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4년 전 제8회 지방선거의 당선자는 4125명, 본선 후보자는 7616명이었고,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은 1만3296명이었다. 대략 유권자 3000명당 1명꼴로 선출직을 놓고 경쟁하는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예비후보자 명부 사이트에서 관심 있는 몇몇 지역의 시장 선거 예비후보자 명부를 검색했다가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예비후보자 명부 사이트에는 경력을 2개까지만 기재할 수 있다. 유권자가 꼭 알았으면 하는, 일생의 가장 찬란하고 빼어난 성취를 기재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예비후보자 상당수가 정당 산하 각종 위원회의 부의장, 부위원장 경력을 내세웠다. 부대변인도 있다.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선거에 출마하는 A와 B는 현재 같은 당 같은 위원회의 부위원장이다.
A와 B는 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서로 마주친 적이 있었을까. 서로가 같은 위원회의 부위원장인 사실을 예비후보자 등록 전에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당 홈페이지의 ‘논평/브리핑’ 게시판에는 C 부대변인의 이름으로 작성된 논평이나 브리핑을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은 ‘부(副)’ 자가 붙은 직함으로 유권자들에게 무엇을 알리고 싶은 것일까. 그 직이 그들의 정치적 역량이나 정책에 대한 고민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 직함에 걸맞은 활동은 찾기 어렵다. 실체 없는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경력들은 오히려 유권자를 기만하는 후보자의 부정직함을 자인하는 꼴이다.
유권자는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모르지만, 공천을 받으면 정당의 추천을 믿고 한 표를 기꺼이 던진다. 정당의 공적 기능과 책임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정당에서 중요한 직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정당이 그 책임하에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고 보증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거 때마다 정당은 유권자의 신뢰를 배반하고, ‘부자 임명장’을 남발하는 경력 세탁소로 전락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100일 남은 지난 23일 대구 서구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이 사이버선거범죄 단속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후보자의 돋보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경력은 후보자가 살아온 삶의 요약이고,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실질적인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명목상 경력은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을 오도할 위험이 크다. 그러나 정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라는 그물망은 피해 간다.
정당의 각종 위원회 부위원장이면 나름의 무게를 지닌 임원급이라 할 것인데, 대체 몇 명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정당이 스스로 정보를 공개하고 그 직의 신뢰도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유권자는 점차 정당의 추천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정당정치는 유권자의 신뢰에 기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는 실체 없이 ‘부자’ 경력을 급조해 자신을 포장하는 후보자에게는 표를 주지 않을 생각이다. 예비후보자 등록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전국의 예비후보자 명부를 조사해, 정당이 공개하지 않은 ‘부자’ 경력의 분포와 유형을 정리해 볼 작정이다. 진짜 부(副)와 가짜 부(副)를 유권자는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공직선거가 가면무도회는 아니지 않은가.
천경득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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