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21)기내에 IPA가 없는 이유
2026-06-19 11:50:12 2026-06-19 11:50:12
한국에서 브라질, 인천에서 상파울루로 가는 노선은 몇 가지가 있다. 카타르 도하를 거칠 수도 있고 프랑스 파리를 거쳐 갈 수도 있다. 어디나 다 비행만 24시간, 환승 대기시간 포함하면 거의 30시간이 걸린다. 태평양을 건너 LA로 가서 밑으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비행시간은 맞춘 듯이 24시간 정도다. 단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 수 있고 (미국이니만큼) 환승조차 절차가 이리저리 까다로워서 보통 LA에서 아예 2, 3일 쉬었다가 가려는 사람이 이 경로를 선택한다. 상파울루행 최악의 노선은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하는 길이다. 에티오피아 항공을 탄다는 얘기이다.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이 항공을 타는 이유는 환승 전후로 딱 12간씩 비행시간을 절반으로 잘라 갈 수 있는 데다 노선 중에서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비행기 내에서는 지상보다 2~3배 빨리 취한다. 도수 5도 아래의 맥주만이 있는 이유다 (이미지=챗GPT)
 
그런데 최악이다? 그건 캐빈 서비스 탓이다. 기내 서비스로 나오는 커피 맛이 아주 별로고 (에티오피아 커피가?) 와인은 포도 주스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며 무엇보다 맥주가 영, 아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의 대표 맥주는 하베샤이다. 검은색 바탕에 에티오피아인의 금색 얼굴이 로고로 박혀 있다. (하베샤는 공용어인 암하라어로 에티오피안, 이라는 뜻이다) 역시 맛은 별로다. 국적기이고 아디스아바바가 아프리카 주요 항공 허브인지라 이 비행기에도 수입산이 준비돼 있다. 그중 하나가 바바리아이며 원래는 네덜란드산이지만 에티오피아 현지 공장에서 라이선스를 얻어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이네켄이다. 하베샤나 바바리아를 한두 캔 먹으면 더는 마시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냥 하이네켄만 죽자 하고 찾게 된다. 에티오피아 항공을 타면 국가가 맥주 맛 개발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내 맥주가 별로면 정말 장거리 비행 길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다.
 
국제선 비행기의 일반적인 운항 고도 범위는 만 미터에서 1만3천 미터다. 비행기는 대류권을 벗어나 성층권 하단을 난다. 공기 저항이 낮아져 연료를 덜 소비하며 빨리 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먹구름이나 비바람 같은 대류권의 악천후를 피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비행기가 성층권에 들어서서도 터뷸런스를 만날 수 있다. 터뷸런스란, 쉽게 말해서 공기의 흐름이 예상치 못하게 꼬일 때 기체가 엄청나게 흔들리는 현상을 말한다. 너무 일찍 죽어 아쉬운 배우 레이 리오타(2022년 67세에 동맥경화로 인한 심부전으로 사망)는 <좋은 친구들(굿 펠라스)>(1991) 같은 뛰어난 작품에도 나왔지만 <터뷸런스>(1998)처럼, 좀 말이 안 되는 B급 액션에도 종종 나왔다. <터뷸런스>는 터뷸런스와 전혀 상관없는 기내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각설하고, 고도가 만 미터 이상으로 높아지면 대기압이 떨어지고 산소가 희박해 사실 사람은 제대로 숨쉬기조차 어려워진다. 전투기 조종사가 산소마스크를 쓰는 이유이다. 고도의 훈련을 받는다. 어쨌든 그래서 대부분의 여객기는 기내의 공기압을 올리되 추가 연료 적재, 속도 감소 등의 이유로 지상보다는 약간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그렇게 해서 고도 상승 시 심각한 귀통증을 예방하고(여전히 먹먹한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저산소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한다.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지상보다 기압이 감소한 공간에서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취하게 된다. 기내에서 위스키를 ‘원 모어 플리즈’ 해봐야 두 잔 이상 주지 않으려 하는 이유이다. 맥주도 5도를 넘지 않는 저알콜 맥주를 비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맥주는 톡 쏘는 맛이 있는, 6.5도에서 7도까지의 도수가 가장 맛있다. 기내 맥주는 가능하면 맛없는 것, 밍밍한 것이 콘셉트이다. 사고를 미리 방지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적에 따라 맥주 맛은 천차만별이다. 일본의 항공사 JAL이나 ANA가 제일 다양하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등이 있다. 아사히는 가볍고, 기린은 부드러우며, 삿포로는 청량하다. 이건 술이군 하는 맛은 산토리 프리미엄이다. 적어도 알코올로서의 타격감이 있다.
 
