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노동자는 본질적 약자"라고 했던 이재명정부에서도 노란봉투법이 패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집니다. CU 화물 노동자들이 원청 교섭을 요구하다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노사갈등이 극한에 달했지만, 이 사건을 보는 정부의 시각은 보수 정부의 수준과 같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이재명정부의 대통령은 소년공,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철도 노동자 출신입니다.
경남 진주시 정촌면 BGF로지스 진주센터 인근 사고 현장. (사진=뉴시스)
23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CU 운영사인 BGF리테일 측과 화물 노동자 간 갈등에 대해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에도 원청이 교섭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규정한 뒤 "화물 노동자들이 노동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노동부는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이 개인사업자의 문제라면 주무부처가 노동부일 이유도, 노동부 장관이 (사고가 난) 진주를 찾을 이유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계가 정부를 규탄하고 나선 건 앞서 지난 20일 원청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던 CU 화물 노동자들은 원청이 대체 차량을 투입해 배송을 강행하려는 걸 몸으로 막는 과정에서 대체 차량에 치여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됐습니다. 노동부가 '이번 사안은 노란봉투법을 넘어선 일'이라면서 화물 노동자들과 선을 긋고 나선 겁니다.
당시 사고 당일 노동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이번 사안은 개정 노동조합법 제2조에 따른 원·하청 교섭 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라며 "소상공인, 개인사업자 등이 단결해 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일부 매체에서 '노란봉투법이 노사갈등을 키웠다'는 취지로 보도하고 나선 걸 의식했더라도 특수고용 노동자인 화물 노동자는 개인사업자이며, 이번 일은 노란봉투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히기 충분합니다.
이는 지난 2022년 말 윤석열정부가 화물연대를 '노조가 아닌 사업자 단체'라면서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탄압을 가했던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당시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을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하자 윤석열정부는 '개인사업자 간 담합'이라고 지적,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진행했을 정도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통상적으로 화물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기 차량을 가지고 노무를 제공하는 개인사업자로 보는 겁니다. 이 때문에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노동 3권(단결권, 교섭권, 쟁의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합니다. 이에 하청 노동자를 비롯해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쟁의권과 교섭권을 확대한다는 것이 노란봉투법의 취지입니다. 이런 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노동부 발표는 노란봉투법을 너무 협소하게 해석한다는 비판이 불가피합니다.
지난 21대 대선 당시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가 화물연대본부와 정책 협약을 통해 안전운임제 도입, 노조활동 보장방안을 강구하기로 약속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후퇴한 꼴입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 역시 지난 2012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할 당시 화물연대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24일 청와대에서 한국노총과 간담회를 열고 "노동자는 본질적으로 약자"라며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과 같은 노동 3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특히 최근 법원도 '화물 노동자는 교섭권을 가진다'라고 판결했다는 걸 고려한다면 정부의 상황 판단은 가장 보수적 집단이라고 평가받는 사법부의 인식만도 못한 셈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수원지법 민사5-1부는 SPC의 물류자회사인 GFS와 계약하고 빵과 반죽을 운반하는 화물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도 지난해 6월 윤석열정부가 공정위 조사를 거부한 화물연대를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도 화물연대 조합원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 파업을 정당한 단체행동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특수고용노 동자에 대한 노동권 사각지대가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실질적인 사용자와는 교섭을 가능하도록 한 것이 노란봉투법"이라며 "그마저도 노동부가 소극적으로 판단해서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한 건 굉장히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역시 지난 21일 일제히 논평을 내고 "노동부의 입장은 이러한 법(노란봉투법) 취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법의 취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이 여전히 교섭을 회피하고 사용자성을 부정해 왔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비판이 잇따르자 노동부는 한발 물러선 모양새지만,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노동부가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23일 오전 <S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BGF리테일이 CU 화물 노동자들의 원청임을 확인하면서 "(화물 노동자들은) 형식은 자영업자라도 실질적으로 (원청에) 종속됐다면 노동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양 위원장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노동부가 현재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며 "노동부는 원청이 교섭에 나오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편, 지난 22일 BGF 측과 화물연대와의 교섭이 진행되면서 노사 간 대화는 비로소 시작됐습니다. 화물연대는 향후 교섭을 이어가면서 구체적인 요구안을 제안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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