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7조8000억원 규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의 향방이 ‘핵심 영업비밀’ 유출 논란을 둘러싼 법원의 판단에 따라 갈라질 전망입니다. 방위사업청의 자료 제공 적정성과 기업 기술 보호 범위를 놓고 벌어진 치열한 공방의 결론이 한 달 내 가려지면서, 이번 결정은 수주전 판도는 물론 방위산업 전반의 기술 투자 질서까지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는 22일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제기된 KDDX 사업 가처분 신청에 대한 추가 심문을 진행합니다.
HD현대중공업(329180)은 방위사업청이 경쟁 입찰 공정성을 명목으로
한화오션(042660)에 제공한 161개 파일 가운데, 함정 건조 핵심 기술이 담긴 14개 파일을 절대 노출돼서는 안 될 영업비밀로 특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유출 우려가 제기된 자료가 단순한 과거 노무비 단가가 아닌 수십 년간 축적한 독자적 노하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고서에는 특정 블록이나 장비 탑재 시 투입되는 세부 작업 시간(맨아워)과 최신 공법, 구체적인 비용 산출 로직이 담겨 있습니다. 당초 KDDX 사업은 기본설계 수행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이어간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국가 사업에 대한 신의성실 원칙에 맞춰 당장 필요하지 않은 세부 산출 로직까지 모두 제안서에 포함했다는 설명입니다.
방사청의 일관성 없는 행정 처리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방사청은 영업비밀 유출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진행 중임에도 이미 161개 파일 전체를 한화오션 측에 제공했습니다. 반면 전날 열린 법원 1차 심문에서 재판부가 14개 파일을 제출하라고 지시했음에도 행정절차를 핑계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실체적 판단을 내려야 할 재판부 앞에서는 절차를 들어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경쟁사에는 서둘러 모든 자료를 넘긴 방사청을 향해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업체의 사외비 성격을 띠는 원가 정보와 입찰 가격까지 모두 공개하는 것은 명백히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공개된 항목에 대한 HD현대중공업의 반발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의 제기임에도 사전에 이를 원만하게 조율하려는 방사청의 소통이 부재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방사청의 사업 추진 강행과 관련해 “애당초 KDDX 사업이 2년간 지체된 데에는 방사청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며 “정부 조달 규정에 따른 물가 상승분 반영마저 부인한 채 강압적으로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신속한 추진 속도만큼이나 업계의 목소리를 듣고 정당한 과정과 절차를 지키는 자세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장원준 전북대학교 방위산업과 교수는 “정부가 연구개발 투자를 진행해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필요시 다른 기업에 자료를 제공하는 방사청의 입장이 현재 규정상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상세설계를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것을 전제로 기업의 핵심 노하우가 통째로 엮여 있는 자료까지 경쟁사에 그대로 넘기는 것은 기업 자산 보호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과거에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했으니 소유하고 통제한다는 투자 회수 개념이 강했지만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방산 선진국은 기업에 소유권을 부여하고 정부가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기업이 지식재산권을 가져야 자발적인 재투자와 주도적인 성능 개량이 이뤄지는 만큼 민간 첨단기술 유입과 방산 혁신을 견인할 수 있는 포용적 제도로 전면 개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