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베르고트의 문체 : 대량 생산 시대의 프리미엄 철학경영[혁신]
12 / 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2026-04-24 14:30:10 2026-04-24 14:30:10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 베르고트(Bergotte)는 주인공인 화자에게 예술적 완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화자는 베르고트의 글을 읽으며, 단어와 단어 사이의 유려한 흐름,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뚫는 독창적인 묘사에 매료된다. 베르고트에게 문체란 당연하게도 단순히 글쓰기 기교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각의 발현이었다.
 
"그의 문장은 마치 섬세하게 조각된 보석 같았다. 평범한 풍경도 그의 문체를 통과하면 이전에 본 적 없는 신비로운 빛을 발했다. 나는 그가 사용한 '작은 노란 벽면'이라는 표현 하나에서 완벽함을 향한 예술가의 고독한 투쟁을 보았다.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베르고트라는 존재만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고유한 흔적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재구성)
 
이 문학적 감탄을 경영의 영역으로 끌어오면, 현대 비즈니스가 직면한 차별화의 위기에 대한 해답이 보인다. 모든 것이 표준화하고 복제가능한 대량 생산과 알고리즘의 시대에, 고객의 영혼을 흔드는 것은 결국 기계적 완벽함이 아니라 제작자의 철학과 영혼이 깃든 장인적 문체이기 때문이다.
 
대량복제된 볼리비아 '에케코 신' 인형. 사람들은 작은 인형 복제품을 사면서 소망이 이뤄지길 기원한다.(사진=뉴시스)
 
기술 복제 시대와 아우라의 상실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1935년 초고를 완성한 기념비적인 저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Aura)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예술의 본질적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벤야민에게 아우라란 예술 작품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단 하나로 존재함으로 발생하는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의미한다. 이 현존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여기와 지금을 뜻하는 라틴어 '히크 에트 눈크(Hic et Nunc)'라는 표현을 동원했다.
 
즉 아우라란 지금, 여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회적이고 독창적인 숭고함이다. 벤야민은 사진이나 영화와 같이 무한 복제가 가능한 기술적 수단이 등장하면서, 원본이 지녔던 이 '히크 에트 눈크'의 가치가 붕괴하였다고 진단했다. 복제본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지만, 지금과 여기라는 시간성과 장소성의 마력은 오직 원본만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본 없는 복제본까지 만연한 오늘날 아우라는, 벤야민이 말한 용어 자체라기보다 현실적 개념으로 예술을 넘어 브랜딩, 관광, 경험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였다. 대중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공산품보다, 특정한 지역의 공기를 머금고 제작자의 손때가 묻은 아우라 있는 대상을 갈망한다. 사실 이 대상의 아우라는 벤야민이 말한 그 개념이 아니라 '아우라적인 것'에 가깝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제품이 급격히 범용화하는 현상은 벤야민이 말한 대로 복제에 의한 전통의 파괴가 시장에서 재현되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원본의 독자적인 결을 잃어버린 기업의 제품이 더는 소비자에게 경외감을 주지 못하고, 오직 가격이라는 단일한 잣대로만 평가받는 가혹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아우라적인 것'이 현실적 대안이 된다.
 
일시적 우위와 감성적 연결의 방어력
 
기술 복제의 늪에서 탈출할 길이 있을까. 대량복제와 상품화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 시스템하에서 근본적인 탈출은 불가능하다. 다만 부분적인 대안은 가능하고 또한 모색된다.
 
경영 전략가 리타 건서 맥그래스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라는 개념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할 유물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맥그래스가 자신의 저서 『경쟁 우위의 종말』에서 강조하듯, 현대 경영의 본질은 하나의 거대한 해자를 파고 수십 년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일시적 경쟁 우위(Transient Competitive Advantage)'의 파도를 민첩하게 갈아타는 데 있다.
 
맥그래스에 따르면 기술적 우위나 가격 경쟁력은 시장의 투명성과 복제 속도 때문에 순식간에 모방되면서 붕괴한다. 여기서 기업 생존에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고객 가치 탐색과 조직의 민첩성(Agility)이다. 이 과정에서 감성적 연결(Emotional Connection)’은 독특한 전략적 위치를 점한다. 감성적 연결은 그 자체로 영원한 우위를 창출하는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과 가격 우위가 복제되어 나가는 우위 잠식의 속도를 늦춰주는 저항선이자 방어벽이다. 현대인에게 보편적인 당뇨병 대처에서 약이 당뇨병을 원천적으로 치료하지 못하지만 혈당 스파이크를 막아내며 시간을 버는 것과 비슷하다. 
 
