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내 꿈에 나온 Dinosaur 우리 집 창문을 부수고 내 가족에게 포효하던 널 다시 만나면 그땐 너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를래'
악동뮤지션의 '다이노소어'는 언뜻 단순한 악몽을 소재로 한 노래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들이 반지하 빌라에서 살던 어린 시절 빚에 쫓기던 기억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공룡'은 더 이상 상상의 동물이 아니다. 가족의 밤잠을 깨우고, 아이에게 평생의 두려움으로 남는 빚 독촉의 얼굴이다.
빚은 통장 잔고를 넘어 주거와 생계, 자존감과 미래까지 흔든다. 예전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채무자회생법 부칙 개정안을 추진했을 때 만난 채무자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2017년 개인회생 변제 기간은 최대 5년에서 3년으로 줄었지만, 법 시행 시점의 차이로 여전히 5년을 갚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법 조문 몇 줄의 차이는 인생 2년의 차이였다.
채무자들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한국 사회에서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쉽게 도덕적 낙인의 대상이 된다. 그런 이들이 국회 앞에 나와 어려움을 호소하고 삭발까지 했다.
그때 만난 채무자들은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고,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붕어빵을 팔았다. 누군가는 가족을 믿고 모아둔 돈과 대출금을 건넸다가 더 깊은 채무의 늪에 빠졌다. 이들에게 빚은 무책임의 결과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려는 몸부림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지난 11일 '금융기본권 연구단 출범식'에서 진행된 논의는 단순한 금융상품 개선론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이날 논의의 핵심은 금융 취약계층에게 대출을 더 내주는 것이 아니라 기초상담·채무조정, 기초보험, 기초대출, 기초저축을 하나의 체계로 묶자는 것이었다. 빚이 이미 삶을 짓누르고 있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빚이 아니라 채무를 정리하고, 건강과 생계를 지키며, 다시 자산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순서다.
금융은 신용이 좋은 이에게는 싸게, 낮은 이에게는 비싸게 자금을 제공한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합리적' 시장의 언어다. 그러나 그 결과가 가난한 사람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고, 끝내 회복 가능성까지 빼앗는다면 국가는 질문해야 한다. 금융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기초금융보장법 논의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법은 금융 취약계층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자는 제안이다.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복지를 시혜에서 권리로 바꿨다면, 이제 금융도 같은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어린 시절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공룡은 어른이 된 뒤에도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독촉장으로, 전화벨로, 때로는 고금리 대출 광고와 불법사금융의 협박으로. 누구나 실직과 폐업, 질병 앞에서 빚을 지고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그 공룡 앞에서 개인에게만 더 크게 소리 지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빚의 공포를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는 것, 국민기초금융보장법 논의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하는 이유다.
이지우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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