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석 기자]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자동차 부품 공장의 발화지점 부근에 '열처리장'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 불이 공장에 가득 찬 기름 찌꺼기와 유증기로 시작 및 확산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고열이 발생하는 열처리 공정이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26일 대전 대덕구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안전공업 노동조합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동관 건물에는 열처리 공정이 진행되는 열처리장이 위치했습니다. 안전공업 노조 관계자는 "금속을 가열하며 단단하게 만드는 열처리 공정이 현재까지 발화지로 추정되는 곳 가까이에 위치했다"며 "완전히 밀착된 구조는 아니지만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설치됐다"고 전했습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설비 시설이 있는 1층을 발화지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소방 당국은 열처리장이 공장 2층에 위치했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1층과 2층이 천장으로 분리되지 않고 이어져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열처리장으로 인해 이번 화재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열처리 공정은 공장에서 사용되는 금속 재료의 강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가열하고 냉각하는 담금질입니다. 이때 금속을 최대 900℃까지 가열하는 등 고온이 발생하고 불티가 만들어집니다.
현재까지 이번 화재 원인으로 공장을 가득 채운 유증기와 이로 인한 기름 찌꺼기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공기 중에 높은 밀도의 유증기와 기름 찌꺼기에 열처리 공정의 고온·불티가 닿으면서 불이 났다는 분석입니다. 유증기는 100℃가 넘는 상태에서 불꽃이 닿으면 불이나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실제 이 공장에서는 지난 2019년 7월 열처리 공정 작업 중 마찰열에 의해 집진기 내부 금속분 슬러지 등이 착화해 화재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
안전공업은 자동차·선박용 엔진밸브를 생산하는 업체로 제품을 가공할 때 절삭유를 사용합니다. 공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열로 쉽게 기화돼 공기 중에 퍼집니다. 기름 찌꺼기는 이러한 유증기가 공장 내부 각종 설비에 축적되면서 만들어집니다. 화재가 발생한 동관의 1층은 각종 제조 설비가 들어섰는데, 여기서 유증기와 기름 찌꺼기가 다량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열처리 공정이라는 것은 결국 연소가 시작되는 점화원인 열이 발생하는 곳"이라며 "공장 내 유증기와 각종 먼지, 기름 찌꺼기 등이 충분히 제거되지 않았다면 여기에 불이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열처리 공정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9일 충남 당진 고대면 한 열처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 1개 동이 반소되는 등 1억48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소방 당국은 인력 65명과 소방차 25대를 동원해 35분여 만에 불을 껐습니다. 지난 2024년 6월26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자동차 부품 열처리 공장에서 열처리 공정 중 화재가 발생해 소방 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약 1시간31분 만에 불을 완전히 진압했습니다. 같은 해 4월10일 부산 소재 열처리 공장에서도 화재가 났습니다. 당시 공장 관계자는 열처리 공정 후 식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꽃이 유증기와 반응해 발화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소방 당국은 아직 내부 수색이 불가능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발화 지점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공장 건물이 더 붕괴될 가능성이 있어 아직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며 "추후 내부 진입을 통해 발화 지점과 내부 구조 등 자세한 사안을 파악할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날 대전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이 사건 브리핑을 열고 "화재 처음에는 화재 발생 때 경보를 들었지만 불과 얼마 되지 않아 경보가 바로 꺼졌다"면서 "그런 이유로 (직원들은) 평소와 같은 경보기 오작동으로 알았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누군가가 일부러 경보기를 끈 것인지, 시스템상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입니다.
공장 3층에는 무허가 나트륨 정제소(제조소)가 있었는데, 나트륨은 물과 접촉하면 폭발하는 특성이 있어 해당 구간의 스프링클러는 꺼져 있었고 결국 화재 피해가 커진 것으로 경찰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동관 1층 4라인 상부 덕트에서 불꽃을 목격했다"는 직원 진술 등을 토대로 자세한 화재 경위를 파악할 계획입니다. 또 손주환 안전공업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 6명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 입건 여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 20일 오후 1시17분쯤 대전 대덕구 문평동 소재 안전공업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소방 당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약 10시간30분 만인 오후 11시48분쯤 불을 완전히 껐습니다. 이 화재로 당시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 14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을 당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박진석 기자 ptba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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