혹은, 상품의 기능이 비슷해지면 고객은 즉시 더 싼 곳으로 떠나려 하지만, 브랜드와 정서적 유대가 형성된 고객은 그 이탈의 문턱에서 망설인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 감성적 연결은 일시적 우위의 수명을 연장함으로써 기업이 다음 우위로 갈아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이때 감성적 연결이 곧바로 지속적 우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감성적 연결은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속도 경쟁을 거부하는 슬로우 비즈니스나 특정 장소의 유일성에 기반한 로컬 브랜딩의 핵심 자산이 된다. 슬로우 비즈니스가 추구하는 진정성은 고객으로 하여금 브랜드의 일시적 우위가 소멸하더라도 그 곁에 머물게 하는 회복 탄력성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전략과 휴먼터치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자신의 저서 『히든 챔피언』과 『프라이싱』 등을 통해 '프리미엄 세그먼트' 전략을 논했다. 지몬이 말하는 프리미엄은 가격이 높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가격은 가치가 결정하며, 가치는 고객이 느끼는 효용과 감정적 충족감의 총합이라는 단순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의 '프리미엄 세그먼트' 이론은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독일 중소기업들의 방법론을 연구하는 맥락에서 탄생했다. 규모와 무관하게 초우량 기업이 가격 경쟁이라는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비결이 독점적 가치에 있음을 발견했다. 프리미엄 제품은 고객에게 압도적인 성능 또는 가치뿐 아니라 브랜드와 정서적 일체감을 제공함으로써 가격 저항선을 무너뜨린다. 베르고트가 죽기 직전, 베르메르의 그림 <델프트 풍경> 앞에서 "저 작은 노란 벽면(petit pan de mur jaune)처럼 내 글도 더 정교하게 다듬었어야 했다"고 자책하며 숨을 거둔 장면과 맞닿아 있다. 장인 경영이란 바로 그 '작은 노란 벽면' 하나를 위해 타협하지 않는 집요함, 즉 효율성으로는 절대 설명되지 않는 품질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서 시작되어 프리미엄이라는 보상을 얻는 과정이다.
 
슬로우 비즈니스의 선두 주자인 파타고니아는 제품을 더 많이 파는 것보다 제품이 지닌 철학과 수명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유명한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는 대량 생산의 논리를 전면 부인하는 슬로우 비즈니스의 정수이다. 또한 일본의 디앤디파트먼트는 '롱 라이프 디자인'을 표방하며 지역의 오래된 물건들을 발굴해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로컬 브랜딩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디앤디파트먼트는 유행을 따르는 표준화한 제품 대신, 특정 지역의 역사와 장인의 숨결이 깃든 물건을 통해 아우라를 복원한다. 반(反)대량생산 모델로,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을 발굴하고 계속 쓰이게 만드는, 예컨대 지역 도자기, 전통 공예, 오래된 공장 제품 등을 ‘재’상품화하는, 생산역량보다 선별 능력을 핵심 경쟁력으로 하는 큐레이션 기업을 지향한다. 
 
한국의 '프릳츠 커피(Fritz Coffee)' 역시 로컬 브랜딩의 예시이다. 이들은 세련된 서구식 카페 문법을 따르는 대신 한국적인 빈티지 감성과 장인적인 커피 로스팅 기술을 결합하여 '프릳츠다움'이라는 독보적인 문체를 구축했다. '프릳츠'라는 표기 자체가 폰 레스토르프 효과(고립효과)와 인지적 불일치을 담아내어 그들의 철학을 발산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미세한 개별적 차이와 휴먼 터치가 어떻게 대량 생산 시대의 강력한 무기가 되는지를 증명한다.
 
한국의 ‘프릳츠 커피(Fritz Coffee)’는 서구식 카페 문법을 따르지 않고 한국적인 빈티지 감성과 장인의 기술을 결합한 로컬 브랜딩의 예시이다.(이미지=프릳츠커피 홈페이지)
 
품질 관리에서 철학 관리로
 
장인경영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철학경영에 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경영이 기법의 집합이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이 집약된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종합적 교양 학문(Liberal Art)'임을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영은 전통적으로 ‘교양 학문’이라 불리던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교양(Liberal)인 이유는 지식의 근본, 자기 지식, 지혜, 그리고 리더십을 다루기 때문이며, 학문(Art)인 이유는 그것이 실천과 응용이기 때문이다(Management is what tradition used to call a liberal art: 'liberal' because it deals with the fundamentals of knowledge, self-knowledge, wisdom, and leadership; 'art' because it is practice and application.)."
 
