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고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수다. 벤처캐피탈(VC)은 이러한 초기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기업 성장을 돕는 중요한 파트너 역할을 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자금을 투자하는 만큼 벤처투자는 혁신 산업을 키우는 핵심 장치다.
그러나 벤처투자가 항상 창업자의 성장과 기업가치 확대라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투자 구조가 오히려 창업자의 경영권을 약화하거나 회사 지배구조를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 투자 이후 경영권 분쟁 사례 역시 꾸준히 언급된다.
스타트업은 지속적인 자금 조달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다운라운드 투자가 이뤄지거나, 투자자가 후속 투자를 제안하며 투자·지분 구조 변경이나 경영 참여 조건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의 구조에서 이어지는 지배권 갈등, 투자사 인사의 경영 참여, 주요 의사결정 동의권 등 투자 계약 보호 조항이 결합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금 상황이 급한 기업일수록 이러한 조건을 쉽게 거절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실제로 공개적인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VC와의 갈등이 드러날 경우 이후 투자 유치에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와, 복잡한 계약 구조로 인한 대응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창업자는 사업 운영 부담까지 겹쳐 분쟁 대응을 병행하기 어렵고, 갈등은 문제 제기조차 되지 못한 채 묻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투자 협상 과정에서 일부 조건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회사의 자금 상황 때문에 이를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후 투자사의 계열사 인력이 임원으로 들어왔고, 사업 필요성을 이유로 계열사 합병까지 추진됐는데 해당 회사는 부채가 과다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 경영 상황 악화의 책임이 창업자에게 돌아갔고, 사실상 대표 업무에서 배제되면서 임금체불까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현실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지점이다. 현재 벤처투자 제도는 투자자 보호 장치를 중심으로 설계된 측면이 강하다. 반면 창업자의 협상력과 정보 접근성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투자 계약이 체결되는 과정에서 양측의 협상력이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투자 구조와 기업 경영이 분리된 제도하에서는 투자 계약으로 시작된 경영권 갈등이 제도적으로 책임지는 주체 없이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투자 활성화만큼이나 공정한 투자 구조와 창업자 권익 보호 역시 벤처 생태계의 지속성을 위해 중요한 요소다.
벤처투자는 혁신 기업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자본이다. 그러나 그 자본이 혁신의 동반자가 될지, 또 다른 지배구조로 작동할지는 결국 제도와 시장의 균형에 달려 있다. 협상력의 불균형이 반복되는 구조라면 벤처투자 생태계 역시 점검이 필요하다.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투자 제도가, 창업자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이지우 정책금융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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