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서」의 후반부에서 화자는 해안 도시 발베크의 화가 엘스티르를 만난다. 엘스티르의 화실은 그림을 그리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물에 덧씌워진 이름과 관습적 지식을 해체하고 사물의 본질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연금술의 장소로 묘사된다. 화자는 그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 즉 예술적 직관이 어떻게 기존의 세계관을 전복하는지 생생하게 목격한다.
엘스티르의 메타포와 언러닝
엘스티르의 회화에서 놀라운 점은 바다를 육지처럼, 육지를 바다처럼 묘사하며 사물의 실체를 뒤섞어버리는 독특한 변용(Métamorphose)에 있다. 프루스트는 이러한 시각적 전치를 가리켜 시(詩)에서 우리가 은유(Métaphore)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예술적 장치라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가 사물에 붙인 이름, 즉 이것은 배이고 저것은 파도이며 저것은 부두라는 식의 관습적 지식이 오히려 사물의 본질을 보는 눈을 가린다고 믿었다. 사물을 그것이 지닌 명칭이나 지성적 개념을 통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처음에 느낀 순수한 인상을 그대로 포착하려 애썼다.
"그는 사물을 그것이 지닌 명칭이나 지성적 개념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느낀 순수한 인상을 그대로 포착하려 애썼다. (...) 그는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것을 잊어야만 했다(Elstir tâchait de ne pas savoir ce qu'était la chose, mais de la rendre par l'impression qu'elle lui avait donnée d'abord. [...] Il lui fallait oublier ce qu'il savait pour rendre ce qu'il voyait)."
— Marcel Proust,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Tome II,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88.
인상주의는 사물의 고정된 형태보다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인상을 포착하려 했는데 이는 경영에서 객관적 사물에서 주관적 경험으로 전환이라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사진은 인상파 대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 컨버전스 아트로 재탄생된 장면이다. (사진=뉴시스)
알고 있는 것을 잊는 과정은 현대 경영학에서 강조하는 언러닝(Unlearning)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혁신은 새로운 정보를 채우는 것에서가 아니라 기존의 성공 방정식과 업계의 상식이 씌워 놓은 '이름의 감옥'에서 탈출할 때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식경영의 대가 마크 본첵(Mark Bonchek)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을 통해 언러닝이 말 그대로의 망각이 아니라 기존 사고 모델(Mental Model)을 의도적으로 폐기하고 새로운 모델을 수용할 공간을 만드는 능동적인 작업임을 강조했다.
경영자가 엘스티르처럼 자신이 본 것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 아는 것을 잊어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미래의 기회를 가로막는 성공의 덫이 되기 때문이다. 언러닝은 지식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운영체제' 자체를 교체하는 작업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우리는 원래 이런 업종"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내지 못하는 기업은 결코 혁신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빅블러는 1999년 스탠 데이비스와 크리스토퍼 메이어가 저서 『블러: 연결경제에서 변화 속도(Blur)』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첨단 기술의 발달로 제조와 서비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산업 간의 경계가 완전히 뒤섞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은행이 쇼핑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전 회사가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되는 이 혼돈의 시대는 엘스티르의 그림 속에서 바다와 육지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과 무척 닮아 있다. 빅블러 환경에서는 기존 지식 체계의 고수보다, 엘스티르처럼 고정관념을 지우고 융합된 본질을 포착하는 언러닝의 능력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된다.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꾸는 힘
엘스티르가 화실에서 수행하는 예술적 작업은 지식경영의 세계적 권위자 노나카 이쿠지로가 제안한 SECI 모델의 완벽한 실현이다. SECI(Socialization Externalization Combination Internalization) 모델은 지식이 암묵지(Tacit Knowledge)와 형식지(Explicit Knowledge)의 상호작용을 통해 선순환하며 증폭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엘스티르가 발베크의 해변에서 찰나의 빛과 대기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얻은 감각은 언어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전형적인 암묵지에 해당한다. 이것이 SECI의 첫 단계인 사회화(Socialization)다. 그는 자연이라는 타자와 공명하며 그 신비로운 인상을 내면에 기록한다.
그 다음 단계인 외재화(Externalization)는 엘스티르가 그 형언할 수 없는 암묵적 인상을 캔버스 위에 선과 색채라는 형식지로 구현해내는 예술적 투쟁의 과정이다. 그는 "아는 것을 잊음으로써" 기존 관습적 형식지가 아닌, 자신의 암묵지에 가장 충실한 새로운 형식지를 창조해낸다. 이어서 이렇게 탄생한 개별 작품들이 미술사의 맥락이나 다른 예술적 기법들과 결합하여 더 큰 담론을 형성하는 과정이 조합(Combination)이며,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본 화자나 관객이 그 예술적 진실에 감화하여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과정이 내재화(Internalization)다.
