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보증 가입이 된다"는 말을 믿고 계약했지만, 잔금 지급 이후에야 가입 여부가 결정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구조로 인해 임차인 피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보증금을 이미 넘긴 뒤 악성 임대인 여부나 과다한 선순위 권리가 드러나도 손쓸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핵심 문제로 지목됩니다. 이에 계약 전 보증 가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보증금을 공사에 예치하는 '사전가입 심사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잔금 치러야 가입…피해 사전 차단 어려운 HUG 구조
6일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 주거단체에 따르면 임차인들이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의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라는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했다가 실제 가입이 거절되는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피해가 반복되는 핵심 원인은 HUG의 보증보험 시스템 구조에 있습니다. 현행 제도상 임차인은 잔금을 모두 치르고 전입신고까지 마친 뒤에야 비로소 보증보험 가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가입 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계약과 입금이 먼저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박용갑 민주당 의원이 HUG로부터 받은 '연도별·유형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거절 현황'에 따르면, 가입 거절 건수는 △2020년 2187건에서 △2021년 2002건 △2022년 2351건 △2023년 2596건 △2024년 2890건으로 증가 흐름을 보였습니다.
민달팽이유니온 관계자는 "임대인의 말을 믿고 계약했는데, 실제로 보증 사고 이력이 있거나 해당 주택에 설정된 근저당·선순위 권리가 과다해 보증보험 가입이 반려되는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계약 단계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단이 임차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조적 허점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보증보험 안전망에서 배제된 3억원 미만 저가 주택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주택 가격 대비 보증금 비율인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커집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2년 거래된 모든 전세 계약의 보증금을 그해 공시가격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주택 가격이 낮을수록 전세가율은 급격히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시가격 5000만원 이하의 저가 주택군에서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137%였으나, 비아파트인 연립·다세대에서는 151%까지 치솟으며 보증금이 공시가격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보증 사고는 2018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다가, 주택 시장이 위축된 2022년부터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이는 금리 인상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서 '깡통전세'와 '역전세'가 확산된 데다,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한 보증 한도 산정 방식의 한계와 임대인의 상환 능력 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됩니다.
보증 사고가 급증하자, 정부와 HUG는 보증기금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며 2023년 5월부터 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기존 전세가율 100% 이하, 공시가격 150% 기준에서 전세가율을 90%로 낮추고 주택 가격 산정 기준도 공시가격 140%로 조정해 가입 문턱을 공시가격 126%로 높였습니다. 이른바 '126% 규칙'은 2026년 4월 현재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조치가 보호 필요성이 높은 계층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2023년 9월 KDI 보고서에 따르면, 강화된 가입 기준으로 보증보험 대상에서 제외된 주택의 상당수는 공시가격 3억원 미만, 평균 1억3000만원 수준의 저가 주택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는 보증료율 조정보다 가입 요건 강화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전세가율이 높은 위험 주택일수록 공적 안전망에서 먼저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정책적 사각지대에 대해 HUG는 "공시가격 126% 룰은 완화할 계획이 없다"며, 임차인이 주택 시세에 비해 과도한 보증금으로 전세계약을 하지 않도록 전세가율을 단계적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재 공시가격의 140%를 주택가격으로 보고 전세가율 90%를 적용해 126% 기준이 산출되는데, 전세가율을 낮춰 이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을 국토교통부와 함께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계약 먼저, 보호는 나중…'에스크로' 도입 촉구
이와 관련해 피해자들이 가장 시급하게 요구하는 예방책은 계약 전 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사전 가입 심사제'입니다. 민유 관계자는 "잔금을 임대인에게 직접 이체하지 않고, 보증보험 가입 심사가 될 때까지만 HUG 계좌에 이체해뒀다가, 가입이 승인되면 임대인 계좌로 잔금을 이체해주는 일종의 '에스크로 기능' 도입"도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HUG 측은 이에 대해 "전세 계약한 임차인이 잔금을 치르기 전에 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지 미리 확인하는 사전 심사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도 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박용갑 의원은 전세보증금의 전액 또는 계약금을 가입 심사 기간 동안 공사에 예치하는 전세보증금 예치 제도를 담은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가입이 승인되면 임대인에게, 거절되면 임차인에게 즉시 반환하도록 해 사기 위험을 원천 차단하자는 취지입니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회부돼 본격적인 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구조적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문윤상 KDI 연구위원은 2023년 9월 발표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 개선방안'에서 "전세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반환보증 제도의 보증료율을 현실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에스크로 제도를 결합한 혼합보증제도를 도입해 집주인이 보증금을 함부로 유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인호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이 2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