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상호관세가 무효화됐지만 미국이 꺼내 든 무역법 122조와 301조, 무역확장법 232조 카드로 한국은 오히려 전방위 압박 구조에 놓이게 됐습니다. 미국이 비관세장벽 조사에 주한미군 등 안보 문제까지 협상 카드로 동원할 경우, 한국의 대응 수단은 제한적입니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의 전제가 무너졌지만 약속한 대미 투자 계획을 되돌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상호관세 무효에도…한국 부담 여전히 '1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즉시 발효되는 조치로서, 전 세계 관세 10%를 허용된 최대치이자 법적으로 검증된 15%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임시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했습니다. 122조는 국제수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이 최장 150일 동안 최대 1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입니다.
미 연방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였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무역법 122조를 대체 수단으로 즉각 동원한 데 이어 바로 다음 날 관세율을 법이 정한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로써 한국은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관세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 구조에 놓였습니다. 미국과 관세 합의를 하지 않았던 중국, 멕시코, 캐나다 등이 가장 큰 혜택를 받게 된 셈입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경제정책이었던 관세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기조입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관세 위법 판결 뒤에도 모든 나라가 무역 합의를 지켜야 한다"며 "우리는 232와 301 관세로 이동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노골적인 압박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122조 관세에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을 추가해, 기존 상호관세 수준의 관세 수입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도 무역법 301조에 따른 추가 조사를 예고하며 비관세장벽 전반을 겨냥했습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이번 조사는 주요 교역국 대부분을 포괄할 것"이라며 "미국 기업과 디지털 상품에 대한 차별, 산업 과잉생산, 강제노동, 제약 가격 책정 관행 같은 우려 사안을 다룰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취임 1년여 만에 30%대로 떨어진 가운데, 미국은 기존보다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장 150일 이후에도 무역법 122조를 계속 적용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공화당 내부에서도 상호관세 위법 판결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연장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즉시 관세 232조, 장기 보복 301조…한국 겨냥한 '이중 압박'
관세 수입을 단기간에 확보해야 하는 미국은 협상이 어려운 중국보다, 무역적자가 큰 동맹국을 우선 압박할 전망입니다. 한국은 유럽연합(EU)·일본과 함께 주요 타깃입니다.
15% 임시 관세보다 더 큰 변수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입니다. 232조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즉시 관세를 부과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한국산 자동차에 15%, 철강·알루미늄의 50% 관세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관세율을 더 높이거나 적용 품목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실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미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반도체에 100% 관세를 물릴 수 있다"며 한국산 반도체에까지 232조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음을 시사한 적 있습니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행위가 미국에 부당·불합리·차별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의적 판단에 따라 상대국을 압박할 수 있는 규정입니다.
무역법 301조로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조사와 공청회 등 절차가 필요해 발동까지 통상 6~12개월의 시간이 걸리지만, 세율 상한이 없고 한 번 부과되면 장기간 유지됩니다. 무역확장법 232조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압박이라는 평가입니다. 232조는 대통령 판단으로 언제든 조정할 수 있지만, 301조는 철회에도 별도 절차가 필요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301조로 한국을 정면 겨냥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은 한국 국회에서 발의된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과 최근 개정된 정보통신망법(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자국 기업을 차별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또 쿠팡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회사들은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USTR에 무역법 301조 조사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오는 23일(현지시간) 미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열리는 쿠팡 청문회도 향후 301조 조사 여부와 통상 갈등의 방향을 가를 중대 분수령으로 꼽힙니다.
쿠팡 측은 청문회를 앞두고 경찰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한국 정부와의 통신 기록이 담긴 문서·영상 수천 건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망 사용료와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문제 역시 미국이 꾸준히 시정을 요구해 온 사안입니다. 식품·농산물 수입 규제와 의약품 약가 결정 제도 등 비관세장벽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주한미군 운용과 원자력 협력 등 안보 현안을 통상 협상과 연계할 경우, 한국의 대응 여지는 더욱 좁아집니다. 우리 정부는 상호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약속한 3500억달러(약 50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는 일단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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