이 연재의 후반부에서 다룰 지식 경영이 조직 내에 쌓인 지식을 어떻게 잃어버리지 않고 시스템화할 것인가라는 보존과 전수에 방점을 둔다면, 엘스티르의 화실에서 목격하는 지식 경영은 아무도 보지 못한 인상을 최초의 가치로 변환해 내는 창조와 탄생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혁신적인 기업은 매뉴얼을 잘 지키는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이 가진 암묵적 통찰(인상)을 엘스티르처럼 용기 있게 형식지(제품과 서비스)로 끄집어낼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이다.
인상주의 : 경영의 현상학적 전환과 경험의 가치
소설 속 엘스티르는 클로드 모네나 오귀스트 르누아르 같은 당대 인상주의 화가들을 모델로 창조된 인물이다. 인상주의는 사물의 고정된 형태보다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인상을 포착하려 했으며, 이 같은 인상주의의 기조는 경영에서 객관적 사물에서 주관적 경험으로 전환이라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인상주의 화가가 화실 밖으로 나가 직접 햇빛 아래에서 그림을 그렸던 야외 제작(En plein air) 방식은 경영 리더들에게 현장의 진실(겐바, 現場)을 일깨워 준다.
혁신적인 리더는 사무실에서 정제된 보고서를 읽을 게 아니라 고객의 삶이 실제로 펼쳐지는 현장에서 가공되지 않은 인상을 직접 포착해야 한다. 보고서 속의 수치는 이미 박제된 형식지일 뿐이지만, 현장의 소음과 고객의 표정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파괴적 혁신의 원천인 암묵지다. 엘스티르가 바다를 그리기 위해 직접 배 위에 올라탔듯, 리더 역시 현장의 파도 속에 몸을 던져야 한다.
두 가지 혁신의 갈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하버드대 교수가 1997년의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주창한 혁신 이론은 엘스티르의 화법과 놀라울 정도로 맥을 같이 한다. 그는 혁신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했다.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은 기존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제품의 성능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이다. 마치 고전주의 화가가 정교한 기법을 더해 실물과 더 똑같이 그리려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다. 주력 시장의 까다로운 고객들이 요구하는 고성능과 고품질을 지향하지만, 이러한 과정에 매몰되면 기업은 고객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수준 이상의 과잉 성능을 제공하게 되어 결국 조직이 경직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크리스텐슨이 제시한 다른 혁신인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기존 시장이 정의한 품질이나 가치의 기준 자체를 뒤엎는 행위다. 엘스티르가 원근법이라는 전통적 질서를 무시하고 빛과 인상만으로 대상을 재해석한 것과 같다. 파괴적 혁신은 처음에는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이라고 주류 시장에서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더 저렴하고 편리하며 새로운 맥락을 제공함으로써 시장의 밑바닥부터 잠식해 들어온다.
코닥의 몰락은 이러한 파괴적 혁신을 외면한 가장 뼈아픈 사례로 꼽힌다.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엔지니어 스티븐 새슨)하고도 코닥 경영진은 필름 없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며 서랍 속에 넣어버렸다. 1990년대 중반 카시오와 소니 같은 후발 주자들이 조잡한 화질의 디지털 카메라를 내놓을 때도 코닥은 여전히 필름의 고화질과 인화 시장이라는 존속적 혁신에만 매달렸다.
