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텔레그램 기반 성착취 범죄 사건인 ‘박사방’과 ‘목사방’ 사건에 대해 법원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두 사건 모두 여러 명의 가담자가 온라인상에서 조직적으로 성착취 범행을 벌였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법원은 ‘범죄단체’ 성립 여부를 다르게 판단했고, 이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갈렸습니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와 당직자 등 참석자들이 2022년 9월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2 N번방 끝장 진보당 정당연설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김성수)는 지난달 29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유포, 강간, 협박, 범죄단체 조직·활동 등 혐의로 기소된 주범 김녹완에게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n번방’ 사건을 보고 범행을 저질렀듯, 이 사건 범행도 모방해 새로운 범죄자가 생길 수 있다”며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모방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1심 때부터 쟁점이었던 범죄단체 조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봤습니다. 형법 제114조 범죄단체조직죄는 사형·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범죄를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해 활동한 경우, 실제 범행 실행 여부와 별개로 중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인을 살해할 목적으로 범죄단체를 조직하고, 이런 목적으로 조직된 범죄단체에 가입한 것만으로도 실제 살인이 저질러지지 않더라고 살인죄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공동 범죄 목적’ 인정된 박사방…가담자도 중형
박사방과 목사방에 적용된 범죄단체 조직 혐의에서 법원의 차이가 갈린 것은 '공동 범죄 목적'에서 였습니다. 앞서 2021년 대법원은 박사방 사건 가담자들이 조주빈을 중심으로 한 형법상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고 판단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인정된 것은 박사방 사건이 처음이었습니다.
2심 재판부는 박사방 관리자급 구성원들이 성착취물 제작·유포라는 공동 목적 아래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박사방을 “아동·청소년 등을 협박하여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이를 배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구성원들이 오로지 그 범행을 목적으로만 구성·가담한 조직”이라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박사방은 단순 채팅방 수준을 넘어 개인정보 조회, 피해자 협박, 수익금 환전, 홍보 등 역할이 체계적으로 나뉘어 있었고, ‘등급제’ 방식으로 구성원을 관리한 점이 조직성 인정의 핵심 근거가 됐습니다. 이에 따라 조주빈은 징역 42년을 선고받았고, 주요 공범들도 징역 7~13년의 중형을 받았습니다. 집행유예 사례는 없었습니다.
‘피해자 겸 가해자’ 강조된 목사방…공범 45%는 집행유예로 풀려나
반면 목사방 사건 2심 재판부는 김녹완에게는 일정한 조직 운영 의사가 있었다고 보면서도, 다른 가담자들까지 공동의 범죄 목적 아래 결합한 조직 구성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김녹완이 ‘자경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전도사’·‘예비전도사’ 같은 직책을 부여한 점 등을 근거로 조직 운영 정황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가담자들에 대해서는 △김녹완의 협박과 강요 속에 범행에 가담한 점 △가담 기간이 길어야 2~3개월 수준에 불과한 점 △범행 대가나 금전적 이익을 얻지 못한 점 등을 들어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가담자 10명은 지인의 허위 영상물 제작 등을 의뢰했다가 김녹완에게 적발돼 범죄에 포섭됐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개인정보 등으로 협박받은 뒤, 새로운 피해자를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으며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판부는 이들이 김녹완에게 종속된 ‘피해자 겸 가해자’의 성격이 짙다고 보고, 가담자 상당수에게 징역 2~3년의 가벼운 형량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실제 전체 가담자의 약 45%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전문가들 “범죄단체 판단 너무 좁아… 입법 보완 시급”
법조계 전문가들은 목사방 가담자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지나치게 협소하다고 지적합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담자들은 애초 불법 허위 영상물 제작을 시도하며 범죄 구조에 발을 들인 이들”이라며 “협박 요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성착취 범죄에 적극 동원된 이상, 이를 지나치게 피해자의 측면을 과대 해석한 것은 재판부의 가해자 온정주의적 판단으로 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성범죄는 익명의 다수가 온라인에서 느슨하지만 강한 결속을 형성한 채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현행 법체계는 기본적으로 오프라인 범죄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이런 디지털 기반 조직범죄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범죄단체조직죄 역시 애초 온라인 성범죄 조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조항은 아니다”라며 “박사방 사건은 이례적으로 인정됐지만, 이후 유사 사건들에 일관되게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조직적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