한국의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는 테라와 카스, 켈리가 있다. 논평은 하지 않겠다. 루프트한자에는 정통 독일 맥주가 있다. 바르슈타이너와 벡스이다. 벡스는 풍미가 좋다. 모두 도수가 4.8도 위아래 수준이다. 기내 맥주의 선을 지킨다는 이야기다. 싱가포르항공은 타이거가 나오고 브라질 라탐 항공사 기내에는 브라마와 오리지나우가 나온다.
 
영화 <내 친구의 결혼식>에서 주인공은 기내에서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린다.(사진=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요즘 거의 운항을 하지 못하고 있는 쿠바의 ‘쿠바나 항공(Cubana de Aviación)’은 부카네로와 크리스탈을 내놓았었다. 현재 세계인들은 부카네로를 마시지 못한다. 쿠바 럼인 하바나클럽도 마시기 힘들다. 헤밍웨이가 그렇게나 마셨다는 다이키리도, 모히토도 마시기 힘들다. 쿠바의 경제, 쿠바라는 나라는 급속히 붕괴 중이다. 비행기에 급유할 항공유가 없다. 예전에는 우고 차베스 시절의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무상으로 지원했었다. 미국이 불법으로 체포해 가기 전, 정확하게 얘기해서 트럼프가 ‘국제적 만행’을 저지르기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었던 마두로 체제도 일부나마 석유를 공급했었다. 쿠바 인민이 극한의 상황을 맞지 않게 하려면 미국이 하루속히 경제 봉쇄를 풀어야 한다. 일상의 정전은 물론 병원조차 운영이 어렵다. 쓰레기 처리, 하수 및 정수 처리 등 위생 상황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맥주 타령이겠는가.
 
다시 한번 각설해서, 어쨌든 비행기 내에서는 IPA를 맛볼 수 없다. 도수가 높기 때문이다. 5도 아래의 라거 맥주들도 기압이 낮은 환경에서는 더 밍밍하고 싱거워진다. 맥주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미각세포가 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내에서 맛있는 맥주를 마시겠다는 야망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2011년에 나온 영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의 원제는 ‘신부 들러리(Bridesmaids)’이다. 베이커리 사업을 하다 ‘말아 먹고’ 생활이 어려워진 주인공 애니(크리스틴 위그)는 다른 들러리들과 함께 신부파티를 하러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를 탈 때 혼자서만 이코노미석을 탄다. 다른 친구들은 비즈니스석이다. 자격지심에다 비행공포증에 시달리던 애니는 술과 진정제를 섞어 먹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다. 애니는 친구들이 있는 비즈니스석으로 가 난동을 부린다. 비행기는 근처 공항에 강제 착륙한다. 거의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급 사건이지만 영화는 영화여서 애니는 그다지 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기내에서는 절대 술과 약을 혼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잘 못 자는 사람들일수록 요 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와인 한 잔과 수면제를 같이 먹는 경우가 있다. 큰일 날 일이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맥주와 수면제는 절대 노, 노, 노이다.
 
정말 술이 없으면 못사는 사람들(꼭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더라도)이라면 비행기 탑승 전 대합실 라운지에서 생맥주나 도수가 좀 있는 맥주를 한두 잔 마시고 타는 것이 위로가 된다. 대체로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대기할 때가 많다. 사전에 마신 적당량의 알코올은 그 대기시간을 적당한 수면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러다 문득 깨어나면 비행기가 대류권을 넘어 성층권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는 느낌일 것이다.
 
곧 여름이고 바캉스의 계절이며 다들 휴가를 맞아 해외로, 해외로 나갈 것이다. 해외 출장의 경우에도 그렇다. 비행 시 기내에서의 알코올 준칙을 잘 새겨야 할 것이다. 술보다는 영화를, 아예 8부작이나 12부작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것도 좋다. 건강한 휴가를 준비들 하시길.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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