당시 코닥이 붙잡고 있던 생각은 '면도날 모델(Razor and Blade Model)'이었다. 면도날 모델은 20세기 초 질레트의 창업자 킹 캠프 질레트가 고안한 것으로 특정 제품을 아주 저렴하게 판매하거나 심지어 무료로 제공하여 고객을 확보한 뒤, 그 제품을 사용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소모품이나 관련 서비스를 비싼 가격에 지속적으로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전략이다. 필름 판매와 인화 서비스라는 막대한 수익 구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코닥은 디지털이라는 파괴적 흐름을 보면서도 스스로를 언러닝하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사진의 본질은 인화하여 간직하는 것에서 디지털로 실시간 공유하는 것으로 바뀐다. 시대의 인상을 포착하지 못한 이 대가는 2012년 파산 보호 신청이라는 비극을 맞이해다. 코닥은 사진이라는 본질 대신 필름이라는 이름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하고도 혁신을 외면해 몰락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사진=뉴시스)
미스터리를 알고리즘으로 바꾸는 지혜
경영 전략의 대가 로저 마틴(Roger Martin)은 저서 『디자인 생각(The Design of Business)』(2009년)을 통해 혁신의 과정을 거대한 혼돈에서 정제된 질서로 나아가는 '지식의 깔때기(Knowledge Funnel)' 모델로 설명한다. 이 깔때기는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미스터리(Mystery)' 단계다. 엘스티르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캔버스 앞에서 마주한 세상의 혼돈과 같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장의 숨은 갈증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백지상태다. 이때 필요한 사고가 바로 "무엇이 가능할까"를 묻는 귀추적 추론(Abductive Reasoning)이다. 귀추법은 연역법, 귀납법과 달리 나타난 결과로부터 최선의 설명을 추측하는 논리로, 미지의 원인을 찾는 창의적 사고의 시작점으로 간주된다. 깔때기 모델에서는 정답이 없는 안갯속에서 직관적 도약을 시도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 '경험칙(Rule of Thumb)' 단계다. 미스터리의 안갯속에서 수많은 시도와 관찰을 거쳐 "아, 대략 이렇게 하면 통하더라"는 패턴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엘스티르가 수많은 습작을 통해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허무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정립해가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완전한 정식은 아니지만, 복잡한 미스터리를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단순화한 실천적 지혜다.
마지막은 '알고리즘(Algorithm)' 단계다. 발견한 경험칙을 누구나 똑같이 실행할 수 있도록 공식화하고 자동화하는 단계다. 맥도날드가 햄버거를 만드는 공정을 초단위로 매뉴얼화한 것이나, 거대 플랫폼이 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취향을 자동 추천하는 시스템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극강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알고리즘이 동시에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는 딱딱한 '이름'이 되기도 한다.
위대한 경영자는 깔때기의 맨 끝인 알고리즘에 도달해 수익을 극대화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깔때기의 맨 위인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돌아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엘스티르의 예술적 직관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디자인 싱킹'은 이 깔때기의 위아래를 유연하게 오가며 고정관념을 깨는 가설을 끊임없이 생성하여 지식의 선순환을 만드는 과정이다.
변화한 세계를 마주하는 예술가의 소명
화자는 엘스티르의 그림을 보고 난 뒤 자신이 매일 보던 창밖의 풍경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임을 깨닫는다. 엘스티르가 가르쳐 준 진실은 사물의 진정한 본질이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엘스티르가 내게 가르쳐 준 노력은, 말하자면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성적인 개념을 제거하고, 그 사물이 우리에게 주는 순수한 인상을 되찾는 것이었다. (...) 그의 화실을 나온 뒤, 나는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발베크가 아닌, 전혀 다른 발베크를 보게 되었다(L’effort qu’Elstir m’avait appris à faire était pour ainsi dire de dépouiller les choses des notions de mon intelligence et de retrouver l’impression pure. (...) En sortant de chez Elstir, je ne voyais plus le même Balbec, mais un autre)."
— Marcel Proust,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Tome II.
혁신의 최종 목적지 또한 단순히 새로운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New Worldview)을 제안하는 것에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알고리즘은 가장 확률 높은 평균값을 제시하며 기업들의 전략을 서로 닮게 만든다. AI가 이미 존재하는 이름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을 때 인간의 직관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치를 발견한다.
데이터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정밀하게 말해주지만 왜 그런지에 관한 실존적 갈망은 포착하지 못한다. 경영자는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 너머의 우연한 발견을 포착해야 하며, 이것은 계산이 아니라 인간만이 가진 귀추적 상상력의 영역이다. 엘스티르가 캔버스 위에서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허물었듯, 탁월한 리더는 데이터의 경계를 허물고 그 너머의 진실을 본다.
[안치용의 Critique : 데이터의 맹신과 직관의 외로움]
엘스티르의 화실에서 화자가 느낀 전율은 우리가 정답이라고 믿었던 세상의 질서가 실은 얼마나 연약한 약속 위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 데서 온다. 현대 경영이 데이터라는 숫자의 성벽 뒤로 숨는 이유는 책임지기 싫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숫자는 실패에 대한 훌륭한 알리바이가 되어주지만 결코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동력이 되지는 못한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투쟁이다. 엘스티르가 당대 평론가들의 조롱을 견디며 자신만의 색채를 지켰듯, 혁신적인 경영자는 데이터의 증거가 충분히 나오기도 전에 자신의 직관을 믿고 도전해야 한다. 데이터가 안전한 어제의 연속을 말한다면 직관은 위험한 내일을 창조한다. 진정한 경영의 예술은 AI가 그려준 정교한 지도 위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엘스티르처럼 지도를 찢고 그 자리에 자신만의 바다를 그려 넣는 용기에 있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