는 공익을 위함이다. 그러나 은행은 이 공적 규제를 사익 극대화의 도구로 오용한다. 당국은 규제 효과가 있으니 묵인한다. 당국의 행정편의주의와 은행의 탐욕이 결탁한 기형적 공생관계다. 규제를 명분 삼아 폭리를 키우는 건 금융이 아니라 수탈이다. 어차피 당국과 은행은 한패이기에 그들에게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대통령은 은행의 손쉬운 이자이익을 여러 차례 비판하고 공적 역할을 강조해왔다. 서민들의 고금리 대출을 두고는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이라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은행의 수탈적 관행을 방치한 채 ‘생산적 금융’만 외치는 건 서민의 눈물 위에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직접 판을 뒤엎는 통치권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
김의중 금융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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