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수정 기자·이혜지 수습기자] "쿠팡의 독주 견제를 위해 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희생을 떠안아야 합니까. 소상공인들은 플랫폼과의 경쟁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찬 상황입니다. 대형마트의 위기는 새벽배송을 못 해서가 아니라, 무분별한 출점과 소비 패턴에 대응하지 못한 전략 실패입니다. 이미 소상공인 100만 폐업 시대로 접어든 상황에서 최소한의 생업 환경이 지켜져야 합니다." (임수택 소상공인연합회 수석부회장)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을 막기 위해 전국 소상공인들이 여의도 국회로 몰려왔습니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견제하기 위해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추진하는 건, 결국 소상공인에게 과거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19일 오후 국회 본청 앞 중앙 계단에는 대형마트 온라인 새벽배송 추진에 반대하는 전국 소상공인 1500여명이 모였습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생업을 포기하고 상경한 소상공인들의 손에는 '새벽배송 결사반대', '소상공인 다 죽는다', '골목상권 사수'라고 적힌 피켓이 들렸습니다. 이들은 다른 업종, 지역에서 왔지만 모두 골목상권을 지켜온 보루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반대하는 데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집회에는 전국상인연합회, 소상공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오세희·민병덕·서영교·박홍배 의원과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 진보당 윤종오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도 뜻을 같이했습니다.
19일 오후 1시경 국회 본청 앞에 전국에서 모인 소상공인 1500여명이 '대형마트 온라인·새벽배송 추진 반대 집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이수정 기자)
"쿠팡 견제한다더니…불똥은 왜 소상공인에게"
유통산업발전법은 2012년 대형마트의 급격한 팽창으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무너지자, 이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의무휴업일 지정과 영업시간 제한이 핵심으로, 대형마트는 매월 두 차례 문을 닫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됐습니다. 당시에는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유통시장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규제로 묶인 대형마트 대신 소비자들이 선택한 건 전통시장이 아니라 쿠팡·네이버 등 이커머스였습니다. 대형마트 시장 점유율은 1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밟는 처지가 됐습니다. 정작 온라인 플랫폼은 규제 밖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유통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김동아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대형마트의 온라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과의 역차별을 해소하고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회복시키겠다는 취지입니다. 당정도 이 법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소상공인들은 이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플랫폼 독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왜 그 불똥이 골목상권으로 튀느냐는 겁니다. 이충환 전국상인연합회 회장은 "최근 10년 사이 100곳이 넘는 전통시장이 사라졌다"며 "쿠팡 견제를 명분으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희생시키는 정책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휘웅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이사장도 "온라인 플랫폼과의 경쟁만으로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형마트까지 새벽배송에 가세한다면 골목상권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새벽배송 확대는 노동자 안전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정민정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작년 한 해 쿠팡에서만 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팬데믹 이후 택배 노동자 사망은 4배 증가했다"며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은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 커져…새벽배송 난항 예상
이날 집회에서는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추진한 여당 내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전국적으로 소상공인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당내에서도 신중론이 고개를 든 겁니다.
집회를 주최한 오세희 의원은 "766만 소상공인·자영업자·전통시장·골목상권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매장만으로도 지역 상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온라인 새벽배송까지 허용한다면 지역경제는 물론 유통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19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혜지 수습기자)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도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습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겸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은 "대형마트 규제를 풀어 또 다른 거대 유통에 특혜를 주는 방식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라며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지키는 일에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가 쿠팡 견제 효과보다 소상공인 피해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을지로위의 판단입니다.
야당 의원들의 지지도 이어졌습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새벽배송이 쿠팡 문제를 소상공인에게 전가하는 정책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쿠팡에 책임을 물으랬더니, 쿠팡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불똥을 소상공인에게 전가하는 셈"이라며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거대 플랫폼을 규제하려면 온라인 플랫폼 독점방지법을 처리해야지, 오프라인 규제를 푸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목이 마르다는데 소금물을 마시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소비자 선택권'이라는 말이 모든 질문을 멈추게 해선 안 된다고 짚었습니다.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
이혜지 수습기자 ziz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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