드러커의 이 선언은 경영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자질이 데이터 분석력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관한 깊은 사유, 즉 철학임을 시사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린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의 '교세라 철학' 또한 드러커의 인문학으로서 경영과 맥을 같이한다. 이나모리는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익 창출을 넘어 구성원의 행복과 사회적 공헌이라는 확고한 철학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테크닉은 변하지만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며, 리더의 철학이 조직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 때 진정한 품질이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철학 경영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경영 시스템으로 작동한 대표적인 사례는 파타고니아에서 찾을 수 있다. 파타고니아에는 '철학 담당 이사(Director of Philosophy)'라는 독특한 직책이 존재한다. 이 이사는 기업이 내리는 모든 상업적 결정이 창립 철학(환경 보호, 품질 지상주의 등)과 일치하는지를 감시하고 조정하는 파수꾼 역할을 맡아 수행한다. 철학을 인사나 마케팅의 부수적 업무로 취급하지 않고, 기업의 고유한 '문체'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거버넌스로 제도화했음을 뜻한다. 
 
철학경영을 실현하려면 내부 장인의 육성과 헤리티지의 전수가 필수적이다. 숙련공을 기르는 단계를 넘어 기업이 수십 년 지켜온 가치관과 미학적 기준을 체득하게 하는 과정이다. 장인은 기술을 넘어 제품에 영혼을 불어넣는 존재이며, 이들이 가진 자부심은 조직 전체의 아우라를 형성하는 근간이 된다. 에르메스의 일인 책임제가 보여주듯, 장인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품을 완성하며 이 과정에서 철학은 구체적인 물성으로 체현한다.
 
에르메스(Hermès)의 일인 책임제는 철학경영이 어떻게 구체적인 물성으로 체현하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에르메스의 가죽 장인은 가방 하나를 만드는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책임진다. 분업화한 공정에서 기계적으로 부품을 조립하는 대신, 장인은 가죽의 결과 결함을 일일이 손으로 느끼며 바느질의 텐션을 조절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땀의 간격이나 마무리의 흔적은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장인 고유의 ‘문체’가 제품에 각인된 증거가 된다. 완성된 제품에는 해당 장인의 고유 번호가 각인되어, 수년 후 수리가 필요할 때도 이 각인(Blind Stamp)을 통해 제작 당시의 정보와 기술적 사양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다. 
 
비록 수리하는 단계에서 물리적으로 사람이 달라질 수 있어도, 그 장인이 남긴 기록과 철학은 수리 과정에서도 영속성을 갖는다. 고객은 단순히 가방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제작자의 시간이 기록된 ‘히크 에트 눈크’의 아우라를 소유하게 되는 셈이다.
 
철학경영에서는 성공 공식의 언러닝(Unlearning)과 본질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베르고트가 기존의 진부한 문장을 과감히 버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표현을 찾아냈듯, 기업 역시 과거의 성공 공식인 원가 절감과 속도라는 도그마를 폐기해야 한다. 철학경영은 우리 기업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는 일이며, 질문에 답하기 위해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유혹을 뿌리치고 가치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결단을 요구한다.
 
디테일의 가치화와 미학적 완결성 또한 중요하다. 고객이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미세한 마감이나 보이지 않는 곳의 품질까지 완벽을 기하는 행위는 브랜드에 대한 종교적 신뢰를 형성한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이나, "적을수록 더 풍부하다(Less is more)"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처럼 이것은 장인경영의 최우선 원칙이다. 철학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제품의 가장 작은 구석에서 발견되는 정교함과 진정성이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다음 인용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문체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영혼의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진실의 파동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경영자 역시 자신만의 문체로 시장의 시간을 멈추고 자신의 철학으로 창안한 특별한 세계로 고객을 초대해야 하지 않을까.
 
[안치용의 Critique: 문체 없는 경영은 영혼 없는 기계]
 
오늘날 우리는 가성비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베르고트의 순간을 포기하고 있는가. 기업이 숫자로 환산되는 효율성에 매몰될 때, 그 기업의 제품은 시장에 넘쳐나는 수많은 복제물 중 하나로 전락한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의 상실은 단순히 예술의 위기가 아니라, 모든 존재가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비즈니스의 위기이기도 하다.
 
어느 작가가 위대해지는 이유는 당연히 남들보다 더 많은 글을 써서가 아니라,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썼기 때문이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대량 생산의 바다에서 소비자는 자신을 숫자로 취급하지 않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문체 있는